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10일 오후 서울대학교 IBK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밝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13일 만에 언론인 출신인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새로운 총리로 내정했다.
문창극 내정자는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정치부,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장, 논설위원, 논설주필, 발행인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이 때문에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문 내정자가 소신 있고 강직한 언론인 출신으로 그동안 냉철한 비판의식과 합리적인 대안을 통해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적폐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온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뛰어난 통찰력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비정상의 정상화 등에 국정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문 내정자가 총리에 내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정치권과 언론계, 심지어 중앙일보 내에서도 "뜻밖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총리 자격으로 "국가개혁의 적임자로 국민이 원하는 분"이라는 조건을 제시했지만 문 내정자가 과연 거기에 합당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우선, 이른바 관피아를 척결하려면 공직사회의 생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지만 문 내정자는 행정경험이 전혀 없다.
문 내정자가 2012년 언론재단 감사로 있었을 때의 모습을 지켜봤던 한 언론인은 "행정경험이 없고, 조직 장악력이 전혀 없었다"며 "도덕성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문 내정자의 재산이나 자기관리, 품성면에서는 전혀 흠잡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안대희 후보자 낙마에 충격을 받은 박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통과 여부를 최우선 기준으로 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들도 문 내정자에 대해 "돈 별로 없고, 청렴강직했던 언론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기자는 "그가 눈치보거나 정권에 굽실거리는 스타일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문 내정자의 청주 선배인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도 CBS와의 통화에서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이라며 "안대희 후보자의 낙마에 위기를 느낀 박 대통령이 청문회 통과 부분에서 신경을 아주 많이 쓴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문 내정자의 성향은 매우 보수적, 극우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선일보에 김대중이 있다면 중앙일보에는 문창극이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와 관련해 남 전 장관은 "윤창중 전 대변인이 매우 거친 보수라면 문창극은 신사보수라고 할 수 있지만, 신사보수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며 "그가 쓴 칼럼만 봐도 알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언론인 시절에 쓴 칼럼을 보면 보수를 넘어서 수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기에 충분하다.
문 내정자가 2010년 3월에 쓴 '공짜 점심은 싫다'는 칼럼을 보면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우리 아이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것과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북한 주민이 그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 않을 수 있다"며 당시 첨예한 논란이던 무상급식과 관련해 보수 쪽에 발을 푹 담갔다.
2009년 8월 12일에 중앙일보에 게재된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병상에 누워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며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한 것일까. 바로 이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경환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관은 당시 반론 보도문을 통해 "문 대기자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근거로 삼은 월간조선의 기사나 일부 인사들의 발언들은 이미 전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병석에 계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행위다"며 중앙일보에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새로운 총리는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있는 국가개조 뿐만 아니라 사회와 지역을 통합해야 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이런 곳에 극우 성향의 '꼬장꼬장한' 원로 언론인이 내정됨으로써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문 내정자와 박 대통령의 관계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발기인 총회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는 당시 안전행정부로부터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뒤 초대 이사장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선임했다.
문창극 총리 내정자도 넓게 봐서 박 대통령의 '수첩인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