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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하동군수 조유행 "나는 10급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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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아닌 주민으로 살 것…김혁규 전 지사가 가장 지방자치에 맞는 도지사"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지방선거에서 3번 내리 당선된 조유행(67) 하동군수가 "앞으로는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주민으로 살겠다"고 밝혔다.

조 군수는 22일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과 가진 인터뷰에서 "역대 도지사 중 김혁규 전 지사가 가장 지방자치에 적합한 도지사였다"고 회고했다.

47년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자신을 "하동군의 유일한 10급 공무원이었다"고 말하는 조유행 하동군수를 만나본다.

경남CBS <시사포커스 경남="">(제작 손성경 PD) 대담

■ 방송 : FM 106.9MH (17:05~17:30)
■ 진행 : 경남CBS 김효영 보도팀장 (이하 김)
■ 대담 : 조유행 하동군수 (이하 조)

김> 처음 군수로 당선되신게 2002년이죠?

조> 그렇습니다.

김> 내리 3선을 하시며, 12년간 하동군을 이끄셨는데, 감회가 어떠세요?

조> 요즘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민선 3기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이후로도 두 번의 선거를 더 치르고 이제 남은 임기 7개월여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픔도 많았습니다. 사랑하는 직원을 먼저 보내기도 하고, 수재로 군민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민과 함께 합심해서 이룬 것도 많습니다. 그 빛나는 일들을 생각하면 보람과 긍지로 가슴이 벅차기도 합니다.

김> 군수 전에는 평범한 공무원이셨죠?

조>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해서 출근한 첫 날이 1967년 5월 15일입니다. 고향인 횡천면에서 ‘논두렁 면서기’ 부터 시작해서 1974년, 제2회 경남도청 전입고사를 통해 도청에 근무하면서 기획관리실, 내무과, 지방과를 근무하고, 82년 고성군 문화공보실장, 85년부터 97년까지 다시 도청에서 근무하면서 사무관과 서기관 승진을 했고, 97년 산청부군수 98년 진해부시장 그리고 99년부터 2002년까지 민선3기 군수가 되기까지 하동부군수로 35년 동안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3선 군수로 12년을 더하면 47년, 반세기 가까운 세월 공직에 몸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그렇게 평탄하게 공무원생활을 하시다가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조>하동군수를 한번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라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은, 98년 진해부시장으로 근무할 때 당시 김병로 진해시장님의 영향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가 민선이 갓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민선 시장은 현안 과제와 중점 사업을 추진하는 데 매진하고, 행정조직의 일반적인 관리는 부시장이 맡아야 한다는 게 김 시장의 시정운영방침이었습니다. 실은 이것이 지방자치시대의 민선 시장과 임명직 부시장의 이상적인 역할분담론인 셈인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치단체의 특성과 자치단체장의 업무스타일에 따라 부자치단체장의 역할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김 시장은 시청 내 일반적인 관리업무를 전적으로 나에게 맡겼는데 심지어 월례회 조회까지 한 두 차례 내게 맡겼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 경우였는데. 나 역시도 현재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회는 부군수에게 맡기기 않고 직접 주재하고 있습니다.

김 시장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과거의 임명직 시장·군수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임명직 시장·군수는 임기가 1~2년에 불과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판을 펼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주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정책역량을 발휘해서 현안 문제를 해결하거나 긴 호흡의 전망을 갖고 시·군의 근본적인 발전을 위한 사업계획을 수립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방자치시대의 자치단체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상당했습니다. 고향의 현재와 미래를 디자인 할 수 있었고, 내가 공무원으로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고향을 책임지고 발전의 궤도에 올려놓고 싶었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도 마음도 하동으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1997년 갈사만에 현대제철을 유치하려던 게 실패로 끝나면서 고향 땅에서 실망의 한숨 소리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으면 속이 쓰렸고. 고향은 다시 희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는데 이제 그 일을 내가 나서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해시에 부임하기 전만 해도 고향으로 가서 군수로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출마는 정치의 영역이라고 여겼고. 정치는 내가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이 아니다고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나를 응원해 주셨고. 공직생활의 마지막 열정을 내 고향에 바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김> 출마 당시 초심은 무엇이었습니까?

조> 2002년부터 지금까지, 하동군수로 살고 있으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조그만 기초자치단체인 하동은 자연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지리산과 섬진강입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진귀한 보물을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하동군수에게 있고, 그게 바로 나의 초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우리 하동은 새로운 부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현재의 하동군민이 더 나은 생활을 하고, 미래의 군민에게 안락한 삶을 물려주기 위해, 또 유산을 잘 지키기 위해서라도 ‘플러스알파’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남해바다라고 판단했고, 산과 강을 품은 하동이 바다를 열면 남해안 중심도시로 성장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게 나의 신념이었습니다.

김> 살다보면, 초심이란게 흔들리게 마련인데, 군수님은 어떠세요?
제가 재임하는 동안 추진했던 사업은 크게 두 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동이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시작한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하동지구 개발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과 농림수산업이나 문화관광 등 기존에 하동이 갖고 있던 강점들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들이라고 할수 있는데, 12년 동안 그 축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매진해왔다고 자부합니다.

김> 지난 12년간 군수로서 하신 일들, 기억나시는대로 쭉 한번 말씀해 보세요.

조> 7년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한 부자농촌 만들기 프로젝트인 ‘천부농만부촌’ 사업을 비롯해 대한민국 최우수축제로 우뚝 선 야생차문화축제, 문학수도, 명품교육도시, 건강도시, 청렴도평가 5년 연속 우수기관, 국제슬로시티 지정 등 하동군이 대내외적으로 대한민국 명품자치단체로 자리매김하게된 굵직한 정책들이라 손 꼽을 수 있습니다.

김>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요?

조>가장 힘이 들었지만 가장 보람된 것은 경제자유구역에 착상을 해서 첨단해양플랜트산업이라는 미래의 성장동력을 하동에 선사하기까지, 길고 험한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도중에 주저앉지 않은 내가 스스로 대견하기만 합니다.

하동은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하동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 바다에서 금광을 캐자라는
나의 신념이 이제 서서히 결과물로 청사진을 그려지게 되어 무엇보다도 기쁘고 보람됩니다.

그리고 요즘도 틈만 나면 갈사만으로 갑니다. 갈사만조선산업단지 건설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보고 또 봐도 언제나 흐뭇합니다.

김> 가장 아쉬운 일은?

조> 공직생활 47년 중에 가장 아쉬운 일이라면, 가족에게 따뜻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가 됩니다. 그저 앞만 보고 살아오다보니 아내에게도 자녀들에게도 늘 소홀하게 대하였던 게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특히,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준 아내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김> 12년 군수생활동안 가장 힘이 된 분은?

조> 오로지 군민들입니다. 군민은 내 공직생활의 팔 할 입니다. 좌절되고 아플때마다나를 지탱해준 힘입니다. 군수를 믿고 따라주고 격려해준 군민들의 힘이 없었다면 3선 군수로 12년 동안 군민과 함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 12년동안 거쳐간 도지사가 누구 누구죠?

조>김혁규지사 그리고 김태호, 김두관지사, 지금 홍준표 지사님까지

김>그 중에서 최고의 도지사를 꼽으신다면?

죄>문민정부의 ‘세계화 전도사’라는 김혁규 도지사가 1993년 취임하면서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김 지사는 전국 최초로 행정에 기업경영 마인드를 도입하고 ‘주식회사 경남’의 ‘사장’을 자임했습니다.

국정과 도정의 목표를 실현하는 첨병인 공무원도 변해야 했고, 김 지사의 ‘기업경영식 도정마인드’는 경남 농업의 판도를 바꾸려 하고 있었습니다.

소농으로는 세계화와 개방화의 파고를 넘을 수 없으니 전문성 확보와 대형화 등으로 농업의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게 농정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김 지사가 자주 했던 말씀 중에 “농업도 제조업처럼 공장을 지어서 그 안에서 농산물을
생산하고 수출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수출농업단지를 조성했고. 공무원이 세일즈맨처럼 농산물을 팔러 다녔습니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다 훌륭한 분들이셨지만 역대 지사님 중에 가장 지방자치시대에 맞는 도지사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정부와 자치단체, 그리고 도청과 일선시군과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 저마다의 역할분담이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유기적인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기지역, 자기권역에만 힘을 더하기 보다는 상생을 통한 더 큰 미래를 그리고, 더 큰 가치를 위해 함께 힘을 모운다면 더 큰 대한민국을 이루어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이제 3선 제한 때문에 내년 선거에는 못 나오시는데, 앞으로도 정치인 조유행으로 계속 남으실 건가요?

조> '정치인 조유행' 보다는 '행복한 조유행'으로 남고 싶습니다. 열정 많았던 군수로 오래 기억되면서, 주민의 한사람으로 돌아가 군민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봉사도 하면서 행복한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김> 벌써부터, 차기 군수 출마예정자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군수가 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조> 군민과 군정에 대한 진정어린 열정이 있는 분이라면 군민의 선택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다음 군수에게 “이것만은 꼭 이뤄달라”고 당부하실 것이 있다면?

조> 당부보다는 군민과 군정을 생각하며, 100년을 내다보는 미래 하동을 구상하신다면 무엇을 이룰 것인지 그 속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책이 곧 나온다고요? 어떤 책입니까?

조> 졸저 <산은 강을="" 품고,="" 강은="" 바다를="" 연다="">는 하동군민 여러분께 올리는 지난 12년간의 보고서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동을 이끌어갈 후배들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합니다.

민선 3~5기까지 고군분투했던 하동군정 이야기를 토대로 내가 후배들에게 타산지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사만조선산업단지 조성이든 녹차산업 육성이든 그동안 내가 추진했던 사업을 시시콜콜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 책은 나의 형제, 친구, 동료, 지인, 아내와 아이들에게 바치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하동군민 여러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지만, 나를 모르는 전국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느라 개인사도 일부 실었습니다. 이 책에는 부모형제, 친구, 동료, 지인,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도움을 주었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 군수 자리에서 물러나는 즈음해서 후대에 또 군민에게 그동안 내가 꾸렸던 사업들의 경과 과정과 결과를 보고한다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니라, 이제부터 하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지난 12년 동안의 군정을 통해 온고지신의 지혜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내 나름으로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마지막으로 불쏘시개까지 되자는 심정으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김> 책 소제목 중에 “나는 하동군민이 뽑은 단 한명의 10급 공무원” 이란 제목이 보이는데, 어떤 뜻이죠?

조> 밖에서는 자치단체장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에 ‘제왕적 단체장’ 운운 하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고, 단체장이 권위에 맛을 들이면 걷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군수가 부하직원을 함부로 대하고 도청 주무관이라고 얕잡아 보면, 골탕을 먹는 사람은 바로 군민입니다. 예산 따고 군에서 계획한 대형 사업의 승인을 얻으려면 도청이나 중앙부처 주무관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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