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상습 폭언에 11㎏ 빠진 딸 사망"…ABC마트에서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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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자리 마치고 돌아와 세상 떠난 예림씨

유족 "회사일 힘들어 11kg 빠졌던 딸, 주변에 '죽고싶다' 말해"
상습 폭언·태움·초과 근무…직장 내 괴롭힘 정황
전 직장동료 "카카오톡 답장 안했다고 예림씨와 혼난 적도"
직장동료 "회사에서 차단 지시"…침묵에 애타는 유족
ABC마트 측 "특정인 향한 괴롭힘·초과근무 지시 없었다"

예림씨의 동생이 보여준 예림씨의 생전 모습. 어머니는 "우리 딸 정말 예쁘죠"라며 한참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강지윤 기자 예림씨의 동생이 보여준 예림씨의 생전 모습. 어머니는 "우리 딸 정말 예쁘죠"라며 한참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강지윤 기자 
"일이 힘들어서 11㎏이나 빠졌던 애가 그날은 밥이 너무 맛있다고 두 공기나 먹는 거예요. 얼마나 예쁘던지. 다음날 퇴근하고 와서 새벽에 그렇게 됐어요. 들어보니까 주변에 '너무 힘들다', '죽어버릴까' 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었대요."

지난해 12월 9일 새벽, 충남의 한 ABC마트 직영점에서 근무하던 이예림(24·가명)씨는 직장 동료들과 저녁 자리를 갖고 돌아와 현관문을 연 지 11분 만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유족과 지인들은 예림씨가 과도한 업무와 점장의 폭언에 고통을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직전 저녁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싹싹하고 애교 많던 딸이 왜 세상을 떠나야만 했는지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지만, 직원들은 연락을 피하고 있다. "회사에서 전화, 문자, 전부 차단해 놓으라고 하셔서 연락 드리기 어려웠습니다"가 유족이 받은 마지막 메시지다.

"딸의 급여 통장으로 150만 원이 들어왔더라고요. 위로금인지 피해보상금인지 설명이 없으니 알 방법이 없어요. 본사는 '점장의 행동이 직장내 괴롭힘으로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메시지만 보내놓고 말이 없어요. ABC마트 큰 회사 아닌가요? 관리·감독도 제대로 못해놓고 지금 어떻게…."

ABC마트는 해당 점장이 비속어를 섞어 지시를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즉각 직원들과 분리하고 징계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다만 특정인을 향한 폭언과 초과근무 강요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능지가" "죽여버린다" 상습 폭언…"가스라이팅 당했다"

ABC마트 매장 내부. 강지윤 기자ABC마트 매장 내부. 강지윤 기자
예림씨는 지난해 4월 ABC마트에 입사해 3개월간 인턴으로 일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유족은 "정규직이 된 이후부터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마침 매니저가 휴직에 들어가면서, 갓 인턴을 마친 예림씨에게 업무가 한꺼번에 쏠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일할때는 밝기만 했었는데, 스트레스로 밥도 못 먹고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어요. 어느 날은 '엄마 나 점장 죽여버리고 싶어' 하더라고요. 업무를 자세히 안 알려주고 질문하면 왜 모르냐며 비아냥댄다는 거예요. 카톡을 보니까 막말과 욕설이 일상이었더라고요."

유족 측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점장은 단톡방에서 직원들에게 수시로 폭언했다. 문제가 생기면 실수한 직원을 공개적으로 색출해 질책하고, CCTV를 통해 직원의 행동들을 지켜봤던 것으로 파악된다.

ABC마트 단체 카톡방의 점장 폭언 내용 일부
"쉬고 오면 똥을 몇 개나 치워야 되는 거냐 진짜 아 짜증나네. 좀 잘하면 안됨??(중략) 대답 안 해?"(2025년 9월 12일)

"대가리 쳐 빼고 넣지 말라고 그렇게 쳐 이야기해도 로케이션도 안 찍어놓고 진짜 ㅋㅋㅋ. 누가 넣은진 몰라도 인간 아닌 거임?? 얘기를 해도 이해를 못 하노. 짐승이가 진짜 하. 넣은 사람 답장. 안 올리면 CCTV 확인하겠음. (중략) 당장 중2짜리만 데려와도 무리 없이 할 거 같은데?"(2025년 9월 30일)

"똑바로 안 하면 가만히 안둘겁니다.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확인하시고 댓글."(2025년 10월 19일)

"이달 프로모션 클리너 오늘 못팔면 죽일 거임"(2025년 11월 1일)

"한 번 더 보이면 누군지 찾아서 개XX하겠음"(2025년 11월 2일)

"넣은 XX 바로 전화. 마감까지 전화 없으면 앞으로 나도 그냥 X같이 하겠음. 말을 해도 못알아쳐먹는건지 능지가 모자란 건지 뭔진 모르겠는데 쳐넣을때 뻔히 옆에 쳐보이는 걸 껀데 저걸 내가 씨X 말을 그렇게 쳐해뒀는데도 저렇게 넣어둔다고??"(2025년 11월 2일)

"진짜 개XX하는거 보고싶은 친구 있나본데 걸려만 봐요."(2025년 11월 21일)

"CCTV 보기 전에 톡. (중략) X나 짜증나네 진짜로 ㅋㅋㅋ 처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것만 좀 지키자고 하는데 말 진짜 X나 안듣네."(2025년 11월 21일)

"적당히가 없노 진짜 ㅋㅋ. 아휴 맨날 이야기 쳐 해도 안들어먹고. (중략) 짐승들도 아니고 말하면 알아듣던지 하지. 뭐 X같이 하다 걸려서 욕먹고 싶은 거임?"(2025년 11월 28일)

"일 진짜 맘에 안들게들 하네. 불만 있음 말을 하시던가. 그게 아니면 정신 좀 차려라들. 뭔 잼민이 애XX들도 아니고 뭐 하는거야, 이게."(2025년 12월 7일)


점장의 이러한 행동이 '가스라이팅'에 가까웠다고 예림씨와 같이 일했던 전직 직원은 설명했다. 그는 "매번 공개적으로 지적을 받다 보니 늘 위축돼 있었다"며 "쉬는 날에도 언제 연락이 올지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프라인에서도 욕설과 폭언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점장이 화를 내다가 프린터기를 고장 날 정도로 세게 찼다',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다' 등 (예림씨가) 토로했었다"며 "쉬는 날 카카오톡에 답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란히 욕을 먹은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예림씨는 "힘들다", "죽고싶다"는 말을 수시로 했으며 업무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했다. 그는 "예림씨가 하루 매출 등을 정리해 보내는 '마감 문자'를 작성할 때면 틀릴까 봐 손을 덜덜 떨었다고 한다"며 "이미 퇴사한 상태였지만,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말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해 보였다"고 씁쓸해했다.

예림씨가 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서도 점장의 눈치를 살피는 정황이 있었다. 그는 "매출이 안 나와서 큰일이다, 혼날 것 같다", "아직 일이 안 끝났는데 내가 맡은 일도 못 해서 또 혼날 예정", "클리너를 못 팔면 쉬고 싶은 날도 못 쉰다더라"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점장의 입장을 들어보려 수차례 전화와 문자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예림씨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일부. 유족 측 제공예림씨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일부. 유족 측 제공

하루 11시간 혹독한 스케줄…"초과 근무 못 찍게 꼼수" 주장

예림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하루 11시간 근무했다. 휴게시간 1시간 30분을 제외하면 주당 실근로시간은 47시간 30분이다. 법정 최대 근로시간인 주 52시간엔 미치지 않지만, 상당한 장시간 노동이다.

그러나 유족은 예림씨가 통상 오후 9시 30분쯤 퇴근했으며, 늦을 경우 밤 10시나 11시를 넘겨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고 설명했다.

예림씨의 전 직장동료에 따르면 퇴근 시간이 지켜지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는 "퇴근 시간인 오후 9시에 상시적으로 종례를 하는데 20~30분은 걸린다"며 "그런데도 모두 미리 퇴근 기록을 찍어 초과근무를 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했다"고 말했다.

특히 마감을 담당하는 날에는 정시퇴근이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점장이 직접 초과 근무를 지시하진 않지만 '최대한 다 끝내 놓으라'고 했다"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다음 날 혼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을 하고 갈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초과근로 수당도 없었다고 한다.

예림씨의 어머니는 분통을 터뜨렸다. "어느날은 제가 '니가 못하면 엄마가 노동청에 신고할거야'라고 했는데, 딸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울먹이더라고요. 점장이 무서우니까 피해를 볼까봐 그랬던 것 같아요. 오죽하면 제가 퇴직금을 내가 줄테니 그만두라는 말까지 했겠어요."

예림씨가 점장에게 전화로 욕을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위)·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유족 측 제공예림씨가 점장에게 전화로 욕을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위)·야근을 마치고 돌아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유족 측 제공
이에 대해 ABC마트는 "연장, 야간, 휴일근로가 발생할 때는 관련 법령 및 내부 기준에 따라 적정한 방식으로 처리했으며, 근태 기록 또한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직원 면담 시 확인한 내용으로는 점장이 초과 근로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폭언과 관련해서는 "업무 지시할 때 비속어를 섞은 사실이 확인되어 점장을 즉각 직원들과 분리하고 징계 조치했다"면서도 "특정인을 상대로 폭언하거나 대면하여 욕설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한, "고인 사망 전날 식사 자리는 회사가 주관한 것이 아니라 고인과 다른 직원들과의 사적인 자리였다"며 "당일 직장 내 괴롭힘이나 업무 부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고, 고인이 남자친구와 싸운 사실이 파악되었다"고 설명했다.

유족 측은 "점장의 폭언과 반복된 초과근로로 예림이가 고통을 호소한 사실이 명백한데 회사가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죽음 전체는 아닐지 몰라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직장동료 "회사에서 차단 지시"…침묵에 애타는 유족

예림씨 동생과 직장동료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직장동료는 이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을 끊었다. 유족 제공예림씨 동생과 직장동료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직장동료는 이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을 끊었다. 유족 제공
유족들은 예림씨가 세상을 떠난 후 일상이 초토화됐다고 했다. 어머니와 동생은 극심한 우울과 분노로 인해 폐쇄병동에서 치료받고 있고, 아버지는 정신과 약으로 버티고 있다.

유족은 사건의 경위를 듣기 위해 예림씨와 가까웠던 직장 동료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다들 입을 닫았다. 특히 예림씨 사망 전 함께 술을 마셨던 A씨는 "많은 시간을 뺏진 않을테니 한번 꼭 만나뵙고 싶다"는 유족의 간절한 연락에도, "회사에서 전화, 문자, 전부 차단해 놓으라고 하셔서 연락드리기 어려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메시지를 남긴 뒤 연락을 끊었다.

ABC마트 측은 이에 대해서도 "유족의 연락을 차단하라고 안내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유족은 ABC마트 본사 등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초과 근무에 대한 민형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점장이 징계를 받긴 한건지 아직도 그 지점에 일하고 있는지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매장 직원들과는 아예 연락이 안되고, ABC마트 측에서는 아무런 안내와 설명이 없고요. 통장에 들어온 150만 원이 조의금이었다는 것도 기자님 통해 이제야 알았네요. 너무 화가 나요. 내 딸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너무 밝고 예쁜 아이였는데…."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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