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경비원 김 모(63) 씨는 사무실로 걸려 온 주민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주민이 "키를 두고 왔으니 아파트 공동현관문 좀 열어달라"며 전화를 걸자, 김 씨는 기계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문 열어달라는 요청은 셀 수도 없이 많아요. 택배원들이나 외부 손님들은 키 없으니까 다 열어줘야 하고…. 그래서 자리를 뜨면 아예 마비되니까 곤란하고 힘들죠. 스트레스 많이 받아요"
대화를 나누던 중 아이들 서너 명이 자전거를 타고 와 "바퀴에 바람을 좀 넣어줄 수 없겠느냐"고 묻자 김 씨는 익숙한 듯 펌프를 꺼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어줬다.
"아파트 차원에서 이런 서비스를 하게 돼 있으니까 하는 거죠. 한두 명씩 오면 상관없는데 여러 명 몰리면 정신없어요"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20여 분 동안 초소 전화기는 다섯 번이나 울렸고 업무를 지시하는 무전도 수시로 들어왔다.
김 씨가 속한 아파트 단지 경비원들은 2교대 체제로 돌아간다. 정신없는 24시간을 보내고 24시간 동안 쉬고 나면 또다시 24시간 근무가 돌아오는 것이다.
50~60대가 대부분인 경비원들은 당연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경비초소는 화장실이나 씻을 수 있는 공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잠시도 쉴 시간이 없어요. 야간에 쉴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3시간 정도 될까. 경비생활이 그냥 먹고 노는 것 같아도 이런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많다고…"
입주민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음식 쓰레기통을 씻고 쉼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내는 것보다 경비원들의 어깨를 더욱 처지게 하는 것은 '인격모독'이다.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박 모(50) 씨는 "입주민 중에는 '내가 돈 내서 너희가 월급을 받는데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며 마치 조선 시대 하인 부리듯이 하는 경우도 많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박 씨는 "경비원이 보이면 오라고 하는 거에요. 가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키는데, 아직은 경비를 하면 자존심 상하는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라며 말을 흐렸다.
서초구의 또 다른 아파트에서 일하는 김 모(45) 씨는 "젊은 사람이 입주민으로서의 우월의식 같은 것에 가득 차서 '나는 당신을 부리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인격모독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도 경비원들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대부분 미래가 불안정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경비원 박 씨는 "싸우게 되면 무조건 경비가 불리하다. 싸운다고 하면 그냥 그만둘 생각을 하고 싸우는 것이다. 누가 부당한지는 상관없이 일단 목소리 크게 나면 경비원은 일을 못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 역시 "매년 1년씩 재계약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근무태도가 불성실해 보인다거나 하면 1년이 지나기 전에 자르는 경우도 많다. 그냥 일용직 노동자 같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급기야 지난주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는 평소 업무와 관련해 입주민과 불화를 겪던 한 경비원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본연의 경비 업무가 아닌 추가 업무들이 과도해지면서 경비원들의 피로가 깊어지는 것은 물론, 인격모독 등 정신노동의 측면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