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주요 도시에서 26일(현지시간) 총리의 부패와 관련한 감청파일이 폭로된 것을 계기로 총리 퇴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틀째 이어졌다.
지난 24일 밤 유튜브에 공개된 음성파일에는 에르도안 총리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아들 집에 있던 10억 달러(약 1조 700억원) 상당의 현금을 다른 집에 숨겨놓으라고 지시하는 내용이 녹음됐다.
음성파일은 “집이냐, 아들?” “예, 아버지”로 시작하는 통화에서 아버지는 “그들이 오늘 대비리 사건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어 “알리 아가오울(건설업계 거물), 에르도안 바이락타르(환경도시부 장관)의 아들, 제페르 차을라얀(경제부 장관)의 아들, 무암메르 귤레르(내무부 장관)의 아들 집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한다.
이어 부자는 숨겨둔 돈을 어떻게 빼돌릴지 상의한다.
다음은 녹음 파일 속 통화내용을 우리말로 옮긴 것.
부=지금 네 집에 있는 거 다 빼라.
자=저한테 뭐가 있어요? 아버지 돈뿐이에요, 금고 안에.
부=형이랑 얘기해라. 삼촌한테도 말해서 그것도 다 빼야 해. 매형에게도 말하고.
자=돈을 어떻게 하라고요?
부=지정 장소들로 보내.
자=베라트(친척)한테도 있잖아요.
부=나도 그 말을 한 거잖아! 빨리 만나. 삼촌 부르고.(중략)
자=형이랑 다 모였어요. 베라트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일부를 파루크 칼룐주(사업가)한테 주면 다른 돈처럼 처리할 수 있대요. 그러면 상당 부분 해결될 것 같은데요.
부= 그래도 돼.
자= 그리고 나머지 일부를 메흐멧 규르(건설무역그룹 회장)에게 주고, 계획이 생기면 이걸 쓰라고 할게요. 이렇게 하면 아주 줄어들고, 나머지를 옮길 수 있어요.
부= 그러면 유리해. 모두 없애는 게 유리해.
자=예, 다 없앨 게요.(중략)
부=시킨 일 다 했니?
자=일부는 했고 나머진 해진 뒤 할게요.
부=양쪽 다 처리한 거야?
자=줬어요. 둘 다 비웠대요.(중략)
부=다 없앴어?
자=아직 조금 남았어요. 3000만 유로 있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에요.(중략)
자=사만드라(지명)와 말테페(지명)에 있는 돈, 73만 달러와 30만 달러. 파익 으쉬크(사업가)한테 진 빚이 100만 리라(약 4억8000만원) 있어서 거기 줄게요. 남은 돈은 아카데미에 보내라 할게요.
부= 그렇게 콕 집어 말하지마, 알았어? 사만드라든 어디든 가지고 있지마. 줄 거라면 빨리 보내줘. 왜 가지고 있어?
자=알았어요, 아버지. 제 생각엔 우리가 실시간 감시받고 있어요. 사찰당하는 것 같아요.
부= 그럴 수도 있어. 지금 우리가 이스탄불 경찰청에 뭘 좀 했는데….
네 번에 걸쳐 이뤄진 통화에서는 10억 달러(약 1조원)에 이르는 현금을 어떻게 은폐할 건지 상의한다.
대화 말미에 언급된 이스탄불 경찰청과 관련해서는 다음날 실제로 경찰청장이 경질됐다.
당시 에르도안 정부는 뚜렷한 이유 없이 경찰 고위직을 비롯해 주요 경찰 간부 46명을 교체했다.
‘대도둑 에르도안의 비리 녹음’ 파일은 공개된 지 이틀도 되지 않아 400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올렸다.
도안뉴스통신 등은 이날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 등 주요 도시에서 수천명이 모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와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의 퇴진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스탄불 도심 탁심광장에서는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집회를 주도했으며 공화인민당 지지자와 시민 등 수천명이 참여했다.
다음 달 30일 열리는 지방선거에 이스탄불시장 후보로 나선 무스타파 사르귤은 가짜로 3천만 유로짜리 돈뭉치를 만들어 시민에게 나눠주며 총리의 부패를 비난했다.
이날 집회에서 시위대는 총리가 아들에게 "(돈을) 없애버려라"라고 말한 것에 빗대어 "부패를 없애버리자"는 피켓을 들었다.
또 지난해 여름 반정부 시위 당시 대표적 구호인 '모든 곳이 탁심, 모든 곳에서 저항'을 바꾼 "모든 곳이 뇌물, 모든 곳이 부패"라는 구호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