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과학수사는 65년 만에 손바닥 지문과 걸음걸이 등을 범죄 수사에 활용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사진=경찰청 제공)
#1. 지난 4월 부산의 한 편의점에서 강도사건이 일어났다.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대에 편의점에 들어간 용의자는 여종업원을 때린 뒤 5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유일한 단서인 편의점 CCTV에 찍힌 영상에서는 ‘20~30대 남성’이라는 사실만 확인됐다. 수사는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한 달 만에 같은 동네에서 편의점 절도사건이 다시 터졌다. 용의자 김모(19) 군을 검거한 경찰은 앞선 사건도 그의 소행으로 봤다. 김 씨는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편의점 문을 밀치고 나가면서 찍힌 장문(掌紋), 즉 손바닥 지문 손바닥 지문을 토대로 김 씨를 구속했다.
#2.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집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경찰은 중대한 보안사건으로 판단,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집 주변과 시내버스의 CCTV 영상 등을 통해 회사원 임모(36) 씨를 검거했다. 그러나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임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오른쪽 무릎이 약간 바깥쪽으로 휘어져 걷는’ 임 씨의 걸음걸이에 착안했다. 마침 한국을 방문 중이던 영국의 법의학 전문가는 영상 분석을 거쳐 집 근처 CCTV에 찍힌 남성이 임 씨로 보인다는 소견서를 써줬다. 법원은 결국 임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진=경찰청 제공)
단순한 현장 감식과 지문 감정에서 시작된 한국 경찰의 과학수사는 이처럼 장문 분석과 걸음걸이 분석으로 용의자를 검거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4일로 65년째를 맞은 ‘과학수사의 날’은 지난 1948년 11월 4일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처음으로 ‘감식과’가 설치된 날짜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1955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됐고, 63년에는 시·도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됐다. 지문 감정 외에도 족흔적 감식, 몽타주 수배, 거짓말탐지기 등 근대적 과학수사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60년대였다.
그리고 1999년 지문계와 감식계를 통합한 ‘과학수사과’의 신설로 ‘과학수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이는 현재의 ‘과학수사센터’로 이어지며 과학수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는 조직체계를 구축했다. 한국의 과학수사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범죄관련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은 지문과 유전자(DNA) 증거이다. 경찰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몇 년 사이 △섬유, 페인트 등 범죄현장의 매우 작은 증거를 찾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위치와 크기 등을 토대로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등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