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이재오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이른바 '1987년 체제'가 바뀐 사회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구조의 폐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여권 지도부에서 개헌논의가 분출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24일 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참석해 개헌논의에 불을 댕겼다. 잘 알려진 개헌론자인 이 의원은 당 지도부에 이번 정기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줄 것과 야당과의 협상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국민들이 개헌 청원을 했고 여야 의원들의 결의안이 있으며 개헌모임은 이미 국회의 과반수를 넘어 그 자체로 개헌 발의권이 확보돼 있다"면서 "개헌을 논의조차 안하고 넘어가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워낙 개헌에 대한 신념이 굳고 관련 발언도 자주해왔지만 이날 회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전개됐다. 이재오 의원의 발언을 이어받아 김태호 최고위원과 이인제 최고위원도 개헌 필요성을 강하게 거론하고 나왔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한국의 낡은 권력구조는 시대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개헌론에 가세했고, 이인제 최고위원은 "현재 박근혜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시급한 현안이 많아 정부가 개헌을 주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국회가 주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우선 여당 내부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야당과 교류를 시작해 국민적 공감을 얻고 여야합의안을 도출한 뒤 다가오는 총선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개헌일정을 제시했다.
예기치 않게 개헌논의가 확산되자 김무성 대표는 '세월호정국 타개가 우선'이라며 수위조절에 나섰지만 김 대표 역시 ‘분권형 개헌론자’이다.
김무성 대표는 7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5년 단임제는 유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겐 너무 길다. 강한 제왕적 권력과 승자 독식의 게임구조, 총선·대선 주기 불일치도 문제인 만큼 개헌으로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의 적기는 내년 초라고 했다.
김무성 대표까지 여당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4명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어 세월호정국이 풀리면 개헌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개헌을 위한 주,객관적인 조건은 어느정도 성숙돼 있다. 19대 국회 전반기 강창희 국회의장은 개헌자문위를 가동해 헌법개정안을 만들었다. 지난 2012년 국민 12만명이 서명한 개헌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됐고 여야 국회의원 46명은 국회에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한 상태다. 김형오, 강창희 국회의장 등 역대 국회의장은 물론 정의화 국회의장도 개헌추진에 적극적이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과반수인 154명이 개헌의원모임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여서 국회내 컨센서스가 이뤄지면 개헌발의가 가능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일부 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해 현재는 숫자가 149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사회현실과 제도의 불일치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은 정치권이다. 양당대립구도의 고착화로 국회와 국정파행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이는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주요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지 오래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 걸친 헌법 조항을 손질하되 권력구조부분에서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양당체제 지속의 원인이 되고 있는 선거구제도의 개편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김태호 최고위원 (사진=윤창원 기자)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은 이와관련해 "정치가 고장 난 가장 큰 원인은 진영논리다. 승자 독식의 권력구조를 깨지 않으면 이런 정치는 계속된다"고 주장했고,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내각제로의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도 개선 필요성을 거론했다.
국회 개헌모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의원은 24일 "제왕적 5년 단임대통령제의 폐해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모델 즉 대통령직선제분권형 권력구조로의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우윤근 의원이 말하는 독일·오스트리아모델은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되 국가원수와 국군통수, 외교안보분야에서 비상대권행사 등으로 권한을 축소하고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내치를 총괄하는 방식이다. 덧붙여 책임정치구현을 위해 총리에 대한 건설적 불신임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건설적 불신임제도는 총리 교체요구가 있을 경우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는 방안이 아니라 의회가 후임자를 선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는 제도다. 독일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행 헌법의 폐단에 공감하는 국회의원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개헌을 위한 주객관적 조건이 무르익고 있어 세월호정국에 이어 개헌정국이 도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