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환풍구 붕괴사고'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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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사고로 '바뀐 것'도 있었다

"공연 벌써 시작됐겠다. 서둘러"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오후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일대.

포미닛, 티아라, 체리필터, 트랜스픽션 등 유명 가수들이 총출동할 것으로 예정된 행사장에는 학생에서부터 직장인까지 사람들로 붐볐다.

오후 5시부터 열릴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축제 때문이었다. 메인 공연이 열릴 유스페이스 건물 앞 야외 공연장에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좌석도 공연 시작 전에 이미 만석이 됐다.

오후 5시 30분. 드디어 첫 가수가 무대에 올랐다. 현아가 속한 인기 걸그룹 포미닛이었다. 흰색과 청색으로 의상을 맞춰 입은 다섯 멤버. 포미닛은 사람들의 열띤 호응속에 첫 곡을 불렀다.

"오늘 뭐해? 이따 뭐해? 주말에 뭐해? 랄랄라"

경쾌한 음악과 댄스가 이어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포미닛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무대 근처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무대 좌우측까지 걸어나가 직캠을 찍었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행사가 퇴근 시간과 겹친 탓에 근처를 지나던 직장인들도 하나둘씩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뒤늦게 공연장에 도착한 탓에 무대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마침 공연장 한쪽 끝에 약 1.2m 높이로 솟아오른 지하주차장 환풍구가 있었다. 무대와 거리는 멀었지만 공연장보다 높은 곳에 있어 올라서면 공연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한 명, 두 명.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섰다.

환풍구 덮개는 조금씩 휘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 이슈. 내 모든 것 하나하나 핫이슈"

포미닛은 네 번째 곡이자 공연 마지막 곡으로 자신들의 히트곡인 핫이슈를 불렀다. 사람들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따라불렀다.

바로 그때.

"쿵"

2014년 10월 17일 오후 사고 발생 직후 현장 모습. 사진= 황진환 기자

 


오후 5시 53분. 한쪽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 20여 명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환풍구 위에서 공연을 지켜보던 이들이었다. 환풍구 덮개를 받치고 있던 구조물이 사람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부서지자 사람들은 소리 지를 겨를조차 없이 환풍구 아래로 추락했다.

환풍구 주변은 아수라장이 됐다. 환풍구 깊숙한 곳에서는 울부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까마득한 아래에는 어둠만 가득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지만 주위에서만 심각성을 알 뿐 사고 현장과 떨어진 무대 주위 사람들은 음악 소리에 묻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포미닛이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갔다. 그러자 공연장 일대가 조용해졌다. 잠시 뒤 갑자기 무대 조명이 모두 꺼졌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긴급구조를 위하여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촬영을 자제해 주십시오'

스크린에는 비상상황을 알리는 자막이 나왔다. 사람들은 그제야 큰일이 생긴 것을 알아차렸다. 저 멀리 구급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는 구조 밧줄을 환풍구 아래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밧줄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환풍구에서 약 20m 아래, 유스페이스 건물B동 지하 4층 주차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었다. 환풍구가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된 것을 파악한 구조대는 서둘러 지하주차장으로 달려갔다.

피해자의 상황은 심각했다. 12명은 이미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구조대는 환자들을 응급처치하고 서둘러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끝내 추가로 4명이 숨을 거뒀다. 16명 사망. 9명 중상. 경상은 환풍구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단 2명 뿐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6개월 만에 터진 대형 안전사고였다.

사고가 나자 현장 소식은 언론을 타고 속보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발생한 공연장 사고 중 최대 사상자였다. 뉴스로 사고를 접한 시민들은 피해자 대부분이 학생일 것으로 생각했다. 인기 가수의 공연 중 발생한 사고였기 때문이었다.

2014년 10월 17일 오후 부상자가 이송된 야탑동 차병원 응급실이 출입통제 되고 있다. 사진 = 황진환 기자

 


잉꼬부부, 예비 신부, 기러기 아빠, 외동아들, 외동딸. 놀랍게도 피해자 대부분 인근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잠깐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기 위에 올라섰을 뿐인데 참사로 이어진 것이었다. 뒤늦게 신원확인이 된 피해자 가족이 병원에 도착했다. 고인과 가족의 신원이 하나씩 알려질수록 안타까움은 더해만 갔다.

"이대로 가면 안 돼...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고 수 시간 뒤인 18일 오전 2시. 빈소도 채 차려지지 않은 장례식장에는 통곡과 오열이 가득했다. 조문을 온 직장동료와 지인은 어처구니 없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같은 시각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직원 A씨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번 행사의 안전대책 공문을 기안했던 실무 관계자였다. 약 1시간 20분가량 조사를 받은 A씨. 그는 집이 아닌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사고가 난 행사장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오전 6시 50분. A씨 사무실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역시 집이 아니었다. A씨는 비상계단을 타고 건물 10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사고로 죽은 이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진정성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가장 죄송한 것은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우리 보물들 OO(큰딸)와 OO(작은딸)이. 아빠가 너무 사랑해. 너무 보고 싶고. OO(아내)야. 정말 미안해. 아이들을 부탁해. 정말 많이 사랑해"

대쪽 같은 성격에 책임감이 강해 직장에서 늘 존경받던 A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었다.

붕괴된 환풍구 모습. 사진 = 황진환 기자

 


다음날 수사본부는 이번 사고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원인을 파악하면 할수록 구조적인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다.

약 1,000명 이상의 사람이 몰렸지만 공연장이었던 광장에 대한 안전점검은 전무했다. 해당 광장이 소규모 야외광장으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난 광장은 소방안전점검 규정상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환풍구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안전점검 규정 자체가 없었다.

경기 분당소방서 소속 소방관 2명은 사고가 난 행사 이틀 전 시속 60km로 달리는 차량 안에서 환풍구를 둘러 본 게 전부였다. 소방점검표에는 '점검 확인'의 허위공문서가 등록됐다.

환풍구 공사도 부실이었다. 시공사에서 하청업체, 다시 하청업체에서 재하도급업체로 이어졌던 시공 관행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 참사로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시공한 재하도급업체는 시공 면허도 없는 자재납품업체였다.

자재납품업체는 환풍구 덮개 시공 당시 도면에 나타난 받침대보다 적은 개수의 받침대를 썼다. 그마저도 튼튼하게 고정하지 않은 부실시공이었다.

결국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행사 주최자 등 공연안전관리 책임자 8명, 시공 관련자 7명, 소방공무원 2명, 총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16명이 죽고 11명이 중경상을 입고 그리고 1명이 목숨을 끊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었다.

사고 이틀 뒤인 2014년 10월 19일 경기도 판교 테크노벨리 사고 현장에 19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져 있다. 사진 = 윤창원 기자

 


다만 참사 뒤 사회가 조금씩 바뀐 것도 있었다.

사고 후 발의된 공연법 개정안건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기존에는 객석 수가 50석 미만, 또는 객석 바닥면이 50㎡ 미만이면 공연장 등록 의무를 제외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 이제 '모든' 공연장은 3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정기안전검사를 받아야한다.

소방관계법령도 일부 개정됐다. 이제 일정 규모가 넘는 건축물은 의무적으로 소방안전관리보조자를 선임하게 되었다. 또한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작동기능점검 결과를 소방관서에 보고하게끔 했다.

성남시는 그동안 없었던 환풍구(환기구) 설계·시공·유지관리 가이드라인도 제정했다. 이제 환기구를 설치할 때는 건축심의를 기준으로 하중을 관리하게 됐다. 또한 500인 이상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옥외행사는 안전관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조례가 제정됐다.

2016년 10월 11일 참사 후 철조망으로 둘러쌓여 사람들 접근이 차단된 판교 유스페이스 건물 환풍구(우) 모습. 사진 = 노컷뉴스

 


그 외에도 시민을 대상으로 안전체험센터, 생활안전 교실, 어린이 안전교육 교육, 재난안전 분야 공직자 교육 등 안전사고와 관련된 많은 교육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참사가 난 유스페이스 환풍구는 철조망과 덮개로 가려 사람들이 아예 접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도심 속에 있는 다른 환풍구도 안전시설을 설치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주의문구'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무엇보다 환기구를 대하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무심코 올라서거나 밟고 다녔다면 이제는 환기구를 피해 걷거나 올라서지 않으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환기구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닿게 된 것이다.

늦었지만 그래도 사회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가 열렸던 유스페이스 광장(별표 모양이 그려진 가운데 광장)과 철조망으로 통제된 환풍구(우)의 현재 모습. 사진 =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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