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을 개정했더니 기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됐다. 한편에선 세법개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선 기부를 덜 하면 될 것 말이 옳을까. 우리의 '빈곤층'을 보면 답이 나온다. 아니냐고 따진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세법개정안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쉽게 표현한 것이다. 누구 말이 옳을까. 우리의 '빈곤층'을 보면 답이 나온다.
#[묘한 질문1] 최근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변경하기로 한 세법개정 때문에 '기부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기존 소득공제시스템에선 기부금의 종류와 액수에 따라 총 소득액의 최대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개정된 세액공제시스템에선 내야 할 총 세금의 15%만 감면해준다. 공제액이 줄어든 것이다.
더구나 올해 1월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은 지정기부금의 소득공제한도를 소득의 30%에서 최대 2500만원으로 대폭 줄여, 기부자들의 부담이 한층 커졌다. 두 법 때문에 같은 금액의 기부를 해도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부자들이 맘 편히 기부할 수 있도록 기존 방식을 고수해야 할까.
# [묘한 질문2] 한편에서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 것은 고액연봉자와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된 기부자들이 세금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기부금을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목청을 높인다. 그렇다면 기부금이 줄어드는 걸 감수하고 바뀐 방식을 고집해야 할까.
답은 둘 다 '아니오'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번 논란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정작 핵심에선 빠져 있는 이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바로 빈곤층이다. 세법을 통해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걷는 것도, 기부단체들이 기부금을 걷는 것도 이유는 한가지다. 사회 빈곤층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생태계를 가꾸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간의 관심이 '세법개정 때문에 기부금이 줄어든다' '그럼 기부를 덜 하면 될 것 아니냐'에 쏠리니 솔루션이 나오지 않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부와 세제혜택의 상관관계는 약하다. 일반 기부자나 종교ㆍ자선단체가 기부하는 동기는 '세제혜택' 때문만은 아니다. 아름다운재단이 2009년 10억~500억원 미만의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기부를 자극하는 동기는 '사회적 책임' '사회 환원' '가족 전통 문화' '종교적 신념' '특정 명분이나 사회이슈에 대한 공감' '경제적 여유' 순으로 나타났다.
◈기부 동기와 세제혜택은 무관
세제혜택이 동기라고 답한 이들은 극히 일부뿐이었다. 일반 기부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대동소이했다. '대중매체의 자극(59.5%)' '가족 전통 문화(48.5)' '경제적 여유(45.3%)' '다른 기부자에 의한 자극(40.8%)'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세제혜택이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률은 13.6%에 불과했다. 미국의 금융기업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지난해 내놓은 연구보고서의 결과도 비슷하다.
보고서에는 "기부자들 중 3분의 1이 세제혜택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50%에 가까운 이들은 부동산 세제혜택 같은 것들이 없어지더라도 자신들의 기부활동에는 변함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대부분의 기부자는 세제혜택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비케이 안(Bekay Ahn) 한국기부문화연구소 소장은 "선진국 사례들을 보면 세제혜택은 기부활동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기부자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기 때문에 경제 외적인 것에서 동기를 찾는 이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세제혜택이 기부를 결정하는 절대적 변수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제혜택이 줄면 기부금이 감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세제혜택 때문에, 또는 세제혜택을 노리고 기부를 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서다. 이 때문에 세법개정으로 어쩔 수 없이 줄어든 기부금을 어떻게 보충하느냐를 따져보는 게 급선무다. 이 논쟁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 기부금이 감소하면 그 수혜자인 빈곤층이 어려운 지경에 빠질 수밖에 없어서다.
정현경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지원실장은 "각종 통계를 토대로 조사해본 결과, 개정 세법을 적용할 때 전체 기부금이 1조2571억원 줄어드는 동안 세수는 고작 730억원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럴 바에는 기부단체들이 기부금 더 걷을 수 있고, 역할을 더 늘리는 게 빈곤층에게는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종교 또는 자선단체들에만 맡겨 놓긴 어렵다. 경기에 따라 기부금의 규모가 달라지게 마련이라서다. 최근 몇년간 한국인의 기부 참여율 변화 추이(아름다운재단)를 보면 2003년(0.68%)부터 2005년(0.78%)까지 증가하던 기부참여율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7년부터 뚝 떨어져 2009년까지 0.55%를 이어갔다. 중교ㆍ자선단체가 제아무리 힘을 써도 모자란 기부금을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가 줄어든 기부금을 메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법을 개정했으면 이 정도는 대비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전문가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중 '현행 4단계로 분류된 과세 단계를 세분화하고 고소득자의 과세율을 높여 충분한 복지비용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가장 많다.
◈기부도 줄고, 세수도 줄면 최악
정현경 실장은 "기부금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종전의 소득공제로 전환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는 정부가 미덥지 못해서다"라며 "고소득자일수록 많은 세금을 매길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세수확보도 안 되는 상황에서 기부금까지 줄어들게 만든다면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부금을 놔두고 복지를 포기하든지, 기부금을 건드리더라도 부자증세를 통해 제대로 된 복지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거다.
기부금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전보다 공정해진 세법을 다시 되돌려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번에 개정된 세법에는 탈세나 절세를 노리고 기부금 제도를 활용하는 얌체 납세자를 잡는 순기능도 있다. 그렇다고 '세금 내기 아까우면 기부금을 줄이면 되지 않는가'라는 발상도 시대착오적이다. 기부금을 줄이면 빈곤층이 기댈 언덕이 낮아지고, 사회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아직도 주장하는 박근혜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