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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자격으로 서강대에 유학 온 중국인 자오 징(24ㆍ여)씨는 최근 친구가 공부하는 서울대에 가려고 지하철 2호선을 탔다가 ‘서울대입구’역을 찾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서울메트로가 역 이름을 ‘서울대입구(서울大入口)’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서툰 자오씨는 괄호 안에 표기된 ‘大入口’라는 한자에만 의존해 ‘커다란 입구’라는 정도로 여기고 역을 지나쳐 버렸고, 다시 서울대입구역을 찾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29일 서울시와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1974년 1호선 지하철 개통 당시부터 역 이름을 한글과 한자로 공동 표기하고 있는데, 일부는 중국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주먹구구식 표기를 하고 있다.
한글과 한자를 무리하게 혼용한 역 이름을 한글로만 표기하거나, 지하철 각 노선마다 다른 한글ㆍ한자 표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통일하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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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과 함께 지하철 5호선 ‘까치산’역과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은 한자를 한글과 무리하게 병기한 대표적 사례. ‘까치산’은 ‘까치山’으로, ‘가산디지털단지’는 ‘加山디지털團地’로도 표기하고 있는데 정확한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아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2호선 ‘동서울터미널’역도 외국인 관광객 편의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東서울terminal’로 표기하고 있는데, 정작 외국인들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2005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 채택한 서울의 중국어 표기인 ‘서우얼(首爾)’도 노선마다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지하철 5호선 신길역 등에 부착돼 있는 안내도에는 1호선 ‘서울역’을 ‘首爾驛’으로 표기하지만, 막상 서울역에는 ‘首爾驛’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다. 자오씨는 “고생 끝에 서울역에 온 중국인 관광객 가운데 상당수는 ‘首爾驛’ 표시가 없어 당황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와 관광업계에서는 중국인도 모르는 역 이름 한자표기 방식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국내 방문 외국인 관광객 중 중국, 일본, 대만 등 한자 문화권 관광객들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며 “외국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문제가 된 역의 이름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균일하지 못하고 어색한 표기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한자표기 자체가 내국인을 위한 보조수단 성격도 있는 만큼, 외국인 관광객들만을 위해 수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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