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민 전 의원. 연합뉴스라임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기동민 전 의원 등 민주당 출신 정치인 4명이 지난달 26일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을 통해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실체를 드러냈으나 정치검찰의 기획수사는 그 자체로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이었다. 기 전 의원은 최후진술에서 검찰의 잔인한 압박과 장기간의 수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한 쪽 눈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며 건강 악화를 호소했다.
공소사실과 판결 내용을 보면 검찰의 묻지마식 기소가 어떠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검찰은 기 전 의원 등을 재판에 넘기면서 라임사태와 무관한 2016년 총선 전후의 일에 연루시켰다. 이 가운데 기동민 전 의원은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 용지와 관련한 인허가 알선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정치자금 1억원과 2백만원 상당의 양복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문제는 돈을 받았다는 쪽은 부인하고 있고, 줬다는 쪽에서도 김봉현 전 회장과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가 돈 전달 주체와 방식을 놓고 구체적인 진술이 엇갈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16년 3월 11일, 김봉현 회장은 이강세 대표가 쇼핑백으로 3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한 반면, 이 전 대표는 김 회장이 봉투 2개에 담아 탁자 위에 놓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교부자들의 진술이 다른 상황에서 어느 한 명의 진술에 신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지 인허가 알선과 관련해서도 "사건 당시 김봉현의 청탁 및 기동민의 승낙이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고 증거도 없다"면서 "(피고측) 추경민은 서울시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016년 3월 중·하순, 기 전 의원이 정치자금 명목으로 현금 5천만원을 수수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재판부는 "김봉현이나 이강세가 이후 피고인으로부터 어떠한 이익이나 편익을 제공받지 않았고 기동민도 화환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점을 들어 5천만원을 지급받은 사람의 대응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금품수수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에서 제공자의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진술의 증거능력과 신빙성, 합리성, 일관성, 이해관계 유무 등을 따져봐야 하는데, 재판부는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했을 때 김봉현의 진술에 신빙성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정치인 금품제공과 관련해 세 차례나 말을 바꾼 점에 주목했다. 김 전 회장은 처음에 정치인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하더니 2020년 10월 옥중입장문을 통해서는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 회유나 협박에 의한 허위진술을 폭로했다. 하지만 라임사태와 관련해 형사재판을 받던 도중 도주했다가 2022년 12월 말 검거된 뒤에는 또다시 옥중입장문 발표내용이 허위였다고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증거물로 제출한 김봉현의 자필 수첩에 대해서도 작성방식이 일관되지 않고, 사후에 일괄적으로 기재했을 가능성을 들어 "수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증거가 부족하면 기소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정치검찰의 기획수사는 사실상 무리한 기소를 전제로 하게 마련이다. 검찰이 잘못 휘두른 칼에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면 당사자들에겐 정의가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소 대비 무죄율이 일본에 비해 크게 높은 것도 돌아볼 일이다.
-검찰 역사상 치욕으로 기록될 김학의 성접대 사건
-전대미문의 김건희 출장조사와 무혐의 처분
-표적수사로 얼룩진 검찰공화국…
이 모든 부끄러운 역사를 바로세우고 국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검찰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 대목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곱씹어 볼 만 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검사들이 (죄가)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거나, 무죄가 나와도 책임을 면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고통을 주고 있다면서 무죄를 받아도 상고를 하면 대법원 재판까지 가야 하고, 그 과정에서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 집안이 망한다고 말했다.
기동민 전 의원 사건은 검찰이 4년 동안 수사하다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둔 2023년 2월에 기소한 사건이다. 기소 이후로도 2년 6개월이 훨씬 넘었다. 수사 개시부터 1심 재판까지 6년 반이 넘게 걸렸는데 이 사이 기 전 의원은 돈과 명예, 건강을 모두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다시 항소할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