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까지 벗지못한 '간첩'누명…국가가 파괴한 한 어부의 삶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 0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1970년대 납북귀환어부 사건 연루 故김정구씨
'간첩'누명으로 고문…후유증과 연좌제로 평생 고통
2024년 7월 재심 기각…유족 "사람답게 못 살다 죽어"

지난 1월 29일 고 신충관 씨의 재심 무죄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구 씨의 아내 박선례 씨가 "우리 남편도 평생 고통받으며 살다 가셨는데 재심이 기각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지난 1월 29일 고 신충관 씨의 재심 무죄 기자회견에서 고 김정구 씨의 아내 박선례 씨가 "우리 남편도 평생 고통받으며 살다 가셨는데 재심이 기각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심동훈 기자
"얼굴에다 수건을 둘러싸고 물을 위에다 붓고 몽둥이 같은 걸 다리에다 놓고 집어 누르면서
(북한 얘기를)들었냐 안 들었냐 그러니까 들었습니다. 들었습니다. 하도 아파서 들었다 그러지 들은 적이 없다니까 또 고문을 시키고…사람다운 삶을 못 살다 갔어요"


1970년대 납북귀환어부 간첩조작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한 후 평생을 '간첩'으로 낙인 찍혔던 故김정구씨의 아내 박선례(67)씨는 남편의 일화를 얘기하는 내내 울먹였다.

 평범한 어부였던 김정구 씨…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이 물었던 것은

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작성한 범죄인지보고서. 최정규 변호사 제공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작성한 범죄인지보고서. 최정규 변호사 제공
김정구씨는 납북귀환어부 사건의 피해자다. 납북귀환어부는 1960~1970년대 동해상과 서해상의 남북한 접격 지역에서 조업을 하다가 북한 경비정에 피랍돼 북한에 억류됐다가 남한으로 돌아온 어부를 칭한다.

국가는 납치된 후 귀환한 어부들이 간첩이라며 잡아들였다. 이외에도 귀환한 어부들이 전한 북한에서의 일화를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거나 동료에게 전달해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는 혐의로 동료 어부들도 잡아들였다. 김정구 씨는 후자였다.

김정구 씨가 체포된 1976년 10월의 어느날, 그와 약혼상태였던 박선례씨는  "고기 잡으러 갖다 잡혀갔다는 양반을 찾아가보니 창살처럼 된 창문에 아저씨가 띵띵 부어갖고 눈만 삐끔해가지고 얼굴이 노랗길래 내가 쇼크를 먹어 주저앉아버렸다"며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묘사했다.

김정구씨를 가둔 경찰은 그에게 "납북됐다가 돌아온 신명구 씨에게 북한 얘기를 뭐라고 들었나"고 물었다. 김씨는 듣지 못한 얘기였고, 신명구씨도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서로 객지서 돈 벌러 나온 양반들끼리 얼굴만 알고 지냈지 들은 얘기가 없다"는 그의 말에 돌아온 건 무자비한 폭행뿐이었다.

고문 당시를 묘사한 김정구 씨의 생전 증언이다.

"각목을 무릎 안쪽으로 넣은 후 허벅지를 짓누르고 밟고 그래서 고환이 팅팅 부어 소변이 안 나오고 너무 무섭고 죽을거 같아서 형사한테 지금 너무아프고 많이 부었다 라고 하니 아무말 않고 하얗게 생긴 알약 두알을 주면서 일단 먹으라고 했는데 혹시라도 그 약을 먹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너무 공포스러워 먹는척 하고 몰래 화장실 갔다가 버렸습니다"  

출소 후에도 이어진 감시…연좌제의 사슬로 이어진 낙인

김정구 등을 1976년 10월 19일 구속해 보고했다는 문서. 김정구 씨 가족 제공김정구 등을 1976년 10월 19일 구속해 보고했다는 문서. 김정구 씨 가족 제공
경찰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한 김정구 씨는 결국, 거짓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국가는 그에게 반국가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했다는 누명을 씌워 징역 1년 6개월, 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선고를 내렸다.

풀려난 김씨는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지만, '간첩'이라는 낙인은 김정구 씨와 가족을 평생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출소 이후에도 경찰의 감시는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이발소에 가기만해도 집에 들이닥쳐 "김정구 어딨어"라고 물었다.

이사를 다녀도 마찬가지였다. 군산, 전라남도 적금도, 여수 등 각지로 옮겨다닐때마다 경찰은 집에 찾아와 김정구 씨를 물었다. 박선례 씨는 "죄인도 아닌 죄인을 데려다가 고문을 시켜갖고  다리도 절고  짝대기로 짚고 저리 걸어 다니는 거 눈으로 안 보이냐 제발 그만하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더라"고 말했다.

김씨의 누명은 자녀들에겐 연좌제의 사슬로 이어졌다.

항공사와 공기업 등 원하던 직장에 취업한 김씨의 아들과 딸은 신원조회 과정에서 채용이 거부되거나 출근 첫날 "아버지가 반공법을 위반했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이어진 취업에도 같은 일은 반복됐다.

김정구 씨에게도 고문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 귀의 청력이 상실된 채 평생을 살았고, 성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의 손상을 입은 채 평생을 살았다.

국가는 그와 가족의 삶을 파탄냈고, 그 결과는 끊임없는 가난의 굴레였다. 박선례 씨는 "아저씨가 일을 못하니 내가 막노동, 식당일 안해본게 없을 정도로 고된 일을 해가며 아이 셋을 키웠다"며 "고무신 한 짝 살 돈도 없어 주워온 신을 신고 일을 나가기도 했다"고 울먹였다.

그러면서 "우리 아저씨는 너무 불쌍하게 세상 같은 세상을 못 살고 갔평생을 아파하며 살다 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재심 기각에 억울함 품고 세상 떠나…유족과 변호인은 "억울함 풀어야"

지난해 4월 3일, 재심을 통해 50여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신명구씨를 축하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지난해 4월 3일, 재심을 통해 50여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신명구씨를 축하는 시민들의 모습. 연합뉴스
납북귀환어부의 억울한 50여년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과 재심을 통해 일부 해소되고 있다. 김정구씨에게 북한에서의 일화를 전했다는 신명구 씨는 지난 2025년 4월 23일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와 함께 기소된 故신충관씨도 재심에서 억울함을 해소했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여러 증거들을 종합할 때 이들에게 제기된 공소사실을 인정하긴 부족하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정구씨엔 "불법 구금과 고문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한을 풀기 위한 마지막 희망이 스러진 후, 몇 달 뒤 김씨는 세상을 떴다.

김씨는 억울함을 간직한 채 사망했지만, 가족과 그의 변호인들은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김씨의 법률대리인 최정규 변호사는 "김정구 씨의 불법 구금의 정황이 분명히 확인됨에도 법원이 기계적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근거는 경찰과 법원이 남긴 기록이다. 1976년 10월 19일 전북 군산경찰서가 김정구 씨를 체포하며 작성한 범죄인지보고서엔 김정구 씨의 신상 아래 (동행) 표시가 되어있다. 체포 후 사흘 뒤인 1976년 10월 22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이 발부한 김씨의 구속영장엔 영장 집행 장소가 '군산경찰서 정보과 대공계'로 적혀있다.

김정구씨 구속 당시 발부된 영장. 최정규 변호사는 10월 19일 체포된 김정구씨의 영장이 10월 22일 군산경찰서 정보과 대공계에서 집행된 것을 두고 19일부터 22일까지는 불법구금됐다고 주장한다. 최정규 변호사 제공김정구씨 구속 당시 발부된 영장. 최정규 변호사는 10월 19일 체포된 김정구씨의 영장이 10월 22일 군산경찰서 정보과 대공계에서 집행된 것을 두고 19일부터 22일까지는 불법구금됐다고 주장한다. 최정규 변호사 제공
최 변호사는 "19일에 체포된 후 구금 없이 집에 보냈다면 22일 영장 집행 장소가 군산경찰서 정보계가 아니라 집이었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사법을 집에 보냈을리는 만무하니 체포된 19일부터 영장이 발부된 22일까지는 김씨는 불법 구금됐다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심 청구와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신청 중 김씨의 억울함을 해소하는데 있어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찾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선례 씨도 "아빠가 빨갱이란 이유로 우리 아들딸은 좋은 곳 취업해도 금방 나왔고 아저씨도 평생 사람답지 못한 삶을 살다 억울하게 가셨다"며 "재심이나 진실규명 등으로 우리 가족이 평생 짊어졌던 한이 해소됐음 좋겠다"고 말했다. 

0

0

실시간 랭킹 뉴스

오늘의 기자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