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왕이 잘못한 것을 현 일본 정부가 깨끗이 마무리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8) 할머니는 2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일본 대사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의 곁에는 한국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와 양노자 팀장이 손을 꼭 잡은 채 함께 했다.
이날은 제1천13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리는 날. 김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고노(河野)담화' 검증 결과 발표에 항의하고자 평소 집회 시간인 낮 12시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 일본 대사관을 찾았다.
고노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으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대협은 대사관 측에 일본 정부를 규탄하는 성명서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서를 전달했다. 이들의 방문은 예상됐던 시간을 훌쩍 넘겨 45분가량 이어졌다.
정대협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김 할머니는 "내가 14살 때 끌려가 21살 때까지 강제로 위안부를 하면서 고통당한 산 역사의 증인"이라며 "일본이 정말 각성하고 세계 평화를 위한다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있는 그대로 사실을 규명하고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우리가 돈 때문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역사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데, 왜 진실을 망각하고 고노 담화 자체도 훼손하려 하느냐"고 항의했다.
일본 대사관 측은 "할머니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고 굉장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노 담화 검증은 담화 자체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라 더 잘하려는 일본 정부의 표시로, 보고서 어디에서도 고노 담화를 부정한다고 쓰여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낮 12시에 시작된 수요집회에는 정대협 관계자들과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서울여대 학생 등 120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김 할머니도 위안부 소녀상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자리를 지켰다.
김 할머니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어떤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지만, 과거 일을 깨끗이 마무리 지어야 지금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우리나라가 평화의 나라가 돼 여러분의 후손에게는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고 마음 놓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수요집회에는 서울 구로구 우신중학교 학생 70여 명도 참가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역사 공부 열심히 할게요'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우신중 3학년 최규민(15)군은 "요즘 역사 시간에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를 배우고 있다"며 "위안부 강제 동원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를 순순히 인정하고 우리 정부도 뚜렷한 대책을 내 놔야 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정대협은 성명에서 "고노담화는 최소한의 일본의 양심을 담은 사죄였다"며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발표한 담화에 담긴 사죄와 참회의 뜻을 저버리고 전쟁의 광기를 전면에 드러냈다"고 고노담화 '흔들기'에 나선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