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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조작' 깃털수사, '박종철 사건'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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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의 시사터치]

고 박종철 열사 추도식 모습. 자료사진

 

대한민국 민주화운동 중에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이 여전히 역사 속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장준하 선생 타살 사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모양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숨졌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난 지 27년 3개월이 지난 2014년 4월 14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을 발표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당시에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군이 책상을 탁 치자 억 하고 소리 지르며 쓰러져 사망했다”고 말했다.

1월 17일 시신을 부검한 황적준 박사가 박종철군의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고 폭로해 경찰의 ‘쇼크사’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경찰과 전두환 정권은 할 수 없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발표했고 검찰은 경찰의 자체 조사를 묵인했다.

경찰은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조 모 경사 등 두 명뿐이라고 발표하고, 이들을 검찰에 송치하며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4개월 동안은 그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실은 드러나는 법. 경찰의 이 같은 ‘꼬리 자르기’가 넉 달 뒤에 그 실체를 드러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87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미사에서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하면서 검찰이 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갔다.

수사 결과 박처원 치안본부 5차장(대공 담당)의 주도 아래 모두 5명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가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에선 2명만이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총대를 멘 2명에게는 거액의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연루돼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1987년 고 이한열 열사 장례식ㅇ 운집한 인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특히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음은 물론이다.

27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27년 전 이뤄낸 모든 게 꿈이었던가.

증거가 조작됐고 그 책임은 국정원 대공수사처장 선에서 이뤄졌지만 윗선은 모르는 일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문서위조에 사용된 공작금이 대공수사처장 전결로 이뤄졌으며, 국정원 전문과 관련해 대공수사국장이나 부국장이 결재한 내용은 있지만 (문서위조 지시와 보고)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윤갑근 진상조사팀장(검사장)의 설명이다.

윤 팀장은 “(국장 결재는) 극히 일부며 (문서) 내용을 확인 안하고 결재를 했다고 부인해 더 (수사를) 나갈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위조 사건 수사팀장 윤갑근 검사장이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등검찰청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그러니까 수사국장의 ‘변명성’ 주장에 가산점을 준 나머지 국정원 하위직 관련자들의 꼬리 자르기(윗선 보호)만을 믿고, 서천호 2차장이나 남재준 국정원장의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아예 수사도 하지 않았다.

남재준 국정원장 등 이른바 국정원 고위층의 개입 여부는 밝혀내지 못하고 무혐의 처분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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