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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가져야 할 일ㆍ가족 양립 철학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ㆍ가정 양립의 필요성엔 공감한다. 하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필요한 '재원'에 대해선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각종 분석자료는 일ㆍ가정 양립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ㆍ가정 양립을 위한 재원은 '비용'이 아니라 '재투자'라는 것이다.

중소업체 세영기업은 철鐵을 다룬다. 포스코가 스테인리스강 혹은 탄소강을 생산할 때 조업을 지원한다. 말하자면 포스코의 협력업체다. 철을 다루는 회사인 만큼 분위기가 딱딱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되레 밝고 경쾌하다. 이유가 있다. 가족친화경영을 펼치고 있어서다. 세영기업은 2011년부터 '집약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4일간 하루 12시간씩 일한 뒤 3일을 내리 쉰다. 한달에 절반쯤은 휴식하는 셈이지만 급여는 전과 똑같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수시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회사는 포스코의 휴양시설이나 자사가 보유한 콘도를 저렴하게 빌릴 수 있는 혜택까지 준다. 아이를 낳으면 수에 따라 육아비용으로 100만~500만원을 지원한다. 국가가 지급하는 것과는 별개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출산ㆍ생리휴가는 기본. 이밖에 다양한 자체 복리후생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60여명의 임직원을 둔 세영기업이 이 모든 복지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 소요하는 재원은 연간 2억여원. 한해 매출이 138억원(2012년 기준)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그러나 세영기업은 이를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직원의 사기를 북돋워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투자'로 여긴다. 세영기업의 올해 예상 매출은 153억원. 철강업계가 제아무리 불황이라지만 이 회사의 성장률 전망치는 전년비 10%에 달한다.

요즘 구직자들은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몸이 부서져라 일만 시키는 기업은 선호하지 않는다. 세영기업처럼 회사와 가정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된 기업을 원한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어야 '좋은 회사'라는 얘기다.

정부도 '일ㆍ가정 양립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법'에 근거해 여성노동자의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고 출산휴가를 보장했다. '출산육아기 고용안정 지원금(종전 임신ㆍ출산 여성 고용안정 지원금)' 제도처럼 육아휴직자와 육아휴직을 인정해주는 사업자에게 각각 별도의 금전적 혜택을 주는 제도도 만들었다.

보건복지부는 가족친화정책을 표방하며 일ㆍ가정 양립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와 아이돌봄 서비스, 공동육아나눔터 사업 등 여성인력의 경력단절을 막는 정책을 내놨다. 각 부처의 일ㆍ가정 양립정책은 범정부 차원에서 뒷받침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임신기간 중 여성노동자 근무시간 단축제''배우자 출산휴가제도' 등을 도입해 일ㆍ가정 양립 정책을 보완했다.

기업, 머리로만 일ㆍ가정 양립 찬성

문제는 일ㆍ가정 양립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참여가 절실한데 강 건너 불구경하는 곳이 많다. 올해 4월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일ㆍ가정 양립에 대한 기업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기업 대부분이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적극 실천하겠다는 의지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5인 이상 사업체 1000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인식조사에서 응답기업의 90% 이상이 '우수인력 확보와 유지'를 위해 일ㆍ가정 양립 제도를 적극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장 필요한 제도로는 '출산전후휴가와 배우자 출산휴가(96.4%)를 꼽았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92.4%), 육아휴직(91.3%), 가족돌봄휴직(91.0%), 유연근무제도(78.1%)가 뒤를 이었다. 반면 기업들은 일ㆍ가정 양립 제도가 노동자 복지, 기업 이미지 제고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인력공백(46.5%), 급여지급ㆍ대체인력 채용에 따른 비용증가(30.9%) 등의 이유로 시행하기엔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세영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이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일ㆍ가정 양립지원이 실적증가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가족친화제도 확산을 위한 기업성과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가족친화 경영지수가 1단위 증가하면 1인당 매출액은 약 0.4% 늘어나고, 노동자의 이직률은 0.23% 감소했다. 특히 2000~2010년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은 곳과 일반기업의 영업이익률을 비교한 결과, 가족친화기업은 9.32%에서 22.45%로 늘었다. 그러나 일반기업은 7.20%에서 17.67% 증가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가족친화기업이 511.23%에서 88.29%로 크게 줄어든 반면 일반기업은 323.94%에서 161.38% 감소하는 데 그쳤다.

가족친화제도를 통한 일ㆍ가정 양립지원은 지출이 아닌 투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일ㆍ가정 양립시스템을 악용하는 기업은 비일비재하다. 유연근무제를 경력과 무관한 파트타임 일자리를 늘리는 데 사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한편에서 기업들이 생각을 바꿔야 '일ㆍ가정 양립문화'가 정착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승아 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센터장은 "일ㆍ가정 양립을 가능하게 할만한 정책이 많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ㆍ가정 양립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ㆍ가정 양립이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 활력 불어넣는 유연근무제

홍승아 센터장은 "유연근무제는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일ㆍ가정 양립이 가능한 여성 일자리 대부분은 서비스업이다. 출산을 한 거의 모든 여성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는 일자리를 원해서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머무는 시간에 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식당과 같은 서비스업종뿐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자신의 경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되고, 경력은 단절된다. 고급 여성인력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유연근무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면 일ㆍ가정 양립을 통한 이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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