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성장해왔다. 그러나 부과체계에 대한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부과체계가 직장-지역으로 이분화 돼 수익이 안정적인 직장인들에 비해 영세 자영업자나 무직자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는 소득 역진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허술한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CBS는 현재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주]
약국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와 보험공단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에 '국민공단 인터넷서비스 중단 비상전화 안내'가 공지되어 있다. (자료사진/노컷뉴스)
"실직했는데 건강보험료가 예전보다 두 배 오르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이해한다고만 하지 말고 설명을 해보세요 설명을....."
"중고차 한 대 샀다고 보험료가 왜 이렇게 오른 겁니까. 진짜 X같네. 야 이 XX들아 나를 뭘로 알고...."
"혼자 사는 노인네가 돈이 어딨어. 노령연금받아서 보험료 내는 판이야. 좀 깎아주소"
서울 마포구 건강보험공단 본부 콜센터에는 411명의 직원들이 빼곡히 들어찬 칸막이 책상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없이 울리는 민원 전화를 받고 있다. 민원의 대부분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한 불만이다. 수화기 너머로 고성과 욕설도 난무한다. 건물에 직접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상담 직원들은 두꺼운 책을 넘겨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보지만 실상 자신들도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고 말한다. 4년 넘게 근무한 상담 직원 박영선씨는 "부과체계는 오래 일한 직원들도 제대로 숙지하기 어렵고 헷갈릴 때가 많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워낙 항목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민원인들을 이해시키는 게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건보료 관련 민원 양은 어마어마하다. 최근 2년 사이에 건강보험공단에서는 1억4876만건의 민원이 쇄도했다. 그 중 80% 이상이 보험료와 관련된 것들이다.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도 속 시원한 답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행 부과체계 자체에 불합리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 "9년 된 똥차 샀다고 보험료 올리냐".. 생계형 체납자들의 절규
민원이 많은 것 중 하나가 자동차에 매겨지는 가산점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자동차가 보험료 산출의 주요 기준 중 하나이다. 자동차 배기량과 연식에 따라 7등급 28구간으로 쪼개져 계산된다. 과거 자동차가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7,80년대에 소득파악이 어려워 자동차의 상태로 소득을 추정한 것에서 유례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자동차가 필수품인 지금은 지역가입자들을 두 번 울리는 조항이 됐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에 거주하시는 이모씨는 보험료가 갑자기 올라 공단 지사를 방문해 사정을 알아봤다. 알고보니 얼마전 구입한 9년 된 중고차 때문이었다. 2004년식 1500cc 승용차를 구입하자 자동차 점수 35점에, 차량 가산점수 61점이 증가해 총 1만6000원이 인상된 것이다. 이씨는 "9년 된 똥차 하나 산 것이 생활 수준 향상이냐"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또 "자동차 점수가 올랐는데 차량 가산점수를 또 올린 것은 이중부과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에 사는 차모씨는 건강보험료가 30개월 동안 230만원 밀려 있다. 생계형 일자리에 자동차가 꼭 필요해 중고차를 구매해 사용했지만 월 10만원이 넘는 건보료와 각종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해 폐차를 결심했다. 하지만 건보공단에서 자동차 압류가 들어와 폐차를 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차씨는 "소득은 없는데 자동차가 있다고 보험료를 이렇게 많이 내라고 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이제는 차를 없애지도 못하게 하느냐" 면서 "직장가입자들은 월 2만원 정도만 내는데 없는 사람들한테는 너무 가혹하다. 악순환이다"고 항의했다.
특히 자동차는 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들에게 두 번 계산되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경우 성, 연령, 재산, 자동차에 따라 '생활수준 및 경제활동 참가율'(이하 추정소득) 이라는 점수를 매기고 여기에 재산과 자동차 점수를 또 더한다. 이중부과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이다. 연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는 대부분 실직자, 일용직 등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중고차 한 대에 두 번 점수가 매겨지는 구조를 납득하지 못한다.
연소득 500만원 이하 지역가입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의 추정소득은 성, 연령별로도 점수가 매겨지는데 그 기준이 제각각이다. 자녀가 미성년자인 경우 성별에 관계 없이 1.4점이지만 스무살이 넘으면 남자는 5.7점, 여자는 5.2점으로 뛴다. 그런데 여자는 25살이 되면 4.3점으로 점수가 내려갔다가 30살을 기점으로 다시 5.2점으로 올라간다. 남자는 10년 주기로 여자는 5년 주기로 계산되는 이유가 뭔지, 여자 나이 25~30살에는 왜 점수가 갑자기 내려가지는 공단 직원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복잡한 계산법을 거치고 나면 지역가입자들에게는 무거운 보험료가 떨어진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모(56살)씨는 실직해 소득이 없지만 부인과 자녀 2명, 3억원대 아파트를 가지고 3년된 자동차 1800cc 1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월 18만9050원을 내야 한다. 집 한 채, 자동차 한 대를 가지고 있어도 서울의 경우 평균 18만원이 부과된다.
■ 빚쟁이 이 과장, 건물세 수백 받는 김 과장과 건보료는 동일지역가입자들이 복잡하고 과중한 부과체계에 이중고를 겪는 사이, 직장가입자들은 또다른 형평성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직장가입자에게는 오로지 급여에만 보험료가 붙기 때문에 추가로 금융, 부동산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구조이다. 유리지갑에서만 건보료를 빼가다보니 다른 두툼한 지갑을 가진 고소득자는 웃는 것.
충북 괴산의 모 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는 입사동기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부과체계의 불공평함을 따졌다. "보수는 월 380만원으로 비슷하지만 입사동기 김모씨는 청주에 건물이 두 채나 있어 월세로 매달 5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도 똑같은 보험료를 내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연예인, 스포츠선수나 은퇴한 자산가들이 위장취업으로 월급 100만원 받는 직원으로 이름을 올리면 생계형 비정규직과 똑같은 보험료만 내면 된다. 이자, 건물세 같은 어마어마한 자산소득은 계산이 안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5억대 이상의 재산을 보유하고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건보료는 월 1만3160원만 냈다는 것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알려진 상징적 일화이다.
■ 배보다 배꼽 큰 피부양자제도, 41%가 59% 부양피부양자제도도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직장가입자로 등록된 인구 3413만7천명 중 실제로 돈을 내는 가입자는 1397만3천명(41%)에 불과하다. 59%인 2016만4천명이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다.
재산 9억원, 금융소득 40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 가족 중 누군가 회사에 다니면 피부양자로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소득에 관계 없이 자식들이 직장에 다니냐 안 다니느냐에 따라 노년층에서는 희비가 엇갈린다. 고소득자가 보험료 회피 수단으로 피부양제도를 악용한다는 비판이 일자 올해부터 연금 등 기타 소득이 연 4000만원을 넘는 피부양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처럼 지역가입자 뿐 아니라 직장가입자 간에도 형평성이 맞지 않은 낡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이제는 건강하게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론에 따라 그때그때 수정해 제도가 누더기가 된 만큼 한꺼번에 틀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공진 한양대 교수는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고소득자를 중심으로 그때마다 거센 저항이 일어 제도 개선이 쉽지 않고 사회적 혼란만 가중될 것이다"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뒤 한꺼번에 제도를 고쳐 소득중심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