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이 뭔지 농사짓는 사람이 어떻게 알어, 억울하게 끌려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지 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에 대한 사전조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10일 청원군 남일면 노인들은 당시 악몽에 몸서리를 쳤다.
이날 오전 충북 청원군 남일면 두산2리 마을회관에 모여 있던 노인들은 보도로 접한 집단학살 매장지 유해발굴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였다.
신충호(90)옹은 "트럭에 실려 온 사람들이 산으로 끌려 올라가면 총소리가 났다"며 "도랑물에 시체 썩는 냄새가 나 소가 물도 안 먹고 도망갔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 만세'' 소리가 나고 호각을 삑 불면 총소리가 들렸다"며 아직도 당시 기억에 몸을 떨었다.
자리를 옮겨 민간인 집단학살 매장지로 유해발굴을 앞둔 고은리 분터골. 학살이 자행된 지 57년이 지난 분터골에도 봄기운이 완연했다. 나무에는 새싹이 돋고 진달래도 피어 있었다.
봉분조차 없는 이 곳에는 며칠 전 민간단체와 유족들이 위령제를 지내며 내건 현수막을 통해 매장지를 짐작케 할 뿐이었다.
분터골에서 집단학살이 자행된 것은 1950년 7월 4∼10일에 사이. 북한군이 청주로 밀려들기 하루 전인 12일에도 학살이 자행됐다는 증언도 있다.
당시 청주지역 보도연맹원들은 지서로부터 모이라는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청주경찰서 무덕관으로 모였다. 이들은 트럭에 실려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청주∼보은간 국도변 곳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분터골에서 가장 많은 1000여 명이 학살된 뒤 집단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월 5∼8일 아침·저녁으로 군인 10여 명이 트럭 6∼8대에 보도연맹원들을 싣고 와 골짜기 구덩이 앞에 세워 놓고 학살을 자행했다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뒤엉킨 채 방치돼 인근 마을 주민들은 2년 동안 매장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청원군 남일면 고은3구에서 만난 최홍섭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은 "어제(10)부터 본격적인 사전조사에 들어갔다"며 "가해자, 피해자, 학살 규모 등에 대해 한 달 간 조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본격적인 유해발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용역을 발주해 곧 발굴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만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 운영위원장은 "당시 남일면 쌍수리부터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사이 골짜기마다 학살이 자행됐다"며 "분터골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