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10시쯤 한 시민이 멈춰서 전광판에 적힌 추모 글귀를 바라보고 있다. 김수정 기자이태원 참사 3주기인 29일 오전 10시 29분, 참사가 일어났던 골목에 추모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좁은 골목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묵념했다.
이날 이른 오전부터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졌다. 길목 입구에서는 스님들의 추모 법회가 진행됐다. 간이 테이블 위에는 위패와 향이 놓였다. 쌀쌀한 날씨에 두꺼운 외투를 여민 시민들은 말없이 현장을 지켜봤다.
벽면에 마련된 추모 전광판에는 노란색 포스트잇들이 붙었고, 바닥에는 흰 국화꽃이 가지런히 놓였다. '2014년에는 수학여행이 취소된 학생이었고, 2022년에는 홍대에서 내내 걱정에 대답한 생존자입니다. 삶을 지키는 것이 생존자의 책임이겠지요. 내내 미안합니다'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바람에 흔들렸다.
골목 안에 있는 편의점 사장은 헌화용 꽃바구니를 직접 준비해 가게 앞에 뒀다. 전광판에는 영어와 힌디어 등 외국어로 적힌 추모 글귀들도 보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김수정 기자골목 한편에서 함께 기도하던 김은주(60)씨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이태원에 사는 딸을 보러 해외에서 잠깐 한국에 왔다는 그는 "파출소도 가까운 이렇게 활짝 열린 공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씨는 "추모 시간에 맞춰 와서 보니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감정이 북받친다"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고 모든 청년이 이런 아픔을 다시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골목 바로 앞 대로변에서 40년째 구두수선집을 운영해온 유모(70)씨도 가게 앞에 나와 현장을 지켜봤다. 유씨는 "손주 손녀 같은 어린아이들이 좋은 데 갔을 거라고 믿는다"고 짧게 말했다.
직장인 김문수(31)씨는 연차를 내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김씨는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다"며 "3년 동안 국가가 책임지지 못해 이어졌던 고통들이 있었는데, 정부가 바뀌고 최근에 조금이나마 유가족분들의 아픔이 위로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목숨보다 소중한 게 어디 있겠냐"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덧붙였다.
29일 오전 한적한 이태원 일대. 김수정 기자외국인들도 추모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미국에서 온 러스케니(55)씨는 한참 추모 현장을 지켜봤다. 그는 "벌써 3년이 지났다니 그간 세월이 정말 빠르게 느껴진다"며 "이 좁은 골목에서 목숨을 잃은 분 중엔 미국인을 포함해 외국인들도 많았다"고 말을 꺼냈다.
러스씨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 친구, 연인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날을 계속 기억하고 기렸으면 좋겠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 어린 공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이렌이 울리던 이날 오전 10시 29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이태원 참사 3주기 기억식,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 행사가 열렸다. 유가족과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참사 발생 3년 만에 정부가 유가족·시민 등과 함께 처음으로 개최한 공식 추모행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영상으로 전한 추모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참사 유가족과 국민들께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미흡했던 대응, 무책임한 회피, 충분치 않았던 사과와 위로까지 이 모든 것들을 되돌아보고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