매주 일요일은 경남 창원시 팔용동에 있는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 수업이 있는 날이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20여명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이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수업을 듣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조금은 생소한 국적과 유난히 큰 키와 긴 팔다리, 작고 까만 얼굴을 가진 외국인이 눈에 띈다.
버징고 도나티엔(33). 한국에 온지 올해 8년째 된 아프리카 부룬디 출신의 청년이다.
부룬디(Burundi)는 인구 8백70만명의 작은 나라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이다. 평균수명도 남자 42세, 여자 46세로 세계 최하위.
1962년 독일과 벨기에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해방되면서 여느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종족과 종교가 철저히 무시된 채 유럽 강대국들의 편의대로 운명이 결정되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오랜 갈등은 내전이라는 결과로 이어졌고,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평화를 기대했지만 무차별적인 인종 학살로 인해 30만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 한국에서 열린 2003년 육상경기대회 참가계기로 정착
그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지만 난민 자격으로 생활하고 있다. 브룬디 대학에 다니던 도나티엔은, 지난 2003년 8월에 열린 대구 유니버시아드 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생소한 나라 한국에서 열리는 육상경기대회에 감독도, 코치도 없이 대학생 대표로 출전했다. 내전으로 불안했던 자기 나라를 잠시라도 벗어 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우연히 한국에 난민 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도나티엔은 고민에 빠졌다.
내전으로 인해 15살에 부모를 잃었지만, 동생들은 부룬디에 살고 있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끝에 미래를 위해 난민 자격을 신청하기로 했다. 부모를 앗아간 부룬디는, 어린 시절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난민 지위를 획득하기까지 불안한 상태로 체류 연장을 5번 넘게 거듭한 끝에 2005년 6월 난민 자격을 얻게 됐다.
우리나라는 1993년부터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1년 최초로 난민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난민인정 현황은 2009년 말 기준 신청자는 2492명인 반면, 난민 인정자는 17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히 지난 2008년 연말 이루어진 출입국관리법의 난민관련 조항의 개정으로 인해 2008년(36명)과 2009년(74명) 증가해, 그전에는 한 해 동안 인정자 수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도나티엔 역시 2005년 410명의 난민 신청자 중에 인정을 받은 9명 중에 한 명이다.
◈ 힘든 한국생활, 마라톤에 집중…'현대위아'서 근무와 마라톤 동시에그 후 도나티엔은 인쇄소직공을 시작으로 시계 제조공장과 카메라 렌즈회사를 옮겨 다녔다.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과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고, 한국말이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을 할 때도 오직 눈치로 해야 했다. 모국어로도 외국어로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그를 괴롭혔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하루 종일 일한 뒤 운동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열한 시가 넘었고 어려운 생활이 계속됐지만 푸념하고 불평하는 것조차 그에겐 사치였다. 그럴수록 유일한 즐거움이자 탈출구와 같았던 마라톤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있는 힘을 다해 달리며 희망으로 멋진 미래를 꿈꾸며 틈날 때마다 마라톤 운동 클럽에서 달렸다. 그러던 중 같이 운동하는 사람의 소개로 ‘마라톤 기업’으로 알려진 자동차 부품업체 (주)현대위아의 고 김평기 회장의 눈에 띄게 됐다.
김평기 회장은 그에게 2005년 3월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안정적으로 근무하며 마라톤도 계속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도나티엔은 마라톤 마스터즈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고기록 2시간 18분대를 가지고 있다. 전문 선수급 기록이다. 지금까지 30여 차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2005년~2007년 서울 중앙마라톤 마스터즈 우승, 2006년~2008년 동아마라톤 마스터즈 우승, 2009 한강 마라톤 등 경력도 화려하다. 첫 대회에서 4등 한 것만 빼면,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마라톤은 그에게 끊임없는 동기와 기회가 됐다. 마라톤으로 인해 한국을 알게 되어 난민 자격을 얻게 됐고, 마라톤으로 인해 지금의 직장도 얻게 됐다.
◈ 작년 9월 귀화 신청…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간절한 꿈하지만 아직 간절한 꿈이 남아 있다.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로서의 최고 기록이나 우승이 아닌,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나라를 떠난 난민으로 살았지만, 앞으로는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것.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래서 작년 9월15일 귀화 신청을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원‘이라는 한국 이름을 새긴 명함도 가지고 있다.
삼겹살과 장어를 가장 좋아하는 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 여자와 결혼도 하고 싶다. 아직 회사와 마라톤 연습, 대회출전, 한글교실 수업까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지만, 외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고 제대로 한국 땅에 뿌리 내리기 위해 한국 여자와 하고 싶다.
올해 3월이면 경남대학교 경영학부 3학년 입학(야간)도 앞두고 있다. 다행히 부룬디 국립대학 경제학과 3학년까지의 학업이 인정 돼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해야했던 아쉬움도 해소하게 됐다. 앞으로 현대 위아의 차량부품 영업지원팀의 해외 수출 담당자로까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는 그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뭐든 열심히 배우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는 “누구보다 나는 축복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눈 코 뜰새 없이 빠듯하지만 지금까지 도전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언제나 도전하고 성취하며 살 것이고 그것이 삶의 이유이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창원’이란 이름이 새겨진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까지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