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묵 원장
전북 전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며 전주 약령시 제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상묵씨.
그러나 요즘 들어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본업을 제쳐둔 채 외도의 늪에 푹 빠져버린 원장 탓에 원장 얼굴보기가 부쩍 힘들어졌다.
천상묵 원장의 혼을 빼놓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 한약재와 전북에서 생산되는 쌀을 서로 교환하는 민간 단체 주최의 대북사업.
때문에 한의원 식구들은 외도에 정신이 팔려있는 원장이 마음에 들 리 없지만, 낙천적이고 사람좋은 원장 성품 때문에 너그러이 이해의 폭을 넓히며 웃음 꽃을 피운다.
천 원장이 북한 한약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방의 과학화를 꿈꾸어왔던 천 원장은 한약재 표준화 사업을 구상했고 그 적격지로 북한을 떠올렸다.
천 원장은 " 가령 한국에서 생산되는 백복령과 중국에서 생산되는 백복령은 기후조건과 토양에 따라 함유성분이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에 따른 처방도 달라야 하는데 지금은 주먹구구식으로 처방되고 있다"며 "때문에 한약재를 표준화하는 사업이 중요하고 그 사업 대상지로서 비교적 덜 오염된 토양과 풍부한 약재, 인적자원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이 매우 적합하다"도 말했다.
이처럼 천 원장의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은 지난 2004년말 전주시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부터 실현 가능한 사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천 원장의 사업 아이템을 소개받은 전주시장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부터 사업은 본 궤도에 올랐던 것이다.
그 뒤부터 중국 단동의 무역 중계업자를 거쳐 북한과 접촉이 시작됐고 6차례 중국을 오가고 3차례 북한을 다녀오며 북측 관계자들과 담판을 벌인 끝에 올해 초 북한 한약재와 전북에서 생산되는 쌀을 직거래하는 계약체결 성과를 얻어냈다.
북한을 상대로 한 모든 사업이 그렇듯 천 원장 역시 한 단계씩 사업이 진척될 때마다 애간장을 녹여야 했고, 또 순수한 마음으로 북한 관계자에게''촌지''를 건네기도 했다는 후일담도 털어놨다.
"그 사람들은 절대 공개적인 자리에서 봉투를 받지 않아요,그래서 어떻게 마음 표시를 조금 해보나 하고 고민을 하던 중에 그쪽 사람이 화장실을 따라오는 거예요, 그러더니 옆 자리에 서서볼 일을 보며 "봉투는 이럴때 주는 겁네다"하는 거예요"
북한 당국으로부터 모든 한약재 국외 유통은 전주 약령시 제전 위원회를 통하도록 한다는 서류까지 받아 낸 천상묵 원장.
이 모든 과정이 이뤄지기까지는 숱한 갈등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천 원장은 누가 뭐래도 중심을 잃지 않고 소처럼 뚜벅뚜벅 뜻한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는 신념으로 극복해 냈다.
이 땅의 한의사로서 한의학계 남북교류 물꼬를 텄다는 점에 만족한다는 천 원장은 이제 이후의 사업추진은 실무팀들에게 넘겨준 뒤 장기간 외도 생활을 접고 본가로 돌아와 아내에 대한 사랑, 또 환자들과 사랑에 빠질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서정주 시인은 인생의 8할이 바람이었다고 말했는데 저는 인생의 8할이 부끄러움이었습니다.그러던 중에 이런 일생일대 보람찬 일을 이뤄내 그 부끄러움이 조금을 가려질 듯 싶네요, 아마 아내가 그동안 도망가고 싶을 때가 많았을텐데 뭐가 좋아서 그래도 끝까지 곁에 있어주니 그저 고마을 따름입니다. 이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으니 ''대북교류''는 잠시 접어두고 알콩달콩 아내와의 ''내외교류''에도 박차를 가해야죠,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