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진도항 등대에서 실종자 가족이 통곡하고 있다. 윤성호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19일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에 메스를 들이대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정작 실종자 가족들이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수색 관련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어 진도군청은 또 한 번 울음바다가 됐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20여 명은 이날 오후 1시 10분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차려진 진도군청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대통령 담화에서 정부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인 실종자 구조에 대한 부분은 언급조차 없었다"며 흐느꼈다.
현재까지 단원고 학생 8명을 포함해 18명이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실종자를 모두 찾는 것이 남겨진 가족의 간절한 소망임에도, 실종자에 대한 수색 독려는 (담화문) 어디에도 없었다"며 "가족들은 대통령 담화를 듣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극도의 고통에 빠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부터 24분간 102문장의 비교적 긴 담화문을 읽었지만. '실종자 가족' '수색' 등의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구조에 실패한 해경을 해체하겠다"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의 일부 기능을 신설되는 국가안전처로 이관하겠다"는 정부 조직 개편안에 긴 시간을 할애했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해경을 해체한다는 것은 정부의 실종자 구조에 원칙이 없다는 것"이라며 "해경은 크게 동요하고 수색에 상당한 차질을 줄 것이 명약관화한데 마지막 1명까지 구조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긴 하냐?"고 따졌다.
이어 "해경이 끝까지 구조 현장에 머물면서 수색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지휘자 역시 구조 현장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실종자 가족 일부는 분이 풀리지 않은 듯 김석균 해경청장을 향해 "앞으로 실종자를 어떤 방식으로 언제까지 찾아내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으라"며 울먹였다.
앞서 실종자 가족들은 박 대통령이 사고 발생 이틀째인 지난달 17일과 이달 4일 실내체육관과 진도항(옛 팽목항)을 찾았을 때 "실종자 구조와 수색을 최우선으로 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기도 했다.
19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를 시청하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공식 사과하고 해경 해체 등 관피아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방안 등을 발표했다. 윤성호기자
◈ 유가족과 시민단체도 "실종자 가족 배려해 달라"자식들을 시신으로나마 찾은 유가족 역시 한때 실종자 가족이었던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담화문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직도 피붙이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없는 담화문이라는 것.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방송을 통해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본 유가족 오 모(45) 씨는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아 아쉽다"며 "해경을 해체한다고 했는데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차질이 생기진 않을까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유가족도 "수색이 가장 먼저고 그다음에 처벌이나 진실 규명 얘기가 나와야 한다"며 "하지만 담화문에는 수색을 어떤 식으로 하고 최대한 언제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얘기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 유가족은 "내가 해경이라도 애들 꺼내고 있는데 '너희 해체야!' 그러면 힘 빠진다"며 "해체 등 책임 추궁은 나중에 하고 수색이 가장 우선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 대책위는 이날 오후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을 직접 찾아 의견을 들어본 후 20일 오전 유가족 전체 회의를 거쳐 대통령 담화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시민사회단체도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은 담화문에 우려를 표명했다.
참여연대는 대통령 담화 직후 논평을 통해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먼저 요구하고 있는, 아직 찾지 못한 18명의 실종자 수색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경실련 역시 "성급하게 국가재난 및 안전 시스템을 개편할 것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과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통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