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제공"문제는 왜 졌는지를 모르겠다는 거예요."바둑 기사 출신 이세돌 울산과학기술원(UNIST) 특임 교수가 2016년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대결 비화를 전하며 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털어놨다.
이세돌 교수는 최근 쿠팡플레이 예능 '강호동네서점'에 출연해 "시합 전에 AI 전문가가 기원을 찾아와 '대비하시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더라"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그때는 질 자신이 없어서 넘겨 들었는데 전야제에 참석하니 이미 내가 진 분위기였다"며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알파고와의 첫 대국에 대해 "생각보다 잘 둔다고 생각했고 괴리감도 있었다"며 "대국할 때 상대방의 기운이나 승부 호흡 같은 걸 느끼면서 하는데 돌을 옮겨 주신 분은 의도가 없으니 그런 기운을 느낄 수 없어 생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인터뷰에서는 '다음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속마음은 '내 실력만 발휘된다면 되지'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웃었다.
2016년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두 번째 대국에서 당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인상을 쓰며 바둑판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문제는 2국이었다. 이 교수는 "충격적이었다. 힘 한 번 못 써봤다"며 "무엇을 실수했는지를 알아야 되는데 패착을 모르겠더라. 심지어 2국은 '왜 졌는지'를 분석했다. 인간 프로 기사들도 결국 못 찾았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어 "3국에서도 사실상 이길 수가 없었다"며 "집에서도 혼자서 '바둑 얘기'를 하며 중얼거렸다. 그날이 또 결혼 10주년이었는데 구글에서 샴페인을 터뜨려 약 올랐다"고 웃었다.
알파고를 꺾은 4국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중반전에 승부를 걸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초반과 후반 승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중반에서도 정수를 둬서는 이길 수 없어 버그를 일으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수를 계산하는 구 버전과 달리 알파고는 연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부를 배제하는 특징을 지녔다"며 "또 50초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제한 속에서 틈새를 노렸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회심의 78수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수"라며 "정수가 아닌 걸 알고 의도적으로 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짚었다.
또, "내 바둑이 아니었다. 저만의 패배였다면 신념대로 뒀을 것"이라며 "저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승패는 작품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부산물에 불과한 거다. 사람과 뒀으면 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쿠팡플레이 제공은퇴를 결심하게 된 배경도 전했다. 이 교수는 "2017년 알파고 마스터 상위 버전을 보고 한계를 느꼈다"며 "'이렇게 두는 거구나'라고 감탄하면서 본다. AI가 인간의 고정관념을 보여주더라. 프로 기사들도 AI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알파고 제로는 인간 기보를 학습한 구 버전과 달리 AI끼리 학습했다"며 "이 때문에 저는 이해를 못 한다. 바둑을 왜 이렇게 두는지도 모르고 끝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더라. 지고 이긴 것과는 다른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교수는 만 5세에 바둑을 시작해 12세에 프로로 데뷔한 뒤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14차례 우승했다. 2014년에는 라이벌인 중국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6대2로 승리하며 세계 정상에 오른 바 있다. 10번기는 10번의 대국으로 승부를 가리는 방법으로 당시 59년 만에 열려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