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종민기자
소득은 늘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부채는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기초 단위, '가계'에 대한 얘기다. 정부가 최근 줄줄이 내놓은 정책들은 경기부양을 위해서라면 가계 빚 증가 정도는 감수하겠다는 식이다. 가계부채는 그러나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따라서 경기 부양도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란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15개 시민단체들은 4일 공동기자회견에서 정부의 9.1 부동산 부양대책을 '투기' 부양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가계부채 대책은 없고 빚을 내서라도 빚을 사라고 부추기는 규제완화책만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여기서 더 나가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 정책을 '카지노믹스', 즉 도박경제로 명명했다.
이들 우려의 초점에는 일반 가계가 있다. 최 부총리의 경기부양 정책은 '부동산 띄우기->경기 활성화->일자리와 임금 증가->가계소득 증대->경기 회복'이라는 순환을 노리고 있는데, 가계소득이 정체돼 있다면 불가능한 얘기라는 지적이다. 특히 부동산을 띄우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문제다. 벌써 시장이 들썩이고는 있지만 재건축 지역이 밀집한 강남권이 중심이고, 전세금은 계속 오르면서 서민주거안정이 위협받고 있다.
실제로 OECD가 집계한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8.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부채를 줄였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는 가계부채의 핵심인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그 결과 한 달 만에 은행권 대출이 1.3%가 늘었다.
정부의 구상처럼 이렇게 늘린 부채가 경제회복의 지렛대가 되려면 부동산 경기 활성화가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와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빚에 워낙 억눌려 있다보니 집값이 올라 자산이 늘었다는 '착시'조차 겪는 게 어려운 형편이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163.8%이다. 소득에 비해 빚이 훨씬 많다는 얘기다. 앞서 정부가 가계소득 증대방안을 내놓긴 했지만 주식부자와 대기업노동자에 혜택이 한정돼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 고위 간부 출신인 한 인사는 "부의 효과(소유한 주식이나 부동산 값이 올라가면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는 재산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어차피 통하지 않는 얘기고, 소수의 자산가들은 경기에 따라 소비 규모를 바꾸는 계층이 아니"라며 "중산층 이하의 부채를 줄이고 소득을 늘려야 진짜 소비가 나오고 내수가 살고 경기가 사는 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소득 증가와 유리돼 부채에 의지한 정책이 제한적 효과만 가져온다는 지적은 당장 가까운 일본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지난 3일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본격적으로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아베노믹스를 두고 '심판의 시간'에 접어든다고 했다.
그나마 아베 총리는 강력하고 일관된 메시지로 경제 정책을 이끌어 온 덕분에 '2년'이라는 유효기간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최 부총리의 경우도 '실세'이긴 하지만 아베 총리 정도의 정치력을 발휘하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 일정 상 1년 6개월 뒤면 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잘못된 정책보다 더 나쁜 정책이 일관성 없는 정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최 부총리는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주고 있는 만큼 경기 부양의 효과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부 총리의 임기는 제한돼 있고 이제 쓸 만한 카드도 남아있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