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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의 아들' 정조…즉위식 첫 마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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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3D' 개혁군주가 꿈꾼 미래 추적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재위기간 1777-1800)가 즉위식에서 뱉어낸 첫 말이라고 한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반대파의 모함으로 뒤주에 갇힌지 8일 만에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본 정조. '죄인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罪人之子 不爲君王)'는 조직적인 반대를 이겨내고 왕이 된 그가 개혁군주로서 꿈꾼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17일 개봉하는 역사 다큐멘터리 '의궤, 8일간의 축제 3D'(이하 의궤 8일간의 축제)는 정조가 을묘년(1795)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수원 현륭원으로 행차한 내용을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복원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한다.
 
의궤는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국가공식기록물이다. 왕실의 결혼, 장례, 연회, 사신영접, 건출물의 조성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해 후대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가운데 모두 8권으로 구성된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기존 의궤에 비해 내용이 방대하고 정교해 '의궤 중의 의궤'로 불린다. 이 의궤에 빠짐없이 기록된 당시 8일간의 축제는 회갑을 맞이한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사도세자는 물론 백성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던 정조의 33년간의 염원이 오롯이 녹아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의 내용을 꼼꼼하게 복원한 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는 TV에서 150분 분량으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를 73분으로 축약하고 3D 효과를 더해 극장용으로 만든 작품이다.
 
14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왕십리CGV에서는 의궤 8일간의 축제 언론시사에 이어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최필곤 PD,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여진구, 자문을 담당한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최 감독은 "정조라는 인물은 현대와도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이해가 되는, 잘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며 "이 의궤에는 6000명에 달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다 당시 쓰인 의상, 음식 등에 대한 그림과 재료까지 모두 기록돼 있었기에 고증에 집중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의궤가 사람의 위치 등을 정확하게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원행을묘정리의궤는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원근법을 사용하는 등 사실감, 현장감, 생동감을 살리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며 "그 연장선에서 이 의궤의 현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3D 효과를 활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최필곤 PD, 배우 여진구,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14일 서울 행당동에 있는 왕십리CGV에서 열린 '의궤, 8일간의 축제 3D'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여진구는 "평소 역사·기록물에 호감을 가졌던 만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한 번 해보고 싶었고, 또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해 출연을 결심했다"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하면서 정조에게 큰 호기심이 생겼는데 정조와 같은 왕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문식 교수는 "이 의궤가 만들어진 때는 정조 19년으로 그가 전권을 장악했던 까닭에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 김홍도가 주도하는 화원 그룹이 의궤 그림을 그리는 데 참여했을 정도로 의궤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궤에 기록된 8일간의 축제기간 정조는 과거시험을 통해 지방선비들에게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줬고, 노인들을 초대한 양로연도 열었다. 가난한 자들에게는 쌀과 죽을 나눠줬으며, 왕이 직접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해 주기도 했다.

축제 하이라이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는 그동안 금기시됐던 것들을 허용한 파격적인 자리였는데, 남녀가 한자리에 모인 최초의 궁중잔치였을 뿐 아니라 검무 등 민간무용이 왕실에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행차의 메인 행사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릉원 참배였는데, 공식적으로 의궤에는 현릉원 참배 기록이 그림으로는 남아 있지 않고, 남편의 묘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은 혜경궁 홍씨가 오열했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며 "정조의 계획은 아들(순조)이 15세가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순조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를 복권시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사도세자 복권에 대한 논란이 컸던 만큼 이 행차는 그 중간다리 격으로 1804년 본 행사를 계획했다"며 "하지만 정조가 1800년에 세상을 뜨면서 어렵게 됐고, 1899년 고종대에 이르러서야 그 계획이 실현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복원된 소품들은 수원시에 있는 화성박물관에 기증·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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