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상임위원들이 5일 밀양에서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이상현
"경찰에 짓밟힌 주민들이 그렇게 도와달라고 할 땐 꿈쩍도 않더니, 인자 와서 뭐할라고..."
밀양 주민들은 한전의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고 넉 달 만에 방문한 국가인권위의 현장 조사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고 느끼는 모양새다.
밀양 송전탑 사태의 인권침해 의혹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가 5일 밀양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1명을 포함한 인권위 조사단은 송전탑이 지나는 단장면 평리와 바드리마을, 동화전마을, 상동면 도곡마을 등 5개마을을 차례로 방문해 주민들에게 인권 피해 사례에 대해 직접 들었다.
이어 삼문동 너른마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주민들은 경찰이 공사장과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부터 길을 막는 과도한 통행제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 고준길 씨는 "공사현장과 멀리 떨어진 마을 입구에서부터 주민들을 막고 있는데, 이것은 불법이다. 인권위에서 경찰에게 지적해서 바로 잡아 달라"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지금 마을은 비상계엄령 상태나 다름없다. 마을에까지 경찰이 항상 들어와 있다. 경찰이 농토에까지 나와서 농사지으러 가는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요구한다. 우리 나라가 법치국가가 맞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주민들을 막는 과정에서 수십명의 부상자가 나오고, 기본적인 물품의 반입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서보명 씨는 "이미 주민들 중에는 환자가 100명이 넘게 발생했다. 이렇게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면 가해자가 있을텐데, 경찰이 잡아 주지를 않는다. 주민들은 조금만 반항해도 잡아간다. 반대한다는 의사가 있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이렇게 짓밟아도 되느냐"고 주장했다.
서정범 씨는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경찰이 주민들의 이불도 빼앗고, 종이박스나 파레트 조차 반입을 못하게 막고 있다. 경찰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3번의 긴급구제 신청과 5건의 진정이 제기됐었는데 왜 이제서야 인권위가 내려왔는지에 대한 원망도 터져 나왔다.
송 루시아 씨는 "공사가 진행될 때 인권위가 왔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요구할 때 오지 않더니 지금에 와서 조사를 나오면 우리가 뭐가 돼냐"고 말했다.
고 유한숙 씨의 유족들은 "밀양시청 앞 분향소 설치과정에서 영정을 빼앗고, 상을 부순 경찰과 공무원이 꼭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주민대표들을 만난데 이어, 밀양경찰서에서 경찰의 입장을 들었다.
경찰은 이자리에서 통행제한과 관련해 "송전탑 공사장이 산악 8부 능선에 위치해 있어서 주민들의 안전사고를 우려해 평지에서 차단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사 현장 인근에서 한전과 주민간 충돌 우려가 있고, 공사 진행 방해 등의 불법 행위가 우려돼 통행을 제한하고 있지만, 일상적 용무는 통행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현장 조사를 토대로 오는 10일 전체 회의를 열어 인권침해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인권위는 심의 결과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고 시정 조치 등을 권고할 방침이다.
김영혜 인권위 상임위원은 "주민들의 말을 잘 듣고 전달해 제대로 심의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