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옅어지는 영화관의 추억, 어쩔 수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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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영화관, '어쩔수가없다'에 거는 기대

'그들 각자의 영화관' 중 기타노 다케시의 '어느 좋은 날'. 유레카 픽쳐스 제공'그들 각자의 영화관' 중 기타노 다케시의 '어느 좋은 날'. 유레카 픽쳐스 제공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란 영화가 있다. 베니스‧베를린과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 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2007년 상영된 프랑스의 옴니버스 작품이다. 25개국의 영화 감독 36명이 연출한 단편 영화 34개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거장들 각자의 영화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각각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저마다의 스타일로 담아냈다.
 
프랑스어 원제는 '각자의 영화관 또는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할 때의 전율'이다. 제목처럼 어두운 영화관에 한 줄기 빛이 비추춰질 때 느낀 감정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국민학교 시절 '로봇태권V'를 보고 싶어 동네 영화관 아저씨를 졸라 공짜 관람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80년대 500원에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었던 서울 변두리 재재개봉관. 연탄 난로 난방이 꺼지자 직원이 피우던 번개탄 연기에 영화 관람 내내 콜록거렸던 일도 다시 못 올 추억이 됐다.
 
영화관은 모두에게 애틋한 추억을 소환해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그 추억이 아스라해져 가고 있다.
 
영화 '고백의 역사'. 넷플릭스 제공 영화 '고백의 역사'. 넷플릭스 제공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폭발적인 인기는 두 가지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K컬처의 엄청난 잠재력, 그리고 넷플릭스의 막강한 힘이다.
 
세계 최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가입자 수가 3억명을 돌파하면서 그 위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케데헌'의 전 지구적 열풍은 넷플릭스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영화 티켓 1장 가격보다 싼 구독료로 한 달 내내 집에서 마음껏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영화관을 갈수록 위축시키고 있다. 구독자의 취향을 AI로 분석해 관심이 끌만한 영화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영화관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1위에 올리기도 한다. 마동석 자기복제 액션 영화 '거룩한 밤: 데몬 헌터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당최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춘 짝사랑 고백물 '고백의 역사'가 '케데헌'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는 기적도 연출됐다.
 
넷플릭스의 기세가 등등할수록 영화관은 작아진다. 1996년 국내 멀티플렉스 시대를 화려하게 연 CGV는 올해 2분기 관객 수가 1000만명에 턱걸이하면서 지난해 2분기보다 36%나 줄었고 매출액도 27% 감소했다. CGV 영화관은 올해만 8개 점이 문을 닫았다.
 
영화관은 정말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은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오른쪽 세번째)과 출연 배우들. 연합뉴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은 '어쩔수가없다'의 박찬욱 감독(오른쪽 세번째)과 출연 배우들. 연합뉴스  
새 정부가 민생회복 차원에서 지급한 6000원 할인 영화 쿠폰은 영화관 업계에 단비와도 같았다. 7월의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개봉한 한국영화 '좀비딸'은 영화 쿠폰을 쓰면 1000원에 관람이 가능해지면서 관객을 불러모아 올해 유일한 관객 500만명 돌파 작품이 됐다. 8월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개봉 10일만에 300만명을 넘어섰다. 정부는 여세를 이어갈 수 있도록 오는 8일 2차 영화 쿠폰을 발급한다. 그리고 거장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가 9월의 '문화가 있는 날'인 24일 극장가를 찾아온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최초 공개된 '어쩔수가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등 출연진에게 약 9분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평단도 난리다. 로튼토마토에선 21개 매체가 평점 100점 만점을 줬다. "현존하는 가장 우아한 감독"의 "황홀하게 재미있는", "눈부신 코미디 걸작"이라는 호평이 쏟아지면서 7일 발표될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사자상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비교하면서 내년 아카데미상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마저 내비치고 있다.
 
2019년 '기생충'은 칸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 등을 거머쥐고 국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과연 한국 대표 감독 박찬욱과 한국 최고 배우들이 힘을 합쳐 만든 '어쩔수가없다'는 제2의 '기생충'이 될 수 있을까? 영화관에 온기를 불어넣어 추억이 쌓이는 공간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어쩔수가없다'는 24일 개봉에 앞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17일 국내 관객에 첫선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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