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세월호] '돼지머리 수사'가 빚은 '유병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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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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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의 판도라상자③] 죽은 자의 '꼬리'만 밟은 검찰…'의혹'만 더 키워

'잊지 않겠다'고 그토록 다짐했던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벌써 기억 저편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7·30 재보선이 끝나자마자 여야 정치권은 '기다렸다는 듯이', '쫓기듯이'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망각'을 위한 또 다른 야합일 뿐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망각'의 대한민국…. 세월호마저 '망각'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인가?[편집자주]

 

◈ 세월호 참사와 국민의 분노,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했다.

검찰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과의 악연은 지난 4월 20일 김진태 검찰총장이 최재경 인천지검장에게 세월호 선박회사와 선주에 대한 수사 착수를 지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월호 관련 사건 수사는 목포에 차려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책임지고 있었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 세월호의 소속사인 청해진 해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와 원인규명이 급선무였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김진태 검찰총장은 참사 발생 4일만인 이날 이례적으로 '선주'에 대한 특별수사를 지시하면서 언론의 시선을 단숨에 유병언 일가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평소 '먼지떨이식 수사'를 하지 말라 강조하던 김 총장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간부회의에서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사상의 돼지머리 처럼 이번 참사의 책임을 나눠질 희생양이 필요하단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구원파라는 이단종교의 교주이자 평소에 '아해'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 활동까지 하고 다녔다는 유 전 회장의 독특한 이력은 분노에 휩싸인 국민들의 시선을 해경과 정부로부터 일정부분 돌려놨으며 '미스테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검찰 내부에서 '마지막 칼잡이'라는 평을 듣던 최재경 지검장까지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면서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는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서울 역삼동 소재 다판다 사무실 (사진=황진환 기자)

 

◈ 무리한 기획수사, 유병언 부자 도주와 함께 삐걱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구성된뒤 사흘째인 23일, 청해진 해운 관계사와 구원파 용산 사무실 15곳을 압수수색하는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9일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의 소환을 시작으로 송국빈 다판다 대표와 이재영 ㈜아해 대표를 구속하는 등 유 전 회장의 측근들의 신병도 신속하게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애초에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책임을 묻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수사이였기에 수사초기 소환조사자의 혐의내용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등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변기춘 천해지 대표, 고창환 세모 대표, 박승일 아이원아이홀딩스 감사 등 국내에 있는 유 전 회장의 측근들이 차례로 구속됐고, 해외에 나가있는 차남 혁기 씨, 장녀 섬나 씨, 측근 김혜경 한국제약대표,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 등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유병언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사착수 20여일만인 5월 12일 유병언 장남 대균 씨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면서 부터 수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검찰이 다음날 유 전 회장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미 자취를 감추고 난 뒤였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포착해 5월 21일 금수원을 압수수색했지만 유씨 부자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4일 뒤인 25일 순천 별장까지 급습했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이후 유 전 회장을 잡기 위한 검찰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계속됐다. 최재경 지검장은 "유병언을 잡기 전까지는 퇴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5천만원이던 현상금은 5억원으로 10배가 뛰었다. 검찰은 유병언의 도주를 도운 신도들과 구원파 간부, 유씨의 동생, 아내등 친인척들까지 모두 잡아들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유병언 시신을 정밀 감식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 시체로 나타난 유병언…무너진 공권력 신뢰

검찰은 끝내 '살아있는' 유병언을 잡을 수 없었다. 유 전 회장이 도주한지 두달여만인 7월 21일 시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날 효력이 만료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꼬리를 잡고 있다"며 호언장담했던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시신발견' 소식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시체가 발견되지 한달이 넘도록 유병언의 시신이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어설픈 통나무 벽을 사이에 두고 유병언을 놓친 사실등이 알려지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결국 유병언 시신의 DNA검사가 나와도 '유병언의 시신이 아닐 것'이라는 소문은 국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믿음과 같이 자리잡았다. 각종 음모론과 미스터리가 급속도로 확산됐지만 이미 신뢰가 무너진 검찰과 경찰로서는 음모론을 차단하기가 역부족이었다.

시신의 신원을 20일만에 확인한 한심한 수사기관, 죽은 자의 꼬리를 죽어라 밟은 검찰, 중요 범죄인들을 줄줄이 코앞에서 놓친 무능, 엇박자를 내다 끝까지 공적 신경전을 펼친 검경 그 자체가 하나의 블랙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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