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료사진)
'마하 경영'을 강조하던 이건희 회장이 와병하자 삼성이 3세 경영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마하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계열사간 지분정리와 유사 계열사 통합 작업을 해오던 삼성은 이달 들어서는 지주사 전환을 시사하는 듯한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 이 회장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삼성이 지난해부터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의도는?삼성이 그룹 지배구조를 서둘러 개편하려는 것은 이 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 등 '3세 경영'을 앞당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영승계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 일가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향후 3세 경영진간의 불협화음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도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계열사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유사 업종의 계열사를 합치거나 수직 계열화 하는 한편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물려받기 위한 '실탄'도 준비해야 한다.
지난 2013년 하반기부터 잇따르고 있는 삼성그룹 내 움직임은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9월 시스템 통합업체인 삼성SDS와 네트워크 솔루션 업체인 삼성 SNS를 합병했다. 12월에는 건설이 주업종인 삼성물산이 삼성SDI로부터 역시 토목건설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입했다. 올 3월에는 2차 전지에 주력하고 있는 삼성SDI가 소재기업인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했다. 4월에는 삼성종합화학이 삼성석유화학을 흡수합병했다.
유사 업종 계열사간 흡수합병과 함께 지분구조를 단순화하는 작업도 병행돼 왔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을 모두 처분했고 삼성카드 지분도 삼성생명으로 몰아줬다. 삼성생명과 삼성증권은 각각 갖고 있던 삼성선물과 삼성자산운용 지분 100%를 교환했다.
유사 계열사 합병과 함께 지분구조를 단순화하면서 삼성그룹은 크게 전자·금융 계열과 건설·중화학 계열, 패션·미디어 계열로 분화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을 이끌고 이부진 사장이 건설·중화학 계열을, 이서현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이끌 것이라는 분석과 궤를 같이 한다.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삼성이 삼성SDS의 연내상장 방침을 발표한 대목이다.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발행해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의 중심이었던 삼성SDS는 이달들어 연내 상장 방침을 공식발표했다. 삼성SDS가 상장될 경우 18%의 지분을 갖고 있는 이 부회장 형제자매들은 2조원에 가까운 상장차익을 얻게 된다. 재계에서는 삼성가 3세들이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데 막대한 상장차익을 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SDS 상장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부인해온 삼성이 올들어 갑자기 상장 방침을 발표한 것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생명을 주목하라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되면서 주목을 받는 계열사는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 지배구조의 뼈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계열사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이 6.24%로, 삼성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다시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해 이건희 회장(20.76%)에 이어 2대 주주이다.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는 이재용 부회장으로, 25.1%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3.72%)이나 이부진 사장(8.37%),이서현 사장(8.37%)보다 월등히 많은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부회장이 에버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까지 상속받는다면 삼성생명은 물론 삼성전자도 확실히 지배할 수 있다. 지분상속에 필요한 자금은 삼성SDS상장차익 등으로 확보할 수 있다.
삼성이 지난해부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 계열사를 배치하고 삼성생명에 대한 타 계열사 출자지분을 정리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 지주회사 전환의 걸림돌 '금산분리'만약 상속이 이뤄지면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단일 최대주주로 떠오르며 금융지주사가 된다. 현행법상 금융지주사는 비금융사를 가질 수 없다. 금산분리 정책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전자를 손자회사로 가질 수 없다는 말이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도 보험사는 자회사 주식을 총자산의 3% 이내에서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의 상당부분을 처분해야 한다. 어느 경우이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3세 경영 구도에 어긋나는 모양새다.
이같은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에버랜드와 합병해 지주사로 만든 뒤 삼성생명을 아예 자회사로 만드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해 지주사 역할을 하는 가칭 '삼성전자 홀딩스'와 실제 사업을 하는 '삼성전자 사업회사'로 나눈다. 이렇게 인적분할을 하면 주주는 분할된 두 회사의 지분을 과거 지분율 그대로 보유하게 된다. 삼성생명이 분할 전 삼성전자 지분을 6% 보유하고 있었다면 분할 뒤에도 '삼성전자 홀딩스' 지분 6%와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 6%를 동시에 보유하게 되는 식이다.
분할 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을 삼성전자 홀딩스에 현물출자하고 대신 삼선전자 홀딩스의 주식을 받는다. 이로써 삼성생명은 비금융사인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을 해소하는 한편 삼성전자 홀딩스의 지분은 2배 이상으로 보유하게 된다. 삼성생명은 늘어난 지분을 블록세일 등을 통해 이 회장 일가와 삼성에버랜드에 매각한다. 이어 삼성전자 홀딩스가 삼성에버랜드와 합병을 하면 '통합 삼성에버랜드 지주사'-삼성생명 및 기타 삼성 계열사를 아우르는 지배구조가 수립된다.
이와 관련해 키움증권 박중선 연구위원은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중간 금융지주로 하고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를 통합해 그룹 지주사로 전환하는 시나리오를 충분히 구상할 수 있다'며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할지는 여전히 삼성의 몫"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