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웠던 권리, 이제는 당연"…민변 공익변론 10년, 세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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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 아닌 해야 할 일"…600건 공익소송 지원
법정 넘어 현장까지…활동가이자 변호사
"중요한 사건일수록 조용하다"…공론화 과제 남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서채완·최새얀 변호사. 나채영 기자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서채완·최새얀 변호사. 나채영 기자
"거창한 사명감이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해야 할 일이라서 왔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10주년을 맞아 만난 변호사들은 공익변론을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누군가는 로펌을 떠나 이곳에 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2016년 출범한 센터는 약 600건의 공익소송을 지원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 숫자보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변화를 더 중요하게 본다. 서채완 변호사는 "예전에는 권리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문제들이 지금은 당연한 수준이 됐다"며 "소송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이 기록으로 남아 사회를 바꿔왔다"고 말했다.

법정 안에 머물지 않는 변호사들

민변의 공익변론은 일반적인 소송과 결이 다르다. 사건을 단순히 대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시민단체와 함께 움직인다. 기자회견을 열고, 제도 개선까지 이어가는 방식이다. 법률가이면서 시민사회 활동가인 셈이다. 서채완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시민사회 활동가, 운동과 결합된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걸 현장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 사건의 성격도 다양하다.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는 혐의로 기독교대학감리회에서 출교처분을 받은 이동환 목사를 대리한 사건, 검정고시 출신의 교대 지원 제한을 다툰 헌법소원,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강제 해산 이후 소속 조사관들의 임금 청구 소송 등은 공익변론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변호사들은 자신들을 특정 분야 전문가라기보다 '제너럴리스트'에 가깝다고 말한다. 재난참사, 성소수자 인권, 정보인권, 수용자 인권 등 다양한 사건을 맡다 보면 관심 분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서 변호사는 "맡게 되는 일이 곧 관심사가 된다"며 "처음엔 낯설었던 분야도 시간이 지나면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는지"…공익변론의 출발점

공익변론의 출발점은 사건의 규모가 아니라 '당사자'다. 서 변호사는 "공익소송이라고 해서 당사자를 기계적으로 찾는 것은 아니다"며 "당사자의 억울함에 공감하면서, 이 소송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센터는 의뢰를 기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사건을 발굴하기도 한다. 교정시설 과밀수용 소송이 대표적이다. 최새얀 변호사는 "인권 관련 워크숍에서 교정시설 과밀수용 문제를 논의하면서 소송을 다시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이후 원고를 모집해 사건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센터는 전국 11개 교도소·구치소에 수감됐던 24명이 교정시설 과밀 수용으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과거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삼청교육대 사건이 그렇다. 서 변호사는 "과거에는 소멸시효 등의 이유로 모두 패소했지만, 이후 대법원이 포고령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결과적으로 당사자에게 상당한 배상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국내 제도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건은 국제기구를 통해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서 변호사는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 철거 명령 관련 사건을 언급하며 "행정소송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엔 특별보고관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고, 관련 자료를 검토해 즉각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판단을 받아 한국 정부에 권고가 이뤄졌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문화적 권리와 인권 침해 문제가 새롭게 조명됐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조용하다"…다음 10년의 고민

센터의 또 다른 과제는 '보이지 않음'이다. 변호사들은 입을 모아 "정말 중요한 사건일수록 주목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어도 관심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미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은 알아서 주목받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은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어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다음 10년의 과제로 '알리는 일'이 꼽힌다. 단순히 사건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기록하고 확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뤄야 할 의제도 적지 않다. 혼인평등 소송, 개인정보 처리정지권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인권 의제들이 남아 있다. 특히 인공지능과 개인정보 활용 문제는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혼인평등 소송과 관련해 최 변호사는 "약 12년 전 김조광수 커플이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당시에는 헌법소원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됐는데, 이번에 다시 하는 격"이라며 "현재 수도권에서 6곳, 지역에서도 여러 건이 진행 중이고 최근에서야 변론 기일이 잡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헌법재판소에서 부부를 남녀 간 결합으로 보는 것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구하는 것이 목표"라며 "대만은 이미 합법화됐고 일본도 심리 중이라, 몇 년 안에 국내에서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가명처리 정지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서 변호사는 "가명 정보도 개인 정보인데, 정보 주체에게는 자신의 정보 처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내 정보에 한해서는 가명 처리를 하지 말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사건은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재상고가 진행 중이며, 헌법소원도 제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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