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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동생이 추운 절벽에 누워 있다면 어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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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11-1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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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에베레스트 하산 중 숨진 故 박무택씨 시신 수습 나서

(사진=계명대 산악회)

 


몸은 혼(魂)을 담는 그릇에 불과하다. 그는 ''산의 혼''을 담고 있었다. 고(故) 박무택.

산의 혼을 담고 그는 해발 8750미터 에베레스트에 꽁꽁 언 채 누워 있다.

에베레스트 하산도중 사망한 故박무택

박무택은 지난 5월 18일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에 설맹으로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설맹은 눈(雪)에서 반사된 빛에 각막이나 결막에 염증이 생겨 앞이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정상 상태에서도 무사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 똑같이 극한 상황에 놓인 동료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박무택은 혼자 남아 암벽 위 로프에 매달린 채 숨졌다. 계명대학교 50주년 기념으로 계명대 산악대가 떠난 에베레스트 등반 대회에서의 일이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엄홍길이 나섰다. 그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은 엄홍길 뿐이다. 세계 14좌 주봉과 위성봉인 15좌 얄룽캉(8505m)까지 이미 정복한 세계 최고의 등반기술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혼자 몸으로 정상에 오르는 것만도 늘 목숨을 담보하고 오르는 산이다. 이번 원정에선 70kg 안팎의 성인을 들쳐 업고 와야 한다.

엄홍길,후배이자 친구, 그리고 ''산악인'' 박무택 시신 수습위해 나서다

목숨을 걸고 가야 하는 길이다. 엄홍길은 "그러나 해야한다"고 말한다. 목숨을 걸고 나설 사람도 엄홍길 뿐이다. 오래전 그는 계명대 산악대의 한 후배에게 ''진짜 괜찮은 놈''을 소개 받았다. 그때부터 이 ''괜찮은 놈'' 박무택과 함께 정복한 ''8천m''가 무려 4개다.

칸첸중가 원정에서는 10여시간 동안 절벽에 매달려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다. 보도진 조차 살아올 것이란 기대를 포기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목숨을 애태워가며 ''함께'' 칸첸중가를 정복해 냈다.

그는 이 험한 길을 나서는 데 대해 "친동생이 에베레스트 절벽에 누워있다면 어쩔거냐"고 반문한다. 그는 죽은 박무택을 이야기할 때 ''무택이 새끼''라고 부른다.

8천미터를 정복할 때 모든 극한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다. 실패는 없다. 실패는 곧 죽음이다. ''무택이 새끼''를 이야기할 때 그에게선 한없는 아쉬움이 묻어난다.

엄홍길은 올 가을에 예정됐던 16좌 등정을 미룬 상태다. 대신 지난달 1일부터 20일간 현지 상태 점검을 위해 에베레스트에 다녀왔다. 현지에서 셰르파로부터 당시 상황을 브리핑 받고 구조 원정대를 계획했다.



"친동생이 에베레스트 절벽에 누워 있다면 어쩔거냐?"

그는 ''차디찬 에베레스트 절벽에 매어있는 박무택을 구하기 위해 내년 3월 에베레스트로 떠난다. 3월이면 에베레스트에 봄이 시작하는 계절이라고 한다. 애초 변을 당한 당시 박무택은 암벽이 아래 놓인 절벽에 매달려 있었지만 누군가 줄을 끊어 지금은 바위에 편히 누워 있다고 엄홍길은 전했다.

원정대는 5~10명으로 꾸릴 계획이다.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첫번째 선발기준은 ''박무택과 함께 산에 올랐던 사람''이다. 따라서 역시 계명대 산악대를 중심으로 선발된다.

비용도 적지 않다. 8천 미터급 산 등정에는 일반적으로 2~3억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이번엔 4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늘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사정은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엄홍길은 지금도 원도봉산을 일주일에 2~3회 오르내린다. 뛰지 않고 속보로만 정상에 다녀오는데 2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체력 유지를 위해 수영도 거르지 않는다.

그러나 45살. 적지 않은 나이다. 단단해 보이는 몸과 맑은 눈매에도 불구하고 웃음 많은 눈주름이 패여있고 흰머리도 희끗하다. 그리고 상대는 또 8천m다.

엄홍길은 ''''도전모험 탐험 정신을 갖고 극한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이 아쉽다''''고 말한다. 이와함께 "5천, 6천, 7천미터는 내능력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8천m는 인간의 영역 밖"이라며 산에 혼을 묻은 동료를 구하러 다시 8천m로 떠나는 이번 원정대에도 따뜻한 관심을 부탁한다고 손을 모아 인사했다.


노컷뉴스 홍석재기자 nocut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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