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5명이 숨지고 만 명이 넘는 주민이 치료를 받았던 구미 불산 사고. 유독성의 불산은 화학성분인 산의 일종으로 침투력이 강해 피부에 묻으면 심한 화상을 일으킬 수 있고 공기 중에 노출돼도 위험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불산이 충남 금산의 한 농촌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금산 청정 마을의 한 공장에서 누출된 불산이 농촌마을 하천으로 흘러든 것인데 불안한 주민들은 공장 이전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전CBS는 금산 마을을 뒤덮고 있는 불산 공포 사태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①충남 금산 청정 마을...불산 누출 '발칵'
②깻잎도 미나리 농사도...건강도 위협③갑자기 불산공장으로 바뀌었는데...손 놓은 금산군(?)
"농사를 지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불산 누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에서 20년째 깻잎 농사를 짓고 있는 황규전(60) 씨. 황 씨의 밭은 불소가 검출된 조정천 인근에 바로 위치하고 있다.
깻잎으로 먹고 사는 황 씨로서는 이번 불산 누출 사태가 심각하기만 하다.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불산 공포에 물도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불소가 검출된 조정천은 물론 지하수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인근 물을 길어 농사를 지은 지 벌써 수개월째.
황 씨는 “물고기가 죽어 나간 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느냐”며 “하우스에 나올 때마다 마음이 상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조정리 깻잎 작목반 집하장에서 만난 최진성(63) 씨도 조정리에서 16년째 깻잎 농사를 짓고 있다.
이번 불산 사태와 관련해 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 씨는 무엇보다 무농약으로 생산되는 금산 추부깻잎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이 가장 걱정이다.
추부깻잎은 시설 재배로 사계절 내내 출하된다. 친환경, 무농약 재배로 전국적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최 씨는 "추부깻잎이 불소가 검출된 물과 토양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정리에서만 70여 가구가 깻잎 농사를 짓고 있고 군북면에서 250여 농가가 깻잎 농사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금산 전체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게 최 씨의 주장.
최 씨는 "이곳에는 깻잎이 생활의 전부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건강도 걱정이지만, 깻잎의 명성에 손상이 가는 것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불안감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한둘이 아니다.
구미 불산 사고 당시 환경부가 피해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민건강 영향 조사에서 인근 주민 300여 명은 주요 증상과 함께 사건 충격으로 인한 불안 증상을 호소했다.
조정리 인근 주민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조정리에서만 평생을 살아왔다는 최준성(70) 씨는 "불산이 나온 업체가 인근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잠재적 불안감과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적잖다.
이정애(59·여) 씨는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고 드러난 건강상 피해가 없을지 모르지만, 누출이 계속되고 축적되다 보면 당연히 건강에 이상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그게 더 무섭다"고 토로했다.
오복순(80·여) 씨도 "생명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는데 물에 독성물질이 흘러들었다는 것은 주민들로서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라며 "지금은 괜찮을 거라고들 하지만 구미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전문가들도 장시간 이뤄진 불산 누출에 우려감을 표시했다.
을지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불산이 사람에게 노출되는 경로가 액체나 토양을 통해 흡수됐을 때 기체보다는 완만하게 일어나는 데 일단은 노출 경로에 따른 앞으로 일어날 문제점 등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며 "분명한 것은 불소 노출 자체가 당장에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장기간 오랫동안 노출됐을 경우 주민 건강을 의심할 부분은 분명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불산 노출이 장기화 됐을 경우 주민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집단 공포심리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충분하다"며 "위험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피해 나갈 방법도 있기 때문에 관계기관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