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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공화국의 주범은 인구 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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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아이 늦둥이 아빠,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 대표

박용훈

 

교통난은 시민이 직접 푼다는 기치를 내걸고 시민운동 단체를 세운 것이 지난 1990년.

사람이 편하게 살려고 교통수단도 발달하고 도로도 생겼는데 오히려 교통에 얽매이고 차량 중심으로 교통정책이 생기고 사람은 뒷전이고 차가 상전인 거꾸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 해서 이를 바로 잡아 보기 위해 시민단체를 세웠습니다.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제안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그리고 각종 캠페인, 정책 제안 등을 꾸준히 펼쳤습니다. 알게 모르게 서서히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느끼기에는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닌 듯 합니다.

교통문제와 관련해서는 이 분의 코멘트가 없는 곳이 없고 요즘에는 늦둥이 키우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르는 교통문화운동본부 박용훈 대표를 6월 26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교통 해법가 ''''자가운전 모니터링''''은 필수

▶ 교통전문가시니까 운전하실 때마다 느낌이 다르실 거 같아요. 차를 끌고 오셨나요?

교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교통난을 덜기 위해서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승용차 타고 왔다고 하면 좀 부담스럽거든요. 저는 그럴수록 승용차를 더 타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대중교통도 타보고 해야 콩나물 버스의 어려움도 알고 지하철의 어려움도 알 것 아니냐고 하는데, 물론 대중교통을 많이 타기도 하지만 바쁘니까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구석구석 모니터링을 해요. 도로표지 잘못 된 곳, 막히는 곳 등 정보 수집을 합니다.또 사무실에서 이쪽으로 오는 대중교통은 노선이 어렵게 되어 있어요. 여의도에 있다가 얼마 전에 가양동으로 이사를 했거든요.

▶ 저도 일산에 사는데 그곳에서 나오는 길이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딱 2군데잖아요. 교통 정보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해요.

도로정보를 전광판에서 주잖아요. 그걸 보고 너무 막힌다고 해서 반대쪽으로 건너갔는데, 조금만 가다 보면 원래 도로가 더 잘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정보가 맞는 것인지 안 맞는 것인지, 제가 전문가이면서도 도대체 이걸 정보라고 주는 건지 정확도가 떨어지는 면도 있어요. 정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전환을 하다 보니까 이쪽이 한가해지는 경우도 있고 저쪽이 막히는 경우도 있어요.

▶ 시간은 없고 급하기는 하고, 그럴 때면 한강에 다리를 더 많이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요.

다리가 한강에 여러 개가 있지만 대안 도로를 찾기 위해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도로들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인터체인지를 더 많이 만들어서 연결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 도로의 이용효율을 높이는 비결이 될 수 있죠.

▶ 만약 건교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무엇부터 가장 바꾸고 싶으세요?

바꿀 게 너무 많아서 말씀을 못 드리는 것도 있고 지금 나이쯤 되니까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하고, 한계를 너무 잘 아니까 할 게 별로 없겠다는 생각도 들어요.(웃음)순수한 마음에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장과 집의 거리가 먼 사람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직간접 세금을 올려서 직장과 집의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게, 그래서 통행거리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제도를 바꾸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방송쟁이'''' 10년, 전문영역으로 컴백 홈

▶ 오랫동안 교통과 관련된 정책 등 여러 일들을 하셨는데, 교통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에서 전공을 도시계획을 했습니다. 도시계획을 하다 보니까 도시에 대한 전반적인 인프라와 제도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제가 386세대라서 80년대에 학교를 다녔는데 경찰서도 몇 번 왔다 갔다 하고 주동이 되서, 얼마 전에 6.10항쟁 특집이 나오던데 거기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군대 다녀와서도 명동에도 나가고 그랬어요. 그럴 정도였는데 전공공부는 착실히 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답사를 많이 다녔는데 방학이면 지방의 읍성, 마을, 고가가 있는 옛날 마을, 그리고 종택(宗宅)이라고 하잖아요. 무슨 가문의 종택이라고 하면 그 종택을 중심으로 해서 집들이 배치되어 있거든요. 그러면 옛날 마을길을 스케치해서 측량도 해 보고, 또 도로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군대 갔다 와서 졸업하고 대학원 다닐 때, 도시계획에 대한 수요는 그렇게 많지 않고 전공하는 학생들은 많아지는 상황에서 교통체증이 아주 심각해지는 시점이었어요. 80년대 말 정도 되니까요.그러면 도시계획 중에서도 교통을 좀 해 보자. 원래 관심이 있던 분야였으니까요. 그래서 교통을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했어요.

▶ 대학교에 교통 관련 학과가 있어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전국에 교통공학과, 교통계획과, 이런 이름들이 10여 개가 있습니다. 이미 학부에 있고 대학원까지 하면 아주 많지요. 대부분 공대 안에 있고 도시계획과가 같이 있는 데가 있고 교통행정이라고 해서 행정학과에 같이 있는 데도 있고요.

▶ 경찰대학에도 이런 과가 있어야할 것 같아요.

경찰대학도 교통을 완전히 전공하는 데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없고 경찰대학 커리큘럼 안에 교통공학이 매 학년마다 한 과목씩은 있습니다. 경찰이 신호도 다루고 안전표지도 다루고 또 교통규제를 경찰이 하잖아요. 그러니까 교통공학을 알아야죠.

▶ 박사학위를 대학원에서 받으셨는데, 학교로 가시지 않고 시민단체로 가셨어요?

학교에서 불러줘야 가죠.(웃음) 사실은 학위를 바로 하지 않고 석사를 마치고 유학을 가려고 했어요. 미국 동부의 괜찮은 대학까지 다 갔다 오고 그러던 차에 1990년대 초에 교통방송이 생겼어요.교통방송에서 자료를 조사해주고 방송을 좀 도와 달라서 해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몇 번 도와줬어요. 하지만 이걸 해 줘도 전문가도 별로 없고 하니까 정리를 해 줘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거예요. 직접 나와서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기에 나가서 대충 얼버무리면서 방송을 했더니 직접 하는 게 낫다고 계속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방송에 입문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본업은 팽개치고 방송이 재미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이론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일 수 있고, 생활에 접하는 것은 시민들이 겪는 불편함이고 관련된 부분이잖아요.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인가 내가 안 해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공부를 중단하고 그때는 방송을 많이 했어요. 하루에 교통을 주제로 해서 5번씩도 했어요. 교통방송이 있기는 하지만 KBS, MBC, CBS도 마찬가지고 교통프로그램이 아침에 다 있었어요.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방송을 해서 이러다가 ''''방송쟁이''''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송을 많이 하다 보니까 박사학위를 바로 해야 하는데 못 하고 10년 후에 대학원을 다니면서 했어요.

▶ 옛날에는 교통방송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가로수를 누비며, 푸른 신호등...요즘은 많이 없어지고 전문화되어서 시사프로그램 위주로 갔는데, 따지고 보면 방송쟁이가 되신 거네요.(웃음)

그리고 나서 외도를 한 번 더 했어요. 제가 교통정보방송도 하고 시사프로그램에서 교통을 해주다 보니까 일반 프로그램에서도 나와서 해 달라, 교통 이야기를 일반 프로그램에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교양프로, 심지어는 코미디 프로까지...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입성을 했다가 MC까지 했잖아요.MBC의 ''TV 청년내각'' 토요일의 메인 프로그램이었는데 주말 프라임 타임에 MC를 1년 동안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더 외도를 하라고 해서 아침 주부들 대상으로 교양정보 프로그램 등 별 걸 다 했어요.그런데 그걸 하다 보니까 방송을 전업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어느 시점에서 딱 드는 것이, 시장에 가서 낙지도 들고 방송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꽃게 잡는 배를 타고 들어가서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시간도 아깝고 내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빠져 들어가야 하는지 아주 고민이 되더라고요.

더 결정적인 것은 머리를 식히려고 지방이나 제주도에 모자 눌러쓰고 선글라스도 끼고 자유롭게 보내려고 렌트카를 빌려서 가다가 길을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얼굴을 알아보는 거예요. 아나운서 누구 아니세요? 그것까지 좋은데 개그맨 누구 아니시냐고 이러니까, 이제는 갈 데까지 갔구나 생각했어요. 개그맨에 대해 직업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고 제가 전문영역에 있고 싶었는데 이미지 메이킹이 딴 데로 가다 보니까 내 것을 찾아야 하는데 외도로 인해서 정체성이 문제가 되는구나, 그때부터 서서히 정리를 하기 시작했고 원대복귀를 했지요.

◇ 교통문화의 선두마차 ''''교통문화운동본부''''

▶ 교통문화운동본부를 만드신 것은 언제인가요?

90년대에는 도시교통연구소라고 해서 연구소 체제로 시작했고, 문제제기를 하거나 정책대안을 제시한 것은 연구소였는데 연구소가 NGO(Non-Governmental-Organization : 비정부 기구) 기능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시민들이 참여하는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96년도에 교통문화운동본부로 바꾸면서 시민들이 참여하고 활동하는 체제로 바꿨죠.

▶ 연구용역이 오나요? 수익이 되는지 궁금하네요.

어떻게 보면 주변사람들한테 피해를 줬죠.(웃음)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해드려야겠는데 제가 일을 벌인다고 하니까 어렵지 않느냐고 많이들 도와주셨어요. 사실은 우리나라 NGO 활동이라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NPO(Non-Profit Org : 비영리조직)거든요. 시민활동이라는 것이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와 회비를 통해서 충당을 해야 하는데 시민단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한한 책임과 활동을 요구해요.

시민단체들을 비판도 많이 하지만 속으로는 시민단체가 나서줘야 할 때 안 나서면 굉장한 무언의 압력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기부문화, 회비를 내는 것에는 굉장히 인색하시더라고요. 저희도 회원이 5천명이 넘는데 회비를 내시는 분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충당하는데 가장 큰 것은 임원들이 전문직이거나 사업하시는 분들이라서 연 회비를 분담을 해 드립니다. 그리고 회비를 일부는 내니까 충당하고 또 일부는 아까 말씀하신 대로 공익적인 연구를 하는 게 있고 정부지원은 받지 않습니다.그런 체제로 운영을 하다 보니까 사실은 크게 벌려서 기획, 조사나 뭘 하고는 싶은데 한계가 있는 부분도 있지요.

▶ 교통문화운동본부가 만들어지고 나서 고속도로 전용차선을 제안하신 건가요?

바로 직전에 했어요.

▶ 아주 획기적인 일인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게 된 거예요?

제가 93년 설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눈이 왔어요. 서울에서 부산까지 얼마나 걸렸냐 하면 26시간이 걸렸어요. 26시간이 걸렸는데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서울 톨게이트까지 가는데 6시간이 걸렸어요. 그러니까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그런 상황이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눈이 오긴 했지만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화장실도 못 가는 상황이다 보니 청와대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아, 이 교통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되겠구나. 바로 전에 제가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 워낙 막히다 보니까 이런 걸 하자고 제안을 하나 해놨었어요. 고속도로 전용차로만을 제안한 건 아니고 몇 가지를 더 해서 5~6가지를 제안했었는데 그때가 행정쇄신위원회가 가동될 때에요. 행정쇄신위원회에서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좋은 게 올라온 게 있으니 이걸 해 보자. 그런데 전에는 왜 안 되었냐 하면 부처 간의 이기주의, 또 뭘 하자고 하면 안 되는 이유를 100가지를 갖고 나오니까 안 되는 거예요. 청와대에서 이건 특단의 대책이 나와야 하는 것이고 행정쇄신위원회가 당시 힘 있는 기구여서 채택을 해서 하다 보니까, 그리고 되려고 하니까 몇 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되더라고요.저는 제안한 사람으로서 운이 굉장히 좋은 사람이죠. 그런 기회가 와서 우연하게 채택이 되었으니까요.

▶ 다른 나라도 이런 게 있어요?

다른 나라는 고속도로 전용차로가 있는 구간은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특정한 기간에 한다든지 주말에 한다든지 하는 것은 없고 출퇴근할 때 뉴저지에서 맨하탄 들어가는 버스전용차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서부지역에 보면 카풀레인이라고 해서 승용차도 2인, 3인 이상 탄 차량은 전용차로로 갈 수 있어요.

▶ 그러면 그 맥락에서 버스전용 차선도 나온 건가요?

그것과 좀 다르기는 한데 어쨌든 대량의 여객을 수송하려면 버스가 승용차와 섞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당시에 분석을 해 보니까 전체의 교통량 중에서 버스가 10%정도 되었는데 수송인원을 보면 절반을 날랐더라고요. 처음 적용하고 나서요. 그러니까 효과가 굉장히 좋았던 거죠.요즘은 워낙 도로망도 좋아지고 승용차도 많이 늘어나서 승용차의 분산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상당히 찬사를 받았습니다.

▶ 주말에 고속도로를 나가다 보면 버스전용 차선의 버스는 쌩쌩 다니잖아요. 그런데 그 옆에 거북이걸음으로 따라가려고 하면 그냥 삭 들어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유혹이 생기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가까운 친구들이 이거 내 친구가 제안했다고 하면 ''''그 자식 데리고 오라고 그래''''(웃음) 그런 사람도 있었다고 농담으로 하기도 해요.

▶ 그래도 버스 안에 타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행복하시겠어요.

그때 그 제안을 하고 제가 신문과 방송에 홍보되면서, 제가 술을 잘 못해요. 방송국 관련된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누구 아니시냐고, 지난 추석 때 너무 편하게 잘 다녀왔다면서 자기가 술을 사겠다고 해요.저는 스케줄 때문에 못 가는데 같이 밥 먹던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이 가서 새벽까지 공짜 술을 먹고 오기도 하고, 식사비를 대신 내주는 사람도 있고 그랬어요. 요즘은 별로 없어요.(웃음)

◇ 대중교통 이용 위한 발상의 전환 ''''환승이 관건''''

▶ 처음에 시행착오가 있었나요?

시행착오라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 적용하다 보니까, 운영시간이 홍보가 잘 안 되어 있을 때라서 운영시간을 잘 모르셔서 어려움을 당한 분들도 계셨어요.

▶ 버스전용 차선이나 고속도로 전용차선 등 이처럼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훨씬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다는 인식이 더 확산이 되면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게 줄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바쁘게 살고 시간가치가 높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버스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어차피 종점에서 자기 사무실이나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 때문에, 계산을 해 보면 승용차가 빠르다는 계산이 나오거든요. 그걸 부인하면 정책을 세우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버스하고 연계된 포인트에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들을 연결을 해 줘야 합니다. 자전거를 세워다 준다든지 전기차를 무료로 렌탈해 준다든지 하는 것들을요. 그리고 제가 해 주고 싶은 게 있는데 지하철역에서 무공해 교통수단을 일정시간 아주 저렴하게 렌탈을 해 줘서 이런 것들이 승용차를 놓고 가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어요. 그런 걸 동원해서라도 승용차를 놓고 가도 큰 불편 없이 목적 통행을 달성할 수 있고, 이런 것이 가능해야만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이 좀 더 쉽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한때는 카풀제도가 굉장히 유행했었는데 슬그머니 없어진 것 같아요.

제가 귀성길 카풀도 많이 장려도 해 봤는데 미국에서는 잘 되지만 유럽에서는 잘 안 되거든요. 물론 독일 일부에서는 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게 국민성과 많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이웃과 잘 지내려고 해도 잘 안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웃과의 교류가 잘 안 되는 나라에서는 카풀이 잘 안 된다는 거예요. 문화적인 특성을 비교해 보니까 그런 점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카풀이 반짝 했다가 안 되는 것이 그런 점 때문이 아닌가 싶고 그리고 제도적으로 사고가 나고 형사사건이 일어나다 보니까 택시타고 다니든지 차라리 아예 차를 사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사회가 안정화 되고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한 제도 같아요.

▶ 한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뉴저지에서는 배를 타고 나오잖아요. 우린 도시 한복판에 저 강을 두고 왜 이용을 못 할까 하고요. 강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요?

네덜란드나 미국도 마찬가지로 제일 비싼 집이, 바로 집에서 작은 요트를 타고 바다나 강으로 나갈 수 있는 집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우리가 강을 잘 이용하지 못한다는 얘기죠.우리 한강이 너무 크다 보니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지금 상황보다는 이용률을 좀 더 높이는 쪽으로 가야하고,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있는데 기존의 교량이라든지 보를 세우면서 이것을 주은으로, 수은으로 활용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어요.왜냐하면 수량이 계절별로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보를 세우는 거거든요. 물을 가둬놓는 거란 말이죠. 어떤 분은 심지어, 한강은 강이 아니라 호수다. 내려가는 물을 못 내려가게 해서 일정한 수량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호수나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게 도크(Dock : 인공적으로 막은 저수지로 선박들이 점검과 수리를 위해 설치해놓은 곳)에요. 도크를 직접 유럽에 가서 조사도 해 봤는데 도크를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서 도크에서 보로 넘어가는 시간을 단축하느냐 이런 부분도 있어요. 이런 것들은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면 대규모는 아니지만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10여 년 전, 조순 시장 때부터 잠실에서 교통수단을 통해서 여의도까지 오는 것을 고려했었죠. 그게 실패한 것은 선착장에서부터 최종목적지까지 무엇으로 갈 것인가? 여기에 대한 것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수요조사에서 수요가 안 나온 거예요.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자전거를 무료로 렌탈을 해 주든지 셔틀버스를 해 주든지 그렇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엄부(嚴父)의 회초리, 시험 보면 집에 못 들어가

박용훈2

 

▶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은 서울에서 멀지 않아요. 경기도 의정부입니다. 이곳에서 태어나서 죽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중학교 때는 서울로 올라왔죠.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제가 1년 전에 ''''아버지 학교''''를 다녔어요. 아버지 학교를 수료하신 분이 굉장히 많으신데 아버지 학교를 다니면서 제 또래의 아버지들이 많이 오세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대체로 엄부(嚴父), 엄한 아버지한테서 회초리를 맞고, 사랑한다 소리 제대로 못 들어보고 자랐는데 저 역시 그래요.제가 공부는 그렇게 못할 것처럼 생기지 않았잖아요. 보통은 할 것 같이 생기지 않았나요?(웃음) 성적을 받아와도 속으로 본인이 만족하시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그 정도 했으면 좀 더 잘해라''''고 하면 좋은데 회초리를 치시는 거예요. 더 잘해야 한다고요. 우리 집에 벼슬장이라고 있어요. 임금님이 옥쇄를 찍어서 정3품 벼슬 하신 것을 딱 펼쳐놓으시고는 ''''이 할아버지께서 장원급제를 하시고 정3품까지 올라가시고...'''' 이렇게 훌륭하게 되려면 더 해야 한다고 회초리를 치셨죠.그분들 세대하고 나하고는 다른데. 그래서 시험을 보면 시험결과를 가지고 집에 안 들어갔어요. 우등상을 받을 정도는 되었는데도 엄하게 자란 편이었어요.

▶ 시험성적이 좋은데도 아버지가 회초리를 때리시면 부당하다는 생각 안 하셨어요?

지금 같으면, 제 아이를 그렇게 했다고 하면 애가 아마 경찰에 고소를 하든지 했을 텐데(웃음)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때리면 맞아야죠. 당장은 도망갔다가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도 맞아야 되는 분위기였어요.

▶ 형제가 어떻게 되셨어요?

3남 1녀 중에 제가 막내였어요.

▶ 보통 막내한테는 관대한 편이시잖아요.

우린 그런 거 없었어요. 3형제를 회초리를 치시면 똑같이 치셨어요.

▶ 아버님께서 살아계시나요?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3형제가 아버님 앞에 모이면 주눅이 들어서 무릎 꿇고 앉았어요. 어머님은 아직까지 생존해 계시고 아주 따뜻하게 잘 해 주셨어요. 아버님께서 제가 중학교 올라갈 무렵에 그때만 해도 뭔지 잘 몰랐는데 의료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간단한 수술을 하러 들어가셨는데 병원에서 착오로 수술도 하기 전에 마취하는 과정에서 잘못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의료사고에요. 그렇게 돌아가셨어요.그러다 보니까 제가 어려서 아버님을 여읜 거잖아요. 어머니께서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신 거죠. 그러나 어머니께서 상당히 강인함을 보이시고, 집에서 살림만 하시다가 제과점도 하시고 사업을 하셔서 저를 교육시키셨어요.

▶ 아버님은 어떤 일을 하셨어요?

조그마한 가게를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옛날의 상점으로는 남겨놓으신 재산도 없었고요. 의료사고이기 때문에 보상금이 나와서 합의를 보기는 했지만 어렵죠. 상당히 어려운 가정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도 장학금을 많이 받는 곳으로 가서, 서울시립대학교를 다녔는데 장학금을 다 받고 어렵지 않게 공부를 했습니다.

▶ 어머님은 지금 모시고 계세요?

지금 미국에 가 계세요. 둘째 형님이 미국에 계셔서 왔다 갔다 하십니다.

◇ 2 플러스 1, 혜택은 상품권 5만원

▶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

좀 늦게 했는데 32살에 했어요. 지금 같으면 늦은 것도 아니지만요.그때는 결혼을 안 해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 방송하고 24시간을 바쁘게 다니다 보니까 결혼을 하려는 건지 마는 건지 생각도 불분명했어요. 그러면서 방황을 좀 했어요.제가 교회를 독실하게 다닌 건 아닌데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좀 등한시하게 될 때인데 누가 사람을 소개시켜 줬어요. 저보다 2살 아래인데, 이 사람은 3년 동안 배우자를 잘 만나게 해 달라고 새벽기도를 다녔어요.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기도한 상대가 내가 맞느냐? 그 정도 인물은 내가 안 된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둘이 만나서 데이트를 몇 달 하고 워낙 늦으니까 따져봐야 거기서 거기고 결혼을 해야 하기는 할 거 같고 그래서 결혼을 했어요.

▶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2 플러스 1입니다. 딸 둘에 아들 하나인 의미도 있고 위에가 딸이고 그 아래가 아들인데 이 둘은 90년대 초반에 낳았어요. 그런데 막내는 2006년에 낳았어요. 아주 늦둥이죠.아이들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까 집사람이 좀 심심하다고, 섭섭하다고 아이를 하나 키워보면 어떨까, 입양을 하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작년과 재작년에 유독 아이들 출산이 안 된다고 방송에서 그러니까 우리라도 하나 더 낳아서 사회에 기여하자고 해서 낳았어요. 어쨌거나 출산하고 나서 보니까 지금 굉장히 좋습니다.

▶ 아이 셋을 낳으면 혜택이 있지요?

은근히 그런 것도 기대를 했어요. 지방에 가면 200만원도 주고 100만원도 주고, 그런 곳도 있다고 해서 우리도 어느 정도는 주겠지 하고 출생신고를 하러 목5동사무소에 가서 신고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규정이 이렇다면서 상품권 5만원을 주더라고요.(웃음)그래서 이런 걸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하고 나오는데, 저희야 이런 거 생각 안하고 낳은 거지만 경제적으로 따지다 보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건 보건복지부에서 좀 들으셔야 합니다. 요즘 출산하는 사람들이 신혼부부들이 출산하는 것보다 고연령이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그런데 고연령이 출산하게 되면 돈이 배로 들어요. 산부인과 가서 검사하는 거 다 유료로 해야 돼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검사들이 너무 많거든요. 장애, 대사 검사 등 60~70만원씩 들거든요.

그런데 출산하는데 신혼 때 출산하면 시어머니나 장모님이 오시잖아요. 그런데 나이 40대 중반에 출산하면 이 분들이 돌아가시거나 자기 거동도 잘 못하시는데 어떻게 와서 봐줘요. 그러니 전부 도우미를 써야 하잖아요. 출산하고 나서 월 백 몇 십 만원씩 지출할 각오를 해야 가능해요. 아니면 남편이 출산휴가를 받아서 남편이 봉사를 하든지요. 출산비용이 의외로 많이 들어요. 옛날에 이렇게 많이 들었나 생각해 보니까 출산정책이 오히려 이런 쪽에 지원이 많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40대 중반에 아이를 낳다 보니까 우리 아이가 쓰던 물품을 다 딴 데 줬을 거잖아요. 다시 그걸 받아와야 하는데 어디 가서 받아와요. 대충 같은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주고받는데 지금 그걸 받으려면 십 몇 년 후배들한테 받아야 해요.그래서 수소문해서 한참 아래 후배한테 그거 있냐고 해서 받기로 했는데 안 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후배한테 너, 유모차하고 왜 안 주는 거냐? 전화할 수도 없고. 그래서 급해서 샀어요. 나중에 우연하게 그 후배를 만나서, 그거 안줘서 새로 샀다고 했더니 자기는 다 모아놨는데 헌 거라서 감히 못 드렸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때 내가 좀 연락을 할 걸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고 그걸 받을 통로가 많지 않아서 비용이 많이 든다니까요.

▶ 영화배우 박중훈 씨도 아이가 셋인데 다른 혜택은 없는데 전기료는 깎아준다고 해요.

올해 2월 달부터 적용이 되었어요. 등급이 있는데 한 등급을 낮춰줍니다. 그래서 전기 한 등급을 낮춰주니까 전기를 적게 쓰는 집은 몇 만원 정도 혜택을 보는 집도 있어요.우리 아이 때문에 혜택을 본 것은 다른 은행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제가 거래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게 있는데 다른 은행으로 바꿨더니 그 은행에서 자녀가 세 명이시네요? 그러더니 세 자녀 모두 20세 이하라고 대출이자를 0.2% 내려주더라고요.0.2% 큰 거예요. 그래서 다른 곳에 비용을 많이 썼는데 이렇게 돌아오는 것도 있구나, 어쨌든 복덩이입니다.

◇ 매뉴얼로 배운 ''''아버지 사랑''''

▶ 아버지 학교를 다니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실 제가 반성해야 할 점이 많은데 아버지 학교를 다니게 된 이유가 뭐냐 하면,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보면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것이 무게나 잡고 헛기침하고 회초리 들고, 이런 거 밖에 모르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고 어렸을 때부터 다짐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매뉴얼을 학교에서 가르쳐준 적도 없고 우리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런 상황에서 욕하면서 배운다고 하잖아요. 어느 순간 아이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옛날 아버지의 잘못된 것을 똑같이 답습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했는데 아버지 학교 프로그램이 아버지에 대한 바람직한 매뉴얼을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 매뉴얼을 보면서 자녀들을 하루에 한 번씩 포옹을 해주고 대화도 하고요. 우리가 자녀들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우리는 나름대로 10분, 20분 대화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밥 먹었니? 학교에서 별 일 없었지? 이런 게 대화는 아니라는 거죠. 같이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말을 나눠야 그게 대화인데 우리나라는 평균 대화시간이 17초라고 해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아이들과 많이 교류도 합니다.

▶ 아이들이 좋아했겠어요.

그 이후로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자녀들한테 편지를 잘 안 쓰잖아요. 아버지 학교에서 자녀들한테 편지도 쓰고 또 돌아가신 아버지한테도 편지를 쓸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때 서로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것들, 이로 인해서 성장을 하더라도 가슴에 응어리지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편지를 쓰면서 풀 수 있는 화해의 시간도 되고, 자녀한테도 집사람한테도 편지를 쓰죠. 이제는 집사람한테 편지 잘 안 쓰잖아요. 그런데 편지를 쓰면서 서로 울죠. 마음도 나누고요. 그래서 저는 자녀들을 키우면서 포옹도 해주고 같이 밤에 기도도 해주고 성경도 읽으면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되고 그런 시간이 참 좋은 것 같아요.

◇ 교통공화국의 주범은 인구 밀도

▶ 해외를 많이 다니셨는데, 다니시면서 이 도시는 정말 살고 싶다 혹은 걷기가 참 좋은 도시다, 서울 광화문처럼 교통이 잘 되어 있다 등등 어떤 나라가 그렇던가요?

교통이나 교통정책도 잘 되어야 하지만 일단 사람이 적게 살아야 된다고 봐요. 인구 밀도의 문제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많이 나가서 다른 나라는 살만 하던데 우리나라는, 특히 서울만 오면 짜증난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책이나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의 문제라고 봐요.서울에서 처리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좋은 도시들을 꼽으라면 독일의 몇 개 도시, 스위스의 루체른이나 오슬로 같은 도시, 그리고 북유럽에 가도 좋고요. 그런데 왜 좋을까? 그런 도시들을 보면 대게 인구가 30만~50만 정도의 휴먼 스케일의 도시란 말이죠. 굳이 차 안타고도 조금 힘들다 싶을 정도로 걸으면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정도가 되니까 교통문제 걱정을 안 해도 되고 나머지는 교외 전철이나 직행버스, 승용차 타고 왔다 갔다 해도 되니까 해결이 돼요.그래서 저는 서울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지만 인구가 조밀하게 살다 보니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지방 분권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지방의 가치를 살려야 그게 인구분산이 된다, 인위적으로 행정수도를 옮기는 것도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마는 지방의 가치를 살려서 지방에 사는 것에 프라이드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래서 순기능적으로 서울시민들이 지방을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봅니다.

서울의 환경문제에 대한 것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고 이런 환경 속에서 몇 년간 노출이 되면 폐가 손상을 입는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레포트도 내 주고 지방의 공기 좋은 곳에 살라고 자꾸 권해줘야 지방으로 가지 않겠어요.강원도 같은 곳은 참 건강할 텐데 하지만 그곳에 가면 먹고 살게 없잖아요. 먹고 살 것도 지금부터 마련해서 해 준다, 가라. 이렇게 하면서 현실적으로 경종을 울려 주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인가, 다 같이 주식투자하고 땅 투자해서 돈 많이 버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적게 벌어도 이렇게 철학적으로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보건복지부가 하든 어느 부서가 하든 그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우리의 조급한 문화를 푸는 길이기도 하고 사회를 건강하게 해주는 길이기도 하고 교통문제를 푸는 길이기도 합니다.교통문제를 도시문제나 교통문제 내부에서 풀려고 하면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로 같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네비게이션이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지도를 갖고 다니잖아요. 운전하면서 지도를 계속 보지는 않거든요. 자기가 알고 있는 도로의 지식, 상식 그리고 모르는 부분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 네비게이션에 의지하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로표지 보는 방법을 잊어버려요. 희한하게 도로표지를 못 보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렇게 됐나 했더니, 새가 날갯짓을 안 하면 나는 것을 잊어버리듯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네비게이션의 폐해라고 생각하는데 기능을 잊어버리는 것도 잊어버리는 거지만 대게 운전하기 전에 네비게이션을 세팅하고 목적지를 가면 좋은데 운전하면서 조작을 하거든요. 이것은 휴대전화를 거는 것보다 더 위험해요.왜냐하면 눈하고 손을 동시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 조작해야 하거든요. 요즘 DMB 시청하는 것보다 더 위험해요. 그런 부분들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규제는 안 하는데, 그것도 사용하는 요령이나 안전수칙 같은 것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 생명존중과 사랑, 늦둥이를 통해 알게 돼

▶ 늦둥이를 낳아서 키우니까 어떤 점이 제일 좋으세요?

위의 두 아이는 출산할 때 제가 현장에 없었어요. 아주 애석한 일이죠. 공교롭게도 제가 지방에 가서 생방송을 하거나 MC였기 때문에 펑크낼 수 없는 입장에서 출산을 해서 아주 후회를 많이 했어요. 아내가 섭섭했겠지만 그때는 방송이라면 넘어가는 것도 있고 해서 대충 무마는 했지만 제가 마음이 안 놓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분만실에 들어가서 탯줄을 잘라줬어요. 그랬더니 아이에 대한 사랑이 처음부터 다르더라고요. 위 두 아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요.

그리고 위의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귀여워는 하지만 남자들이 그렇잖아요. 아이가 배설을 하면 아내 손에 넘겨주고 그때부터 바쁜 일을 만드는데 이제는 제가 자주 갈아줍니다. 그러면서 생명이라는 게 이렇고 사랑이라는 게 뭔가 늦둥이를 낳으니까 이게 새롭더라고요. 생명존중에 대한 생각, 자녀에 대한 사랑이 새롭고 그러면서 위의 두 아이에 대한 관계도 좋아지고. 물론 그 아이들은 시험에 들죠. 새로운 도전자가 출생을 했으니까요.(웃음)그래서 서두에도 아버지 학교 이야기도 잠시 했습니다만, 자녀들을 자유롭게 키워보려고 합니다. 이곳 목동이 대치동만큼 중,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는 게 치열해요.

큰 딸이 지금 중3인데 단기선교를 인도, 네팔 등 동남아를 다녀와서 그쪽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쪽으로 보낼까 생각하고 있어요. 또 돈도 적게 들더라고요.(웃음) 내심 저렴한 비용으로 공부도 할 수 있고 해서 생각해 보자고 했고, 둘째 아이는 올해 대안학교에 보냈어요. 충남 서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인 ''''꿈의 학교''''에 보냈는데 본인이 아주 좋아하고 또 만족해합니다.

그리고 막내는 이제 15개월이 채 안 되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 주고 싶은데 제가 이 아이 때문에 시험에 들었던 적이 있어요.늦둥이 낳고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뭔 줄 아세요? 얘가 시집갈 때 되면 아빠 나이가 얼마인가 하는 거예요. 잊어먹고 있었는데 그 얘길 들으면 아이가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생각이 드는데, 어쨌거나 저는 굉장히 만족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혹시나 아이를 하나 더 낳아볼까 고민하는 40대 넘어서시는 분들, 50대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그런 분들은 과감하게 출산을 하시면 비용은 좀 더 든다 하더라도 거기서 얻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무한의 가치입니다.국가에서 얼마 지원해준다는 것 보다 이렇게 행복이 커진다는 것을, 제가 홍보대사를 하면 안 될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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