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 (자료사진)
1600억원 대의 횡령과 배임 및 탈세 혐의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현 CJ회장에 대한 ‘범 삼성가’의 탄원서 접수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대기업 오너나 유력인의 검찰 수사와 재판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선처’ 탄원서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매섭다.
탄원서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다음달 4일 이 회장의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갑작스레 탄원서를 낸 사실이 공개되면서 그 배경에 대한 의구심마저 제기되는 실정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이 회장에 대한 ‘범 삼성가’의 탄원서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제출됐다.
탄원서의 내용은 이 회장이 지난해 신장이식 수술 등으로 건강이 나쁘다며 선처를 바란다는 것으로 여기에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과 딸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그리고 CJ 오너 일가와 소송전을 벌였던 이건희 회장의 일가인 홍라희 여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은 지난해 비리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 받았고
건강상의 문제로 불구속 상태에서 다음달 4일 항소심을 앞두고 있다.
◈ 비공개로 추진 ‘이재현 회장’ 선처 탄원서...갑자기 공개? 탄원서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하지만, ‘사람이 하는’ 재판부의 판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는 법조계에서 그간 계속 되어온 지적이다.
탄원서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탄원서는 그 내용이 비공개로 다뤄져 재판부와 친인척, 이해 당사자들 밖에 제출 사실이나 작성 내용을 알지 못한다.
이 회장의 탄원서 역시도 원본 내용이나 작성 경위 등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법원 관계자는 “탄원서에 대한 내용은 해당 변호인과 재판부 등 소수의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인데,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탄원서 제출 사실이 대대적으로 알려진 경위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CJ 측도 전날 “탄원서의 접수 여부나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회장의 탄원서는 최근 접수됐으며 이 회장 측에서 ‘범 삼성가’ 일가에게 적극 도움을 요청해 은밀히 탄원서 작성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측도 탄원서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평소에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범 삼성가’ 일가들의 세세한 명단 등 탄원서의 자세한 부분까지 거론되게 된 점에 대해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일가친척의 입장에서 선처 탄원서 제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부분이 재판을 앞두고 대대적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상당히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대기업 오너 비리 ‘단골’ 선처 탄원서... 법조계 반응 '싸늘'과거 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나 재판을 받는 대기업 오너나 유력인의 사건에서 매번 등장하는 것이 유력단체나 인사들의 ‘선처’ 탄원서였다. 그때마다 선처 탄원서 제출이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법의 심판을 공정하게 받아야 할 사회 유력인사들이 자신의 지위나 위세를 이용해 우호적인 여론조성은 물론 더 나아가 재판부에 영향을 주려는 인상이 짙었기 때문이다.
국민적 지지를 한껏 받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과거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국내 대기업 오너에 대한 선처 탄원서에 이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곤혹을 치르고 사과를 하는 등 선처 탄원서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회장의 ‘범 삼성가’ 탄원서는 그간 삼성그룹 측과 CJ그룹 측의 소송 탓에 더욱 주목을 받는 면도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범 삼성가 탄원서는 공개된 기자회견이나 자료를 통해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제출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갑자기 탄원서 제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 모임의 한 변호사는 “탄원서가 이 회장 입장에서 나쁠 것이 없고, 법을 어긴 것에 대해 가족끼리 감싸려는 부분은 사회정의 구현과는 무관한 일인데 재판부와 관계자 밖에 알 수 없는 탄원서가 이렇게 알려지는 것은 문제”라고 일갈했다.
거액 비리 때마다 등장하는 유력인사들의 선처 탄원서가 '그들만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