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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때 땡처리 물건 전부 팔고 사장님과 같이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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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10-0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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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한성의 아주특별한 인터뷰] '쇼호스트의 자존심' 유난희

유난희

 

대한민국 쇼호스트의 자존심, 유난희

꿈을 가진 사람, 가슴에 꿈을 품고 노력하는 사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런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뤄내고야 맙니다! 바로 우리나라 쇼호스트의 자존심 유난희 씨처럼 말이죠!

그녀는 방송사 시험만 스물 두 번이나 낙방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능력과 자질을 계속해서 닦는다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케이블 텔레비전 시범방송사업단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95년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채 쇼호스트가 되었고요! 그 후 6년 만에 억대 연봉을 받는 최초의 쇼호스트가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유난희 라는 이름을 믿고 상품을 구매하죠.

꿈을 이루기 위해서 세상과 만나고 부딪치고 때론 산산이 부서지는 아픔까지 참아낸 사람, 그래서 때로는 독종 소리까지 들어야 했던 우리나라 쇼호스트의 자존심, 유난희 씨를 9월 29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아름다운 독종’ 비결은 악바리 근성

▶ 유난히 아름다운 이름이신데, 예명이신가요?

아니요, 본명입니다.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에요. 어릴 때는 싫어했어요. 학교에 가면 첫 수업 날 출석부를 부르시면 이름을 못 외우는데 제 이름은 기억이 나시는 거죠. 꼭 두 번째 수업에 들어오시면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아는 사람?” 아무도 손을 안 들면 “유난희, 너 말해 봐라.” 그게 너무 싫어서 이름 바꾸고 싶었어요.(웃음)

▶ 방송생활을 하다 보면 좀 불규칙적이고, 특히 생방송이라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게다가 매출 스트레스도 상당할 텐데, 매출이 안 오를 때는 어떠세요?

어떨 때는 죽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제가 해도 안 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고 너무 창피하기도 해요.

▶ 아무래도 건강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좀 악바리라는 소리를 들어요.(웃음) 보기에는 굉장히 약해 보이는데 주변에서 제발 한 번쯤 쓰러져줘야 뭔가 한 마디쯤 하겠다고 할 정도에요. 지금까지 쓰러지는 법이 없어요. 악바리 근성이 있나 봐요. 그리고 원래 건강하기도 해서 잔병이 없어요.

▶ 쇼핑호스트 혹은 쇼호스트라고도 하는데 차이가 있나요?

원래 홈쇼핑이 시작된 미국에서는 쇼호스트라는 정식 명칭이 사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처음 시작할 때 양대 홈쇼핑사가 두 곳이었어요. 약간 경쟁적인 의미로 한 곳이 쇼호스트를 하다 보니까 다른 한 곳에서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쇼핑호스트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어요. 그래서 쇼핑호스트는 우리식 용어이고 직업 명칭으로도 쇼핑호스트가 먼저 등록이 되어 있어서 우리나라는 좀 다르죠.

▶ 우리나라 쇼호스트 1세대이신데,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1995년도에 시작했으니까 13년째에요.

▶ 그때 같이 시작했던 동기 분들이 현직에 계신가요?

그 당시 두 홈쇼핑 사에서 40명 정도가 시작했는데 지금은 8명 남아있어요.

◇ “필요 없으면 사지 마세요!”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해

▶ 13년 동안 올린 매출 총액은 어느 정도일까요?

계산해 본적은 없는데 가끔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면 기자 분들이 얼추 계산해 오시는데 몇 천 억대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매출이 가장 많이 올랐을 때는 2시간에 27억을 한 적도 있어요. 한참 홈쇼핑이 전성기를 누릴 때였는데 10~20만원대 의류 상품이었어요. 그럴 때는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죠. 물론 저 혼자 하는 건 아니에요. PD나 MD나 모두가 한 박자가 맞아야 잘 나오는데 왠지 뭔가 해 낸 것 같은 성취감이 참 좋아요. 그게 매출이 안 나왔을 때의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릴 정도로 너무 좋죠.

▶ 방송 중에 종종 “사지 마세요!”라고 한다면서요. 쇼호스트로서 잘 못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웃음)

고가의 상품일 때 그래요. 제가 주고 하는 상품이 수입상품이거나 명품 아이템들이다 보니까 고가잖아요. 저 역시 비싼 걸 충동 구매했을 때는 후회가 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잔여시간이 있어도 “시간이 3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서두르지 마시고 다음에 또 방송할 수 있으니까 한 번 더 고민하시고 선택하세요. 안 사셔도 괜찮아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나중에 매진되는 경우가 있어요.나중에 담당PD가 “지금 몇 벌밖에 남지 않았고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서두르세요.”라는 멘트를 요청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반대의 멘트를 해요. 서두르지 마시고 사지 마시라고 하면 그게 매진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시청자들은 저의 말을 듣고 안 사셨다가 매진이 되면 후회하실 수 있는데 그때 하는 멘트는 “매진이 되었다고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또 기회가 있을 거고 지금 망설였다는 것은 정말 내 물건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죠.

▶ 사실 쇼호스트의 임무는 일단 검증된 제품이기 때문에 좋은 제품과 좋은 가격으로 소개하는 거잖아요. 오히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두르세요, 후회하실 거예요 등등. 이런 말을 더 적극적으로 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말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상황에 따라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멘트를 하는 것 보다는 아까 말씀드렸던 멘트가 더 고객에게 전달될 수 있어요. 어차피 고객은 한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제 고객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저를 믿어야 하거든요. 제가 홈쇼핑 사를 몇 군데 옮겨 다녔는데 그분들이 저를 따라서 채널을 바꾸시더라고요.

▶ 내 고객이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일단 물건부터 팔고 보자는 식의 접근이 아니겠군요.

뱀장사, 약장사 그러잖아요.(웃음) 그분들의 멘트를 들어보면 세상 최고의 약이나 상품이 다 있는 거거든요. 그걸 사서 집에 가서 써 보고 만족이 안 돼서 그 다음날 다시 가보면 그 자리에 그분들은 없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시청자는 제가 판매한 물건을 쓰고 좋다는 평도 주시고 또 만족하지 않을 때는 AS를 저한테 요청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럴 때는 제가 직접 고쳐드리지는 못해도 연결도 해 드려요. 어차피 쇼호스트라는 직업은 상품을 소개하는 진행자뿐만 아니라 소개하고 고객과 함께 상품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사지 말라는 멘트 때문에 혼 난 적도 많아요. 아무래도 업체분들이나 홈쇼핑 관계자분들은 하나라도 더 사라고 말을 해야 도움이 되는데 사지 말라고 하니까 저 사람이 무슨 멘트를 하는 거야? 타박을 들은 적도 있고 실제로 그런 말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제 고객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 쇼핑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유난희 씨가 소개하는 제품은 구매하게 되는데 어떤 노하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죠?

일단 제가 그 상품을 잘 알아야 해요. 사용해 봐야 하고 쓰고 난 후에 좋은 점도 있지만 모든 상품에 최고의 상품은 없거든요. 좋은 점이 있는 것만큼 단점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쓰고 난 후에 더 많이 강조하고 단점도 숨기지 않고 말씀드려요. 현명한 선택은 고객이 하게끔 하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쇼호스트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품을 충분히 쓰고 난 후에 설명을 해요.시청자들 중에서는 그 상품을 처음 본 분들도 있지만 그 상품을 만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의류를 소개하면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지만 디자이너도 시청하실 수 있고 섬유 쪽에 있는 분도 보실 수 있어서 제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박사는 아니지만 얕은 지식이라도 많이 알고 있어서 그런 부분을 전달해야 듣는 사람들도 저 사람이 많이 공부를 했구나, 알고 있구나 신뢰를 줄 수 있거든요.그래서 실전에서 느낀 경험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공부도 합니다.

◇ 눈으로 보여주는 실험, 나 역시 소비자니까요

▶ 가위, 자 같은 도구가 방송에 등장을 했어요.

제가 1995년도에 시작해서 그때 아마 처음 자를 썼을 거예요. 보석을 소개하는데 화면에 보석 알을 클로즈업하면 굉장히 커 보이잖아요. 실제로는 보석 알이 0.5cm밖에 안 되는 알이었거든요. TV 수상기에 따라서 40인치로도 보일 수 있는 거고 굉장히 크게 보일 수 있어요. 그때 제가 처음 자를 가지고 방송에 들어가서 사이즈를 쟀어요. 그랬더니 화면에 굉장히 큰 다이아몬드로 보였다가 에게, 0.5cm밖에 안 돼?(웃음) 그래서 홈쇼핑 관계자들은 자를 쓰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시청자들은 정확하게 사이즈를 알려주니까 굉장히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보석 방송에서 아예 자를 준비를 해서 보여주는 게 사례가 되었는데 처음에 자를 이용한다든가 오리털 이불을 잘라서 보여준다든가 하는 실험을 많이 했어요.눈으로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시고 많이 믿으시더라고요.예전에 오리털 이불을 방송할 때 보통 오리털이 솜털, 깃털이 9:1, 8:2의 비율이 있어요. 이불이 겉면에 쌓여있으니까 눈으로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방송 중에 가위로 잘라버렸더니 스튜디오에서는 솜털이 날리고 난리가 났는데 그때 시청자들은 굉장히 좋아하셨어요.눈으로 보니까 솜털이 많이 들었구나, 이런 것들이 고객과 제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 역시 소비자니까요.

유난희

 

▶ 시연했다가 접시를 깬 적도 있으시죠?

실수한 적도 있어요.(웃음) 깨지지 않는 접시로 명품에 속하는 그릇이었는데, 그 전에는 예쁘게 그림으로 보여주는 연출만 했거든요. 그런데 방송 중에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이게 정말 안 깨질까? 그래서 한 번 던져볼까요? 그랬더니 업체분들도 괜찮다고 해서 던졌는데 정말 안 깨지는 거예요. 그 순간 주문 전화가 막 올라가더라고요. 말로만 하다가 안 깨지는 걸 눈으로 보니까요. 그러니까 담당PD도 신이 났고 붐업이 돼서 멘트 없이 계속 던지는 시험만 한 거예요. 그러다가 같이 나온 분과 함께 던졌는데 이 접시 2개가 부딪치면서 바닥에 산산조각이 났어요. 그때는 정말 200콜 하던 주문전화가 막 떨어지는데 식은땀이 흐르면서 순간 스튜디오에 적막이 흘렀어요. 이걸 어떻게 수습을 하나? 게다가 화면에는 카메라가 클로즈업을 해서 조각난 접시가 바닥에 깔려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보석상품 소개할 때 공부하던 게 생각이 났어요. “여러분, 보석 중에 가장 강한 보석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루비나 사파이어를 커팅할 때 다이아몬드 칼날을 사용하는데 그렇다면 다이아몬드를 자를 때는 무슨 칼날을 쓸까요? 역시 다이아몬드입니다. 물을 이용해서 다이아몬드 칼날을 쓰는데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강한 것과 강한 것이 만나면 깨집니다. 이 접시를 설거지를 하실 때는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시면 평소에는 쉽게 깨지지 않을 겁니다.”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멘트를 한 건데 저도 모르게 나왔고 이후에는 다시 전화위복이 되어서 주문 콜이 굉장히 좋았던 경험이었어요.

▶ ‘경우의 수’에 대한 대비가 엄청나야 하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후배들한테도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쇼호스트는 눈을 뜬 순간부터 밤에 잠자려고 눈을 감을 때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공부라고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버릴 것이 없거든요. 지하철을 타고 가든, 광고 전단지를 보든, TV를 보든, 하다못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더라도 그게 다 공부에요. 트렌드이고 유행되고 있는 거고 광고 카피도 내 멘트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책을 많이 봐야 해요. 책도 장르에 관계없이 소설부터 시집까지, 잡지도 패션지부터 전문지, 주부생활지까지 많이 보고 많이 알고 있는 것만큼 때와 상황에 따라서 멘트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순발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을 때 감각과 어우러져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공부 많이 하고 책을 많이 보라고 하죠.

◇ 생방송 13년, 가슴의 혹 떼고 방송에 나간적도 있어

▶ 생방송만 13년째라고 하셨는데 혹시 펑크 낸 적은 없으세요?(웃음)

5분 정도 늦은 적이 있어요. 주로 새벽방송이었는데 워낙 아침잠이 많아서 새벽에 못 일어났을 때, 피곤이 누적될 때는 거의 도깨비 화장을 하고 들어가죠.(웃음)그리고 완전히 펑크를 낸 적은 딱 한 번 있었어요.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후두염에 걸렸는데 의사가 목을 쓰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 고정방송이라서 계속 했더니 그날 방송에는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너무 놀랐어요. 그때는 방송을 펑크 냈죠.

▶ 아침에 수술을 하고도 방송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오른쪽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낮에 방송이 있는데 아침에 병원에 들러서 검진을 받고 가자고 해서 병원에 갔어요. 갔는데 오른쪽 가슴에 혹이 있는 거예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알겠다고 하고 그 날은 그냥 왔어요.날짜를 잡다 보니까 방송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수술을 해서 혹을 제거하고 가슴에 붕대를 감고 방송을 했거든요. 주변에서 동료들이 방송에서 보니까 가슴이 꽤 커 보인대요. 어쨌든 그날 너무 아파서 3~4일을 쉬고 다음날 방송을 하러 갔는데 그때도 가슴에 붕대를 감고 가니까 저 여자, 며칠 안 나오더니 가슴 수술을 했나 보다 그러는 거예요.(웃음)나중에 분장실에서 후배와 함께 옷을 갈아입다가 가슴에 감긴 붕대를 보고 묻기에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수술하고 무슨 방송을 하느냐고 한 적이 있어요.

▶ 아나운서 시험에 22번을 떨어지셨어요. 그때의 정신력이 유난희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 아닐까요?

정신력은 저희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훈련인 것 같아요. 아버지가 군 출신이라서 정신력 하나는 엄청나신 분이니까 책임감 같은 건 엄하게 교육받았고 그런 영향을 참 많이 받았어요. 아나운서 시험에 떨어지고 나서도 다시 도전한 것은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이에요. 오늘은 떨어졌지만 내일은, 다음은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항상 해요.남편도 저 보고 철없다고, 현실성이 없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거든요.(웃음)

◇ 포기할 수 없는 엔돌핀 ‘쇼호스트는 나의 천직’

▶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이 책에 보니까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 독종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가정에서의 모습은 어때요?

일과 가정을 모두 성공했다고 하면 너무 얄밉지 않아요?(웃음) 솔직히 그 말씀을 들으면 부끄러워요. 제 자신이 일과 가정을 모두 잘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아무래도 일을 하니까 일에 조금 더 치중을 두는 게 사실이에요. 가족이 초창기에는 다 반대를 했는데 지금은 많이 이해를 해 주고 있고 굳이 점수를 매긴다면 솔직히 가정주부로서는 시원찮아요.(웃음)

▶ 보통 아기를 가지면 일을 포기하게 되는데 그때도 방송을 하셨어요?

저는 쌍둥이라서 배가 엄청나게 불렀어요. 임신 5개월쯤인데 다니면 어른들이 만삭인데 집에 있으라고 하실 정도로 배가 굉장히 불렀는데 새벽 2,3시에 끝나는 방송도 다 했어요. 그리고 아기 낳기 한 달 전까지 방송하고, 책임감이 뭔지..(웃음)저희 집안이 아들이 귀한 집안이라서 시어머니께서 보시기에 며느리가 새벽 3시에 차 몰고 자유로를 다니고 하니까 굉장히 걱정도 많이 하셨는데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했어요. 방송도 다른 임신하지 않은 사람과 차이 없이 똑같이 캐스팅 받고 했습니다.

▶ 남편은 뭐라고 하셨어요? 그럴 것 같으면 그만두고 집에 있으라고 하셨을 것 같은데.

남편, 친정 부모님, 시댁식구들 다 말리셨어요. 그리고 공중파 방송이나 남들이 많이 아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도 홈쇼핑을 모를 때에요. 그리고 보는 사람도 없을 때니까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방송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왜 저렇게 밤에 저 몸을 해 가지고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 가족이 반대를 했죠.

▶ 그렇게 반대를 했는데 왜 그렇게 하고 싶던가요?

재미있고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 성취감 같은 게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오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요. 하도 그만두라고 해서. 그런데 일터로 나오면 굉장히 기분이 좋은 거예요. 일하는 것 자체가 엔돌핀이 나오기 때문에 나는 이걸 평생 해야겠어요. 팔자인가 봐요.(웃음)

◇ 동경의 대상이었던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만 22번

▶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어요?

원래 성격이 내성적이에요. 나서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책을 읽히잖아요. 그러면 일어나서 읽는데 책상이 덜덜 떨릴 정도로 목소리가 떨렸던 학생이었어요. 자라면서 변하더라고요.

▶ 전공은 뭘 하셨어요?

가정관리를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피아노를 가르치셔서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2까지 10년 넘게 피아노를 배웠어요. 고2 때 이게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왜냐하면 피아노를 십 몇 년을 치면서 콩쿠르에 나가서 입상한 적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음대 가는 걸 포기하고 대학 들어갈 때 가정관리학과는 아버지가 골라주셨어요. 교사가 되라고, 여자의 최고의 직업은 교사인데 그 중에서 가정교사가 참 좋은 것 같다고 하셔서 가정관리학과를 아버지가 선택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어렸을 때 꿈이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걸 좋아해서 방송국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막연한 동경을 하던 대학교 때 방송시험 준비를 하면서 부전공으로 영문학을 선택했어요. 아나운서들 전공을 보니까 어문계열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방송사 준비를 하게 된 거예요.

▶ 신혼여행도 미루고 아나운서 시험을 보셨어요.

아나운서 시험을 계속 보러 다녔는데 제가 서른 살에 결혼했어요. 어쩌면 아나운서를 볼 수 있는 기회로서는 나이가 많은 편이거든요. 케이블 채널의 경제채널 아나운서였는데 2차까지 합격을 한 거예요. 3차 면접시험이 최종인데 그 날이 결혼식을 한 그 날이었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저희 결혼을 허락하신 조건이 일을 그만두라는 거였거든요.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가지 않고 시험을 보러 갔어요. 그 웨딩 머리를 하고요.(웃음) 그래서 첫 날은 서울에서 보내고 그 다음 날 신혼여행을 가서 너무 즐거웠어요. 이건 뭔가 의미가 있다, 신혼여행 당일 날 3차 시험을 본 건 합격을 하려나 보다, 드디어 내가 서른에 아나운서가 된다는 생각도 했었고 또 하나는 여기서 떨어지면 더 이상 자격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었어요. 왜냐하면 나이를 떠나서 유부녀잖아요. 지금은 없어진 걸로 아는데 당시에는 나이제한과 결혼의 유무 제한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신나게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보니까 떨어졌더라고요. 그때가 가장 암담했어요. 더 이상 나에게는 기회가 없나 보다, 기회만 있으면 도전해 볼 텐데 결혼한 유부녀이기 때문에 기회마저 없어지는구나, 가장 암담했던 때였던 것 같아요.

▶ 이 세상에는 직업이 3,4만 여개가 된다고 하는데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으셨어요?

두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뭐가 좋은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하고 싶었던 직업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제가 될 것 같은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도전했던 것 같아요.

◇ 땡처리 3천 장 모두 매진, 업체 사장님과 같이 울어

▶ 쇼호스트가 된 계기는 뭐였어요?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사실 성우시험도 봤었어요.(웃음) 방송사라는 곳은 다 지원했었어요. 아나운서만 22번이고 성우시험, MC시험 등 다 봤는데 그러다 보니까 나이를 먹고 결혼도 한 거예요. 그러다가 31살에 쇼호스트가 되었는데 신문을 보니까 홈쇼핑 텔레비전에서 쇼호스트라는 직업이 보여요. 홈쇼핑 텔레비전에서 상품을 소개하는 전문 진행자. 쇼호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것은 자세히 모르지만 방송시스템이구나, 진행자구나 그거 하나만 보고 응시를 하게 되었어요. 가장 보람 있었을 때가 97년도 IMF가 왔을 때에요. 그때 홈쇼핑이 그전까지는 상품준비가 참 어려웠는데 IMF가 오면서 부도나기 직전의 업체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큰 기업이 무너지면서 거기에 납품하는 물건을 팔 수 있는 판로가 없어서 홈쇼핑으로 많이 왔거든요. 여의도에서 중소기업 박람회를 많이 했던 것처럼요.그때 기억에 남는 분이 부도나기 직전에, 우리가 속된 말로 땡처리라고 하잖아요. 그냥 원가만 받고 판매를 하면 그걸로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다고 하신 분이 계셨어요. 미팅을 하는데 저희 아버지 정도의 연세이신데 얼굴이 너무 안 되셨더라고요. 이것만 판매를 하면 월급주고 끝난다고 했는데 그때 3천 장이 다 매진이 되고 반응이 좋아서 MD분이 업체 사장님에게 다시 물건을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이 사장님이 저에게 무릎을 꿇으시면서 제 손을 잡고 막 우시는 거예요. 너무 고맙다고. 감사하다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면서 같이 울었어요. 사실 그 전까지는 상품을 소개하고 판매한다는 쇼호스트로서의 의미가 강했는데 그 경험을 통해서 내가 중소기업을 돕는데 한 몫을 하고 있구나 하는 큰 사명감도 느꼈던 IMF 그때가 참 잊혀지지 않아요.

▶ 그와 비슷한 일화가 또 있을 것 같아요.

IMF가 아니어도 물건을 정말 잘 만들었는데 마진 때문에 큰 유통업체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리고 어떻게 판매해야 할지 몰라서, 광고를 하면 판매가 잘 될 것은 알지만 광고비가 너무 비싸니까 등등의 이유 때문에 정말 잘 만들었으나 방법을 몰라서 오신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을 잘 소개해서 판매가 잘 되면 자신감을 가지고 내가 한 번 브랜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사장님도 계시고 또 어떤 경우는 매출이 안 좋았던 업체를 제가 진행해서 매출을 살려드린 경우도 있어요. 그 업체 같은 경우는 제가 방송하기 전까지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셨대요. 더 이상 홈쇼핑에서 판매가 되지 않는구나 해서 접을 생각이었는데 제가 진행을 하면서 매출이 다시 좋아서 다시 되살아났어요. 끝나고 나서 회식을 같이 하는데 업체 디자이너가 웃으면서 자기를 살려줬다고 하더라고요. 이번에도 매출이 안 나오면 잘릴 거였다고.그런 일들에 보람을 느껴요.

▶ 그런데 중소기업 하시는 분들은 홈쇼핑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40%를 가져간다고 하던데 그런 얘기들이 안 들렸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 말씀에 동감입니다. 예전에는 상품이 많지 않아서 홈쇼핑 마진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그런데 홈쇼핑이 굉장히 잘 되다 보니까 찾아오는 업체도 늘어나고 또 그러다 보니까 마진이 높아졌더라고요. 제 주변에 이 상품이 홈쇼핑에서 판매가 잘 될지 안 될지 봐 달라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리고 홈쇼핑 사업도 해 보고 싶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께 드리는 조언은 일단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라는 거예요. 이 상품의 판매가가 전부 다 내 이익이 되지는 않는다, 마진이라든가 반품에 대한 관리라든가, 홈쇼핑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말씀드려요.그걸 알고도 시작하는 분들도 계시고 듣고 나면 자신이 없다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 부분이 저도 홈쇼핑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마진을 조금 낮춰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 쇼호스트의 자질은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노력’

▶ 쇼호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요?

제 개인 홈페이지에 그런 문의가 굉장히 많아요. 진로를 결정하는 친구들의 고민도 많지만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의 회의를 하는 여성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리고 요즘은 보이는 게 많으니까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여성들을 보면 자신은 더 초라하게 느끼게 되잖아요. 그런 분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문의를 하시는데 저는 시작하라고 해요.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가에 대한 의지, 하고 싶은 일인가, 잘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감만 있으면 잘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분들께 내 현실을 불평하지 말고 거기에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언제든지 시작을 하라고 하죠. 저도 31살에 쇼호스트를 시작했잖아요. 요즘 수명이 길어져서 7,80까지 살잖아요. 나이 30,40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삼십년은 일할 수 있는 거거든요. 이삼십년이면 긴 세월이에요. 10년이면 전문가가 되는데 20,30년이면 그 분야의 박사가 되는 거예요.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면 해라, 하면 된다고 메시지를 드려요.

▶ 지금 쌍둥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하셨는데 엄마가 없어서 라면만 먹는 거 아닌가요?(웃음)

사실 오늘도 방송하러 오는데 남편이 라면 먹었어요.(웃음) 밥을 차려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차가 막힐까봐 나간다고 하니까 라면 먹을게 하더라고요. 참 미안한데 한편으로는 이해해 주고 도와주니까요. 사실 제가 밖에 나와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안에서 도와주기 때문이에요. 남편이나 아이들이 죽어도 안 된다, 나 밥 차려주고 나가라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고마워요.

▶ 홈쇼핑 업계에서 일등을 유지한다는 건 굉장히 부담이 되실 것 같아요.

부담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이 노력해야 되더라고요. 저는 수입의 많은 액수를 저를 위해서 써요. 물론 방송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외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 달에 잡지를 12권을 보거든요. 책도 사고 문화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공연, 영화를 보는데 들어가는 돈이 참 많아요. 그래서 계속 자신을 발전시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실 2등이 더 편한 자리거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일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지하려면 오히려 제가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보다 배를 노력해야 이 자리를 유지하겠더라고요. 열정이나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데 정말 부지런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누구나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하고 말겠다는 의지는 약한 것 같아요. 그 의지를 불러내는 건 성실한 자세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게 결국은 본인이 원하는 자리, 본인이 원하는 목표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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