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美 상대로 선방한 韓…연간 200억弗 부담은 못 떨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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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투자 2천억 달러…총액은 美측 요구 수용
10년간 연간 상한액 200억 달러도 상당한 부담
"환율 상향 고착화 가능성 있다"
벼랑 끝 거둔 성과도 무시 못해
투자금 환수·필요시 투자금 조정 등 안전장치에 호평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기화 국면에 빠지는 것 같았던 한미 후속 관세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미국 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최소한의 안전 장치들을 다각도로 마련해 일단 선방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통상 환경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성과로 꼽히지만, 직접 투자 액수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커 외환시장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세밀한 후속 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적지 않다.

美측 총액 거의 수용했지만…최혜국대우·무관세 얻어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미 정부는 △현금 투자 비중 2000억달러 △현금 투자 연간 상한액 200억달러 △투자 수익 5대5 배분 △조선업 협력펀드(마스가 프로젝트) 1500억달러 조성에 합의했다.

한국 측은 10년간 매년 70억달러씩 총 700억달러의 현금 투자를 제시한 반면, 미국은 8년간 매년 250억달러씩 총 2000억달러를 요구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지만 총액 부분에서는 한국이 상당 부분 양보하면서 타결이 이뤄진 셈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자동차와 차부품 등의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게 됐다. 반도체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가 적용된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직접 지분투자가 이뤄지는 2000억달러에 대해 연간 한도를 최소 10년 간 200억달러로 설정한 점이다. 현금 비중을 5% 이하로 맞추겠다는 당초 목표보다는 훨씬 현금 비중이 높아졌지만 연납 기간을 늘렸다.

2000억달러 투자 형식은 일본과 유사하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2000억 달러(현금 투자는) 일본이 미국과 합의한 금융 패키지와 유사한 구조"라며 "우리 외환시장이 감내할 범위에 있으며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투자할 분야를 먼저 정하면 한국 정부가 그 분야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캐피털 콜), 투자 수익은 원리금(원금+이자)을 돌려받기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이 5 대 5으로 나누고 원리금 상환 후에는 미국과 한국이 9 대 1로 가져가는 구조가 유사점으로 꼽힌다.

양국이 최종적으로 합의한 MOU(양해각서)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법안을 제출하는 달(月)의 1일부터 관세 인하 혜택이 소급 적용된다.

의약품과 목재 제품은 최혜국 대우를 받고 항공기 부품과 제네릭(복제) 의약품은 무관세 혜택을 받는 것 역시 성과로 꼽힌다. 미국산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을 지킨 것도 한국 정부가 내세우는 성과다.  김 정책실장은 "추가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으며 검역 절차를 놓고 양국 협력·소통을 강화하는 정도로 합의를 했다"고 전했다.

안전장치 마련…외환시장 안정성·상업적 합리성 최대한 지켜

후속협상을 두 달이나 이어온 끝에 마련된 안전장치 역시 눈에 띈다. 그동안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성과 상업적 합리성에 협상력을 쏟아왔다.

    김 정책실장은 "외환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별도 근거를 마련했다"며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설정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상업적 합리성에 대해서도 "조만간 체결할 투자 양해각서(MOU)에 상업적으로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할 수 있다는 문구를 명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 정책실장은 또 "투자 금액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고 현금 흐름 보장된다고 투자위원회가 선의(good faith)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일정 기간, 20년 이내 원리금 전액을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을 조정 가능한 것으로 양해했다"고 부연했다.

미국 측 요구처럼 미국이 일방적으로 투자처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또 투자위원회가 투자금을 충분히 환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프로젝트에만 투자하도록 했고, 20년 이내 한국이 원리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면 배분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을 MOU에 명시했다고 한다.

다만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맡고, 한국 측은 투자협의위원장을 맡는다.

이같은 안전장치에 대해 한국무역협회 조성대 통상연구실장은 "투자금 환수와 투자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점은 일본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대미 투자펀드를 '엄브렐라(우산형) SPC(특수목적회사) 형태로 만드는 것 역시 또다른 안전장치다. 엄브렐라 SPC(모자형 특수목적법인)는 여러 개의 하위 SPC로 구성돼 독립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특정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전체 투자 패키지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동차 프로젝트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반도체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울러 대미 투자 패키지가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프로젝트 수행 시 가급적 한국이 추천하는 한국 업체를 선정하고, 한국인 매니저를 채용하기로 한 것 역시 우리 측 성과로 꼽힌다.

외환시장 장기적 부담될 수밖에…

천문학적인 현금 투자를 막고 안전장치를 다각도로 마련했지만 외환시장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점은 한계로 거론된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연간 200억달러는)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며 "외환보유고를 통해서 얻어들이는 운용 수익을 다시 돌려보내는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내 외환보유액은 약 4220억달러로 이를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에 투자해 운용 수익을 얻고 있다. 당초 미국이 요구했던 3500억 달러는 한국 외환보유액의 84%, 명목 GDP의 20%를 초과하는 규모였다.
 
다만 외환시장 부담감을 상쇄한 것은 맞지만, 장기간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다른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상향 고착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좀 좋아지겠지만 (원자재 수입 등) 원가 상승 비용이 굉장히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투자금 액수가 크기 때문에 대미 투자 상황을 철저히 관리할 수 있는 정부 내 전담 조직을 별도로 만들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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