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정부가 관련 개정안을 대폭 수정했다.
원격의료만 전담하는 병원의 출현을 막기 위해 형사처벌 조항을 추가했으며, 주기적인 대면 진료를 의무화시키는 등 각종 제한 조치를 강화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본질적인 문제점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 원격의료 전문기관 진출 차단, 주기적 대면진료 의무화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29일 입법예고한 원격의료 도입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수정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앞서 새누리당 소속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과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당정협의를 한 결과 각종 제한 조치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원격의료만 전문으로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대면진료 없이 원격의료만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이를 위반시 형사벌칙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원격의료가 대면진료의 보완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주기적인 대면진료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밖에 원격 진단·처방이 가능한 질환을 의원급에서 자주 진료하는 경증 질환(감기 등 52개 질환 중 의학적 위험성이 낮은 범위)으로 한정했다.
노인·장애인의 경우 원격 진단·처방시 사전에 대면진료를 통하여 건강상태를 잘 아는 환자로 한정하기로 했다.
수술 후 관리가 필요한 재택환자의 범위도 "질병상태의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서 "신체에 부착된 의료기기의 작동상태 점검 또는 욕창관찰 등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로 제한해 규정하기로 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했다.
원격의료 대상 환자로는 ▲혈압, 혈당 수치가 안정적인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및 상당기간 진료를 계속 받고 있는 정신질환자, ▲입원수술 치료 후 추적관찰이 필요한 재택환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도서·벽지 주민 ▲군, 교도소 등 의료접근이 어려운 특수지역 사람들 ▲병의원 방문이 어려운 가정폭력 및 성폭력 피해자 등이 해당된다.
◈ 투쟁강도 높이는 의료계 "수정안은 땜질식 처방, 전면 백지화해야"이처럼 원격의료법안이 원안보다 대폭 축소한 것은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원격의료의 도입이 대면진료의 기본 원칙을 무너뜨리고, 대형병원의 쏠림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산업 부처의 압력과 대기업의 로비에 밀려 법안이 졸속으로 마련됐다며 전문가 단체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안 통과를 강행하면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히는 등 투쟁 모드로 돌입한 상태이다.
의사협회뿐 아니라 대한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6개 보건의료단체가 결속해서 원격의료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보건의료단체는 현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 원격의료 추진 등을 통해 의료 상업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의협은 이번 당정 수정안에 대해서도 "실효성이 없다"며 비판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원격의료 관련 당정 수정안이 실효성이 없는 땜질식 수정안이다"며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정부가 꼼수를 시도한다"고 비판했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원격의료 법안은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올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다고 하는데 정부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의사들의 대정부 투쟁의 강도는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협은 오는 15일 여의도에서 2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국의사대회'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이번 원격의료 도입 논란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