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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세로 꺼진 여류감독 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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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09-1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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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최병국특파원) = 21세기의 가장 뛰어난 기록영화 감독이자 사진작가인 레니 리펜슈탈이 지난 8일 101세로 타계함으로써 인체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에서 지칠줄 모르던 그녀의 예술혼이 마침내 꺼지게 됐다.

지난 1902년 베를린의 난방기 회사 사장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의 본명은 헬레네 베르타 아말리에 리펜슈탈이다.

어릴 때 그림과 발레를 배우고 1923-26년 유럽 순회 무용공연을 한 리펜슈탈은 무릎 부상으로 배우로 전환해 성공했다.

리펜슈탈과 올림픽
손기정우승도 담아
<올림피아>에 나오는 고 손기정 선생의 경기 장면은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만이 실제 경[▲ <의지의 승리>의 한장면] 기 장면이고 나머지는 경기가 끝난 다음날 기록영화를 위해 연출된 장면이다.

보통 우리는 〈올림피아〉에서 손기정 선생의 금메달 획득 장면만을 떼어내 기억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선전성과 예술성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가지를 아우른 뛰어난 작품으로 역사에 기록된 영화이다.

이 영화는 베를린 올림픽이 끝난 2년 후, 1938년 공개되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무솔리니컵을 수상하였고 많은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올림피아〉는 레니 리펜슈탈이라는 독일의 여류 감독이 만들었다. 무용수였던 그녀는 부상으로 인해 무용을 그만두게 되자 연기자로 전향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그녀는 영화배우에서 영화감독으로 승승장구했고 히틀러의 눈에 들어 나찌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기록영화를 부탁 받게 됐다. 나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이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5)이다.

이 작품은 일체의 내레이션을 사용하지 않고, 영상과 연설만으로 구성되었다. 30m가 넘는 사다리에서 찍은 장관, 행진하는 사람, 환호성, 깃발, 신처럼 등장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독일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탁월한 예술성을 바탕으로 베니스 영화제와 파리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의지의 승리〉는 영상이 인간에게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독일은 이 영화를 통해 독일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독일을 반대하는 국가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히틀러의 악마적 성질과 인간성이 결여된 독일인들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후 당시 유명 감독 아르놀트 팡크의 영화에 감동한 리펜슈탈은 감독 수업을 받았으며, 1932년 자신이 각본과 주연, 감독 까지 맡은 첫 작품 `푸른 불빛''을 제작하면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푸른 불빛''으로 아돌프 히틀러의 눈에 든 리펜슈탈은 이후 나치의 의뢰로 수많은 기록영화들을 제작하며, 최고 명성을 가진 감독이 됐다.

이 가운데 1934년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는 행진하는 군인들의 다리와 군화를 클로즈업하고, 환호하는 군중을 히틀러와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등 혁신적 기법을 사용하는 등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것이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기록한 2부작 `민족의 제전''과 `미의 제전''은 인체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완벽에 가깝게 표현했다고 평가받는다.

36대의 카메라와 120 여명의 스태프를 동원해 만든 이 작품은 선수들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포착하기 위해 이동식 레일을 타고 움직이며 찍는 기법 등 당시로선 혁신적인 촬영.편집 기법이 사용됐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등에 의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고 인상적인 예술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던 리펜슈탈은 그러나 이 작품들 때문에 평생 나치 정권을 찬양자라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차대전 종전 후 전범재판에 회부된 리펜슈탈은 4년 간 복역하다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으나 아무도 영화제작을 의뢰하지 않았다.

종전 직전인 1944년 결혼한 군 장성 페터 야콥과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으며, 결국 3년 만에 이혼했다. 또 유일한 형제인 하인츠는 2차대전 중 동구에서 사망해 어머니와 둘이서 오랫동안 가난 속에서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1954년 기록영화 ''저지대''를 통해 영화계에 복귀했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리펜슈탈은 60년대 중반 이후 사진작가로 변신했으며, 1973년에는 아프리카 수단의 누바 부족과 함께 수년간 생활하며 촬영한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를 출간했다.

70대 노인이 돼 수중 다이빙을 배운 리펜슈탈은 1974년부터 25년 동안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인도양 등에서 2천회 이상 잠수하며 해저를 촬영하는데 탐닉해왔다.

리펜슈탈은 지난해 100세 8월22일의 100세 생일을 앞두고 해저 생태를 그린 극장용 기록영화 `수중의 인상''을 발표했다. `저지대'' 이후 48년 만의 일이다.

헬리콥터 사고 등으로 인한 부상에 시달리던 리펜슈탈은 최근 암수술을 받았으며, 지난 8월 22일 병석에서 101번째 생일을 맞았다.

병석에 눞기 전 까지 "나에겐 은퇴라는 말이 없다"면서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인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영화로 그리겠다며 끝없는 열정을 보이던 리펜슈탈은 이후 한 달도 안돼 101년 간의 삶을 마감했다.(끝)[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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