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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김태완 소장 

 

이름은 발성기관을 통해 나오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 하나지만 이름이 이름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이름으로 불리는 그 무엇(대상)이 있고, 또 그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그 무엇이 그 이름을 통해 드러내야 할 내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어떤 대상을 부르는 이름과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내용이 일치할 때 명실상부하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것은 우리가 그 무엇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면서 그 이름이 담고 있는 내용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명실상부하다는 말은 한마디로 이름값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이름이 단순히 대상사물을 지칭하는 것인 경우에는 그냥 이름이라고 하지만 그 이름이 담아내야 할 내용을 더 우선으로 여길 경우에는 명분이라고도 한다. 바로 인간의 공동체, 사회는 명분의 공간이다. 사회는 명분에 의해 흘러가며, 명분에 의해 운영되며, 명분에 의해 존립한다.
 
그런데 문제는 명분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명분의 싸움이다. 권력투쟁을 본질로 하는 정치투쟁은 명분을 획득하는 자가 이긴다. 명분을 획득하지 못한 자가 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이란 폭력일 뿐이다. 폭력에 의해 명분을 찬탈하는 것은 쿠데타다. 쿠데타는 합법적 권력을 명분이 없는 폭력으로 뒤엎는 헌정질서의 파괴며,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반동이다.
 
기존의 권력을 해체하거나 대체하더라도 명분이 없는 폭력은 쿠데타며 인류역사의 진보에 부응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행위는 혁명이다. 같은 양상을 두고도 쿠데타니 혁명이니 하는 규정에는 사건을 평가하는 시각과 관점이 담겨 있는 것이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한 후세의 평가라도 사실상 명분을 덧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인간의 모든 행위가 명실상부해야 한다는 이상은 관념에 불과하다고 치부하더라도 최소한의 명분은 필요하다. 특히 그 행위의 결과가 공동체 전체에 미치는 정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세월호' 사건으로 미증유의, 전대미문의 인재(人災)를 겪은 와중에 치러진 지방자치 선거에서 선거의 중요한 의제와 정책적 지향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었다. 이런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상당한 정도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대통령을 믿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어째서 지방자치 선거의 의제가 될 수 있는가?
 
과거 우리 정치사에서는 선거 공약으로 '이번이 마지막 출마입니다. 다시는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도 있었다. 이런 구호나 정책적 프로파간다는 명분을 배반하는 것이다. 지방자치 선거는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이고, 대통령선거는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지도자를 뽑는 일이지 어느 한 사람의 권력의지에 대한 양심선언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런 현상이나 일들은 명분과 실제가 얼마나 괴리돼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태완(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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