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림 공화국과 합병 조약을 전격 체결,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의 대립이 '신(新) 냉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에 강력한 추가제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제재의 실효성과 내부 이견을 둘러싼 고민도 깊다.
이런 가운데 서방 언론들은 푸틴의 이번 합병 조약 체결을 소련 해체 이후의 국제 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신냉전 시대의 개막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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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합병조약 전격 체결 '승부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와 크림의 러시아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조약 서명에 앞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크림은 떼어낼 수 없는 러시아의 일부였으며 러시아의 구성원으로 강력하고 안정적인 자주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 러시아가 크림에 이어 다른 지역도 합병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반발과 제재에도 크림자치공화국이 편입요청을 한 바로 다음날 신속하게 조약을 체결하는 '강공'을 이어갔다.
러시아 상하원이 크림 합병안을 승인하더라도 푸틴이 거부권을 행사해 실제 합병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푸틴은 예상을 뒤엎고 의회 논의 뒤 조약을 체결하는 통상적 절차도 밟지 않은 채 합병을 밀어붙였다.
이번 합병 조약은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승인과 상하원의 비준을 얻어 발효된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은 조약 비준 절차가 이번 주말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이 '새로운 냉전'을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으나 소련 해체 후 4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국제질서에 직접적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그에 비견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NYT는 또한 러시아가 자국과 주변국을 포함한 '안보영역'을 침범당할 경우 그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했다고 지적했다.
◇서방 "국제법 위반…추가 제재" 경고했지만 이견 노출
미국과 EU등 서방 국가는 러시아의 크림 합병조약 서명을 일제히 비난하며 추가제재를 경고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크림반도를 공식적으로 합병하려는 러시아를 규탄한다"며 "앞으로 제재조치를 추가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백악관은 또 주요 7개국(G7) 정상과 EU가 다음 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기간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한다고 발표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러시아의 행보를 두고 "2차대전으로 이어진 국수주의적 열망이며 현 상황에서 대단히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번 합병조약 서명을 "강도행위"라고 비난한 가운데, 유럽 각국 지도자들도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인정하지 않으며 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크림 주민투표와 독립선언, 푸틴 대통령의 크림 합병 등이 모두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달 20∼21일 열리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더 강한 대응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도 러시아에 대한 군수품 수출허가를 중단하고 해군의 러시아 방문과 합동훈련 계획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모든 당사자들이 건설적인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서방 내부에서는 제재 수단과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으며 내부 이견도 노출되고 있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앞서 러시아의 주요 8개국(G8) 회원자격을 정지하기로 했다고 현지 라디오에 말했다.
이에 비해 메르켈 독일 총리는 러시아 소치에서 예정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준비를 중단한 것 외에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러시아가 G8에 남아있다고 말하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협상을 통해서만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비밀리에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면담하려다 이를 취소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보도 보였다.
◇크림서 우크라이나군 2명 사망…러시아 점령 후 첫 사망자
푸틴 대통령이 합병 조약에 서명한 지 몇시간만에 크림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의 우크라이나 군부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 1명을 포함해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장악한 이후 이 지역에서 무력 충돌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대를 공격한 무장세력이 러시아군복을 입고 있었다며 친러세력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크림 경찰은 저격수 2명이 부대 인근 다른 건물에서 각각 총을 쐈다며 "상황을 어지럽히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반박했다.
사망자가 나오자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크림반도에 배치된 자국 군인들에게 방어를 위한 무기 사용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군 사망자가 나온 데에 "깊이 우려한다"면서 "당사자들은 자제하고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