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이슬람주의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가 집권 1년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군부의 개입으로 결국 권좌에서 쫓겨났다.
과거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011년 거센 `아랍의 봄' 파고에 밀려 물러난 데 이어 무르시 대통령도 정책 실정과 민심 이반으로 실각하면서 이집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치닫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야권과 협의를 거쳐 조만간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무르시 대통령과 집권 무슬림 형제단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여 향후 정국의 불투명성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임시 대통령에 헌재 소장 임명
이집트 군부는 3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을 축출하고 조기에 대통령 선거를 다시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9시께(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무르시가 이집트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게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동안 이집트 국민과 군부의 퇴진 압박에도 사임을 거부해온 무르시는 이에 따라 지난해 6월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약 1년만에 대통령직을 잃게 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지난달 30일 시작해 나흘간 이어진 뒤의 일이다.
엘 시시 장관은 이어 현행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을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고 전했다.
만수르 소장은 4일 임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할 예정이다.
엘 시시 장관은 정치 일정이 담긴 로드맵을 설명하며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다시 치르고 국가 통합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러한 내용의 로드맵은 광범위한 정치 세력의 동의를 받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엘 시시 장관의 발표 회견장에는 범야권 그룹 구국전선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이집트 최고 종교 기관 알 아즈하르의 수장인 아흐메드 알 타이예브 대(大) 이맘, 이집트 콥트교의 교황 타와드로스 2세 등이 참석했다.
엘바라데이는 "군부의 로드맵은 2011년 시민혁명의 연속"이라고 환영의 뜻을 전했다.
◇무르시 "군사 쿠데타" 반발…군부에 구금
엘 시시 장관의 발표 직후 무르시는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선출된 대통령이다. 군의 로드맵 발표는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무르시는 대통령궁 공식 트위터에서도 "군부의 조치는 전적으로 쿠데타의 영역에 속한다"며 "모두들 평화를 지키고 동포들이 피를 흘리지 않도록 힘써달라"고 호소했다.
무르시의 안보 보좌관 에삼 알 하다드도 페이스북에 "이집트가 군사 쿠데타에 직면해 있다"며 "이 시대에 어떠한 군사 쿠데타도 엄청난 유혈 참사 없이 민중의 힘에 맞서 성공할 수 없다"고 적었다.
무르시는 현재 카이로의 공화국수비대 병영 건물에 측근들과 함께 군에 의해 억류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삼 알 하다드의 아들 지하드 알 하다드는 AFP통신에 "무르시가 아버지 등 대통령궁 관계자들과 함께 (군부에 의해) 연금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관영 메나통신은 또 이집트군이 무슬림형제단 자유정의당(FJP) 당수인 무하마드 사드 알 카타니와 라샤드 바유미 무슬림형제단 부의장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또한 현지 일간지 알 아흐람은 이집트 경찰이 무슬림형제단 간부 300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이집트군은 이날 무르시와 그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일부 지도부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를 했다고 A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이집트 공항 당국도 무르시와 무슬림형제단 의장 모함메드 바디에, 부의장 카이라트 알 샤테르에 대해 외국으로 출국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시민들 환호…무르시 찬반 세력 엇갈린 반응
엘 시시 장관의 발표 직후 이집트 전국 곳곳에서는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컸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주변에 운집한 수십만명은 축포를 쏘고 환호를 질렀다.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반정부 시위대는 "신은 위대하다", "이집트여 영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쁨을 표현했고, 카이로 시내 곳곳에서도 시민이 차량 경적을 울리며 군부의 개입을 환영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살라피스트들도 성명을 내고 군부의 로드맵 계획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이로 나스르시티의 무르시 지지 집회 참가자들은 "군부 통치 반대"를 외쳤다.
무르시 집회 참가자 다수는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집회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무르시 찬반 세력이 투석전을 벌이고 있고 총성도 들렸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이집트군 앞서 이날 무르시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카이로 나스르시티와 카이로대 주변과 주요 국가 시설에 군 탱크와 병력을 배치했다.
지난달 30일 이후 반정부 시위대와 무르시 지지세력간의 충돌로 최소 39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앞서 지난 1일 "48시간 내 혼란을 해결하라"고 경고한 군부는 이날 오전에는 "테러리스트와 폭도들에 맞서 피를 흘릴 각오가 돼 있다"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무르시는 군부의 최후통첩 마감 시간인 이날 오후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또다시 피력하며 연립정부 구성과 헌법 개정을 제안했다.
◇서구권 "민간에 권력 이양" 촉구…사우디·UAE 등은 '환영'
미국 등 서구권 국가들은 이집트의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군부가 조속히 민간에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집트군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며 "군이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투명하고 포괄적인 절차를 거쳐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전권을 돌려 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이집트 정부와 군) 모든 편이 자유롭고 공정한 대선·총선과 헌법 승인 등 민주주의적 절차로 신속하게 돌아오기를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아랍권 국가들은 대체로 반응에 신중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시리아 등은 이집트군의 개입을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