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9일 21시 10분경 1급 지체장애인인 이모씨는 서울역에서 공익요원의 도움을 받아 KTX에 탑승한 후 천안·아산역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아뿔사! 서울역 역무원이 천안·아산역 역무원에게 이씨가 출발했다고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코레일 서비스 업무 매뉴얼에는 승차역 역무원은 도착역 역무원이 휠체어 장애인이 탄 열차 도착 시간에 맞춰 승강장에서 대기할 수 있도록 도착역에 장애인의 승차위치 등을 미리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씨가 KTX에 탑승하면 서울역 역무원은 천안·아산역 역무원에게 몇 호차 열차에 탔으니 시간에 맞추어 나와 있으라고 연락해야 했는데, 이것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이씨는 21시 47분경 천안·아산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역 직원들은 나와 있지 않았고, 열차 승무원들은 이씨를 승강장에 내려놓고 천안·아산역 역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바로 출발했다. 11월 밤에 이씨는 홀로 승강장에 남겨진 채 역무원이 도착하기까지 5분 동안 추위와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면서 역무원을 기다렸어야 했다. 이씨는 화도 났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코레일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하였다.
단순히 은혜적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코레일 사이트에는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가 설명되어 있다. 교통 약자인 장애인이 열차를 이용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직원이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코레일이 장애인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은 단순히 서비스 제공 차원에 불과한 것인가. 장애인은 코레일이 도움을 주면 고마운 것이고 도움을 주지 않으면 자신의 장애 탓으로 자책해야 하는 것인가. 이씨는 용감하게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에 화답했다.
일본 도쿄 심바시역에서 장애인의 이동을 위해 역무원이 에스컬레이터 를 차단하고 함께 내려가고 있다. 이때문에 다른 한 방향으로 이용객들이 몰렸지만 불편한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제공=네이버블로거 문짱(mjjlove777)
1심과 2심법원은 코레일 업무매뉴얼에 장애인이 열차에 승하차할 때 도우미 활동을 규정한 취지는 휠체어 장애인의 원활한 승하차로 열차의 적정한 운행을 돕기 위하는 것뿐 아니라 “장애인에게도 자신 때문에 열차 운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심적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후 “도우미 활동이 단순히 은혜적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법원은 “코레일은 휠체어 장애인이 열차를 이용할 경우 미리 승강장에 대기하여 장애인의 승하차를 도와 장애인의 이동을 도울 주의의무가 있는데 서울역 역무원이 도착역인 천안·아산역에 이씨를 위해 안내 도우미 요청 통보를 하지 않은 것은 과실이 있는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손해배상액은 비록 이씨가 홀로 있던 시간이 약 5분 정도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당시는 동절기 야간이었던 점,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장애인이 홀로 승강장에 남겨진 경우 짧은 시간이라도 그 고통은 클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60만원으로 판결하였다.
일본의 한 역에서 휠체어 장애인의 모습은?
장애인의 이동권은 ‘장애인이 교통시설 이용 등에서 제약을 받지 않을 권리’이다. 1993년 6월 25일 세계인권대회의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에서 장애인에게 접근의 권리를 보장해 줄 입법을 채택하여 체계화할 것을 촉구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 내지 접근권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 개념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2006년 1월 28일부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시행되었으나, 교통약자를 위한 대표적인 이동수단인 저상버스 도입률은 2013년 말 기준으로 전국평균 14.5%에 불과하다. 흔히들 예산부족을 내세우지만, 앞에서 말한 코레일의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 같은 것은 돈 드는 것도 아니다. 작은 관심과 배려만 있으면 되고,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고쳐나가야 한다.
일본의 한 역에서 역무원이 휠체어를 탄 한 분을 이동시키기 위해 올라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를 멈추고 양방향 사람들을 모두 하나의 계단으로 유도하는 사진이 한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다.
코레일이 장애인 도우미 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은 너무도 다행이지만 이것은 서비스인 동시에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씨가 추위와 어둠 속이 아니라, 블러그에 소개된 일본의 한 역에서처럼 손짓을 하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기차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길 기대한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복지소외계층의 권리행사를 돕고, 다양하고 실질적인 법률구제의 토대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문의 1644-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