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는 우리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그런데 양파 한쪽을 먹기 위해서는 일본에 종자사용료 즉,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반도체부터 양파까지 뭐 하나 우리 자체기술로 만든 것이 드물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산업 기초가 허술한데도 자유무역협정(FTA)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허약한 기초체력을 숨긴 채 무한경쟁에 뛰어드는 형국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 '양파'에서 '반도체'까지…해외 로열티 지급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모바일용 반도체 생산이 늘어나면서 '칩' 설계의 기본이 되는 CPU코어에 대한 로열티 비용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2008년 1,800억원이던 로열티 규모가 지난해에는 3,500억원 대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또, 반도체장비 국산화율은 지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줄곧 20% 초반에 머물고 있다.
국내 반도체회사들이 생산라인을 3~5년에 한번씩 교체하기 위해선 수천억원의 시설비를 외국회사, 주로 일본 업체에 갖다 바쳐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의약품과 화학제품은 물론 도로와 교량건설에도 기술특허 로열티를 외국회사에 지급하고 있다.
◈ 농산물 로열티 지급…연간 170억원 대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종자 국산화율은 벼와 보리, 콩, 고구마 등 식량작물이 98%로 가장 높다. 배추와 고추, 오이, 수박 등 채소류도 95%에 이른다.
하지만 채소류 가운데 양파와 토마토의 국산화율은 17%에 불과하다. 특히, 사과와 배, 포도, 감귤 등 과수종자 국산화율은 23%, 화훼는 10%로 극히 저조하다.
이렇다 보니 양파의 경우 지난해 일본과 유럽에서 구입한 종자 수입액만 1,363만 달러로 연간 140억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로열티가 포함된 가격이다.
그런데 이처럼 외국에서 종자를 구입해 파종한 양파가 올해 들어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폭락하면서 밭에서는 썩어가고 있다.
또, 국산화율이 27%에 머물고 있는 장미는 순수 로열티로 지난해 32억원, 버섯(50%)은 52억원을 지급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종자 기술 수준이 외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라며 "지난 한 해 동안 직접 지급한 종자 로열티만 대략 170여 억원에 달하고, 양파처럼 종자 값에 포함된 로열티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자료사진)
◈ 종자산업…낮은 기술력, 민간연구 기반 취약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입종자 대신 국산종자를 사용할 경우 종자가격을 50% 이상 절감해, 생산비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쌀과 고구마 등 식량작물에 대해서만 국가 주도의 종자개발사업을 추진했을 뿐, FTA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후에도 토마토와 파프리카, 양파 등 이른바 글로벌 작물의 종자에 대해선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 왔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와 닭, 양파, 토마토, 감귤, 파프리카, 백합, 버섯, 김 등 10개 농축수산물 종자에 대해선 아예 '수입대체품목'으로 지정했다.
대외 기술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우선 당장은 수입으로 대체하고, 장기적으로 종자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오는 2021년까지 모두 4,911억원을 투입하는 골든씨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종자개발 사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되면서 민간 연구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농협과 동부한농 등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는 국내 종자생산업체의 90% 이상이 연간 매출 20억원 안팎으로, 연구개발비 투자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 종자 로열티 지급…FTA 파고 넘을 수 있나?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골든씨드 프로젝트는 2021년쯤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때는 미국과 유럽산 농축산물에 대한 관세가 완전히 사라지고, 중국산 양파와 감귤, 토마토 등 신선 채소와 과일 등의 대규모 물량공세가 예상되는 시기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박기환 연구원은 "양파의 경우 한중 FTA가 발효된다면 수입량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이렇게 되면 국내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워지게 된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양파와 감귤 등 과채류 종자까지 외국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상황에서 한중 FTA로 값싼 채소와 과일까지 밀려들어온다면 과연 경쟁이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우리 농업의 기초체력을 서둘러 보강하지 못한다면 한중 FTA가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