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떨했습니다. 그만한 자격과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 의구심도 들었고요. 제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선·후배님들 그리고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용기와 격려해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난 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 '2013년도 대한민국 명장' 23인이 발표됐다. '기술이 뛰어나 이름난 장인'을 뜻하는 명장(名匠). 기술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다.
특히 이날 명장에 이름을 올린 23인 중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으니 올해 나이 42세, '올해 최연소 명장' 영예를 안은 현대중공업 조선품질경영부의 진윤근 기원(현장의 중간관리직)이 그 주인공이다. 선박 자동용접 장치 분야에서 넘버원 자리에 오른 진 명장은 연신 자신을 적극 지원해준 주위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몸을 낮췄다.
■ 24년 외길, '조선업'과의 인연
경북 산청군 사천면에서 2남 6녀 중 막내로 태어난 진 명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윤근의 유일한 돌파구는 달리기였다. 도 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각종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휩쓸만큼 뛰어난 운동실력을 갖췄던 윤근에게 체육 특기생으로 체고에 입학할 기회도 주어졌다.
하지만 이마저 윤근에게는 사치였다. 결국 윤근은 꿈을 접고 체고가 아닌 특성화 고교에 입학하게 됐다. 공고를 나와 자격증을 취득해 취업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당시 풍토 때문이었다. 탈선을 일삼는 또래들 사이에서 윤근은 그저 묵묵히 학업에 정진했고 기능훈련소에 들어가 착실하게 기술을 연마했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다져온 윤근은 1989년,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기능올림픽에 출전했고 이를 계기로 현대중공업에 특채로 입사하게 됐다. 비록 기능올림픽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어린 윤근은 생각했다. "저 큰 배를 내 손으로 꼭 만들어 바다에 띄우겠다"고.
입사 무렵 송아지 판 돈 5만 원을 손에 꼭 쥐어주시며 "항상 최선을 다하고 기능을 배워 최고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며 윤근은 지난 24년동안 조선업 외길을 걸으며 촌놈의 뚝심을 보여줬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이었을까. 윤근을 유혹하는 검은 그림자들도 만만찮았다. 고향과 가까운 곳에 일터가 있는 경쟁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던 것. 하지만 부모님과 가까이서 생활하면 나약해지고 나태해질 것 같았던 윤근은 굳게 마음을 다잡고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현장에서 선박 건조 용접을 배우기까지 청소만 3년간 했다는 진 명장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하는 협소한 선박 블록 속에서 좌절도 여러 번 맛봤다. 하지만 유혹과 절망의 순간이 많았던 만큼 기회도 많았다.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낸 덕택에 이른 나이에 철이 든 진 명장은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울산과학대학교 기계과(야간)에 입학했고 선박 건조 용접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입학한지 꼭 18년만에 석사학위 까지 취득한 진 명장은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가
까이에서 늘 함께 일하는 선배들을 보며 자극을 받은 진 명장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지난 2008년부터는 중소기업과 지역 특성화 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져 기쁘죠. 내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바르고 쉬운 길로 갈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쁜일도 없을 거예요"라며 '교사'로서 자신의 기술을 전파하는 위치에 있지만 어린 멘티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멘티들로부터 열정과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얻어간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나를 지탱해주는 힘 '가족'"무엇보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습니다." 명장에 선정된 것 이외에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달라고 묻자 '입사해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라고 답한 진 명장은 인터뷰 내내 가족 얘기가 나올때면 연신 미소를 머금고 아내자랑에 여념이 없는 '아내 바보'의 모습을 보였다.
15년 전, 현대중공업 설계연구소에 근무하는 아내에게 첫 눈에 반한 진 명장은 지난 1999년 MBC 예능프로그램('일상탈출 야호')의 도움을 얻어 가슴 깊이 간직해왔던 아내를 향한 마음을 고스란히 전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제 와이프가 된거죠 뭐. 하하."
그렇게 아내와 결혼에 골인한 진 명장은 항상 오토바이로 아내와 함께 출퇴근하며 서로 힘든 회사 생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업무 보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그럼 종종 문자가 옵니다. 그러면 저는 간식거리를 사들고 아내 팀을 찾죠. 2만 원으로 아내 기도 살려주고 저는 아내 얼굴보고 힘도 얻고. 아 일석이조 아닙니까."
하지만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교육봉사까지 밤낮없이 활동하다보면 가정에 어느 정도 소홀해질수 밖에 없는 진 명장은 스스로를 '마이너스 10점짜리 남편이자 아빠'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요즘 부쩍 "아빠처럼 배 만드는 사람이 될래", "아빠처럼 훌륭한 명장이 될래"라고 말하는 막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블루칼라 직업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길을 제가 직접 겪어 봤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아는 거죠. 부모로서 내 자식이 편한 길, 나보다 좀 더 나은 길을 걷길 바라는 겁니다. 부모들의 마음이 다 똑같지 않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해주는 두 아들 덕에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의 기대에, 그리고 회사의 성장에 좀 더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되고자 올해 말부터는 다음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준비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 최종 목표? 세계적인 명장이 돼 제2·3의 진윤근 육성하는 것
현대중공업은 지금까지 모두 27명의 대한민국 명장(재직자 17명·퇴직자 10명)을 배출해 업계 최다 명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내부에서의 기술경쟁이 치열하다는 방증이다. 진 명장도 특허 3건과 실용신안 1건을 등록하고, 중소기업 기술이전 1건 등 모두 13건의 지식재산권을 출원했다.
명장 타이틀을 따게 됐으니 월급이 올랐냐는 질문에 진 명장은 "돈요? 물론 어느 정도 오르지요. 진급(현대중공업 현장 기술직은 '기사-기원-기감-기정' 순서로 진급함)도 분명 혜택을 보겠지요. 하지만 제 목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정년퇴임 후에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훈련소를 설립해 제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어요. 그게 제 꿈입니다"라며 "벌써 뜻을 함께 하기로 한 분을 만났어요. 그 분과 의기투합해서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중에 있죠. 제 꿈은 'ing, 현재진행형'입니다. 여러분도 지켜봐주세요"라며 다시 안전모를 챙겨 현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