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연락 끊겼는데"…의료급여 부양비 26년 만에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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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도움 없는데도 존재한다는 이유로 의료급여 탈락
정부, 부양의무자 단계적 완화·부양비 전면 폐지 추진
부양의무자 '부양능력 미약', 소득 10% '부양비' 산정
내년 1월부터 '부양비' 전면 폐지…"없는 소득 계산 안해"

4일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4일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한 무료급식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락도 못하는 아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안 된답니다."

사업 실패 이후 생활고에 놓인 60대 남성 A씨는 의료급여 수급 신청에서도 탈락했다. 자녀에게 실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부양의무자인 아들의 소득이 기준을 넘는다는 이유였다. 사업 실패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며 아들과는 명절에 안부를 나누는 정도로만 연락하고 있다.

의료급여 수급자였던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함께 살던 딸이 결혼해 분가하면서 수급이 중단됐다. 사위가 부양의무자에 포함되면서 소득 기준을 넘긴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B씨는 독립한 딸과 사위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사실상 가족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처럼 실제로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가족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의료급여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이어지자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섰다.

의료급여, 본인 소득·재산뿐 아니라 부양의무자까지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급여 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그 과정에서 핵심 쟁점으로 지적돼 온 부양비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이번 개편으로 의료급여 부양비는 제도 도입 이후 26년 만에 폐지된다.

의료급여는 기준 중위소득 40% 이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의료비를 거의 전액 지원하는 공공부조 제도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는 신청자 본인의 소득과 재산뿐 아니라 함께 살지 않는 가족을 포함한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까지 함께 고려한다.

이로 인해 기준 중위소득 40% 이하임에도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발생해 왔고, 복지부는 그 규모를 약 66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손질…2027년 이후 '고소득·고재산'만 선별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브리핑실에서 2026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브리핑실에서 2026년 주요 정책 추진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의료급여는 각종 급여 가운데 유일하게 부양의무자 기준이 남아 있다. 교육급여와 주거급여는 이미 기준이 폐지됐고, 생계급여도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반면 의료급여는 과거 기준이 유지되면서, 소득 기준이 더 낮은 생계급여 수급자 수가 의료급여 수급자보다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복지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손질할 방침이다. 2027년 이후에는 고소득·고재산 부양의무자만 선별적으로 기준을 적용하고, 나머지 경우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복잡한 소득·재산 산정 방식과 과도한 서류 제출 부담도 함께 줄인다는 계획이다.

'부양능력 미약' 소득 10% '부양비' 산정…내년부터 폐지


이 같은 기준 완화 논의의 핵심에 있는 것이 '부양비 폐지'다. 현재 의료급여 제도에서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재산 수준에 따라 △부양능력 있음 △부양능력 미약 △부양능력 없음으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부양능력 미약'으로 판정되면, 실제 생활비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부양의무자 소득의 10%를 '부양비'로 산정해 수급 신청자의 소득인정액에 반영한다.
보건복지부 제공보건복지부 제공
이 때문에 신청자의 실제 소득이 기준선보다 낮아도, 간주된 부양비가 더해지면서 소득인정액이 기준을 초과해 탈락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경제적 지원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제도상으로는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계산되는 구조다.

복지부는 2026년 1월부터 이 같은 간주 부양비를 전면 폐지할 계획이다. 부양능력 미약 구간을 사실상 부양능력 없음으로 전환해, 실제로 받지 않는 가족 소득을 수급자의 소득으로 계산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부양비 폐지'로 5천명 의료급여 혜택…재정 204억원 추산

예컨대 현재 혼자 사는 C씨는 실제 소득이 93만 원이지만, 연락이 끊긴 아들 부부의 소득 가운데 10%가 부양비로 간주되면서 소득인정액이 103만 원으로 계산된다. 이로 인해 2026년 1인 가구 의료급여 선정기준인 102만5천 원을 넘긴 것으로 판단돼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다.

그러나 부양비가 폐지되면 실제 소득만 반영돼 소득인정액은 93만 원으로 낮아지고, 의료급여 수급이 가능해진다.

복지부는 이 조치로 약 5천여명이 새롭게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추가 재정 소요는 204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와 부양비 폐지를 통해, 형식적인 가족관계 때문에 의료 접근권이 막히는 문제를 줄이고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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