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홈페이지 해킹으로 유출된 개인정보 1,200만건은 고스란히 해커 일당의 배를 불리는데 악용됐다.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던 박모(37)씨는 매출이 신통치 않던 차에 작년 1월 지인을 통해 해커 김모(29)씨를 소개받았다.
김씨는 KT 휴대전화 개통·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박씨에게 "KT 홈페이지를 해킹해 개인정보를 넘겨 줄 수 있다"며 거래를 시도했다.
박씨는 김씨에게 월 기본급 300만원, 훔친 개인정보로 휴대전화 1대 개통할 때마다 5천원의 수당을 주기로 계약했다.
김씨는 자신이 공언한 대로 작년 2월부터 KT 홈페이지에서 회원 개인정보를 탈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로스 프로그램'을 이용한 신종 해킹 프로그램으로 많을 땐 하루 20만∼30만명의 개인정보도 뽑아냈다.
김씨의 해킹 능력을 확인한 박씨는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정모(38)씨도 끌어들였다.
정씨는 텔레마케팅 업체 운영을 맡았다.
박씨와 동업하기로 한 정씨는 박씨의 사무실 건너편에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차리고 텔레마케터 20여 명을 고용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번호, 보유 휴대전화 기종, 약정기간 등의 개인정보를 넘겨받은 텔레마케터들은 약정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휴대전화 기기 변경을 권유했다.
김씨 일당의 '맞춤형 마케팅'은 주효했다.
일반 대리점에서는 하루에 3∼4대도 팔기 어려운 휴대전화를 이들은 하루에 수십 대씩 팔았다.
이들은 텔레마케팅 사무실을 안산에도 추가로 차렸고 텔레마케터의 전화통화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이뤄졌다.
휴대전화 배송을 담당한 택배기사는 경찰에서 "하루에 신형 휴대전화 150대를 배달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들이 1년간 판매한 휴대전화는 모두 1만 1천여 대.
시가로 115억원어치다.
해커 김씨는 기본급과 해킹 수당을 합쳐 연간 2억원가량을 챙겨 포르셰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호화 생활을 했고, 정씨와 박씨도 수십억원대 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KT에서 탈취한 개인정보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을 거뒀기 때문에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 등 다른 주요 통신사의 홈페이지를 해킹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들이 1년간 빼낸 개인정보 1,200만건 중 500만건은 텔레마케팅에 활용되고 나머지 700만건은 해커 김씨만이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해커 김씨는 다른 통신사도 마음만 먹으면 해킹할 수 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시도는 하지 않았다"며 "박씨 일당이 KT 휴대전화 개통을 전문으로 하는데다 1년 내내 밤낮으로 텔레마케팅을 할 수 있는 개인정보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의 범죄 행각은 해커가 개인정보를 빼내 텔레마케팅에 사용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경찰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과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해커 김씨와 정씨를 구속하고 박씨를 불구속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