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호사 대신 '찐고생'…추성훈의 '밥값' 성공 공식[EN: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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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의 밥값은 해야지' 두 PD들의 제작기

방송 캡처방송 캡처
해외로 나간 연예인들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현지 문화를 흥겹게 체험하는 장면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비슷한 포맷의 예능이 쏟아지면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여행 예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시청자들 역시 식상함을 느끼기 십상이다.

ENA·EBS 공동 제작 예능 프로그램 '추성훈의 밥값은 해야지'(이하 '밥값은 해야지')는 바로 이런 공식을 깼다. 격투기 챔피언 출신 추성훈, 개그맨 이은지, 여행 유튜버 곽튜브(본명 곽준빈)가 낯선 땅의 리얼한 노동 현장에 투입된다. 그들이 피땀 흘려 일한 곳은 이집트의 '쓰레기 마을', 중국의 고층 빌딩 외벽 청소 등 현지인만이 알 법한 생계 노동의 현장들이었다. 예능이라기보다 '극한직업'처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이 체험이 오히려 인간적인 공감대를 보장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밥값은 해야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직업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제작진의 한 마디다. 억지 웃음을 끌어내기보다, 진짜 노동이 주는 무게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재미를 어떻게 살려낼지에 더 집중했다는 전언이다. 연예인들의 즐기는 여행 대신, 진짜 땀과 고생을 내세운 '밥값은 해야지'의 뒷이야기를 ENA 안제민·EBS 송준섭 PD에게 들어봤다.

Q 이번 프로그램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출연자는 누구였나

A ENA 안제민 PD(이하 안)> 저는 이은지씨의 성장을 가장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예전에 코미디 프로그램 연출할 때 뽑았던 친구인데, 10년 넘게 무대에서 고생하며 개그만 하던 모습만 봐 왔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예능 '지구오락실'에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확 뜬 거죠. 이번에 함께하면서, 무대가 아니라 야외 현장에서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가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카메라가 꺼져도 계속 "PD님, 저 지금 괜찮았어요? 분량은 충분히 나올까요?"라며 스스로를 점검하는 걸 보면서 이제는 완전히 '예능인'으로 자리 잡았구나 싶었어요. 예전 같으면 그냥 편하게 흘러가게 뒀을 텐데, 지금은 자기 분량과 그림을 책임지는 태도가 있더라고요.

Q 추성훈의 활약도 화제가 됐는데 현장에서 본 인상은 어땠나

A 안> 사실 저는 추성훈씨 유튜브 채널을 즐겨보던 팬이기도 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워낙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니까 방송에서는 조금 자제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현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시더라고요. 나이가 지천명에 가까워도 체력은 물론이고 태도에서 오는 무게감이 대단했어요. 뭔가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의식도 강했고요.

EBS 송준섭 PD(이하 송)> 초반에는 낯을 좀 가리시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금세 팀원들과 어울리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습니다. 단순히 '파이터 추성훈'이 아니라 인생 선배, 결혼 선배로서의 조언도 많이 해주셨는데, 출연자들이 진지하게 상담을 청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보통 방송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죠.

왼쪽부터 EBS 송준섭, ENA 안제민 PD. ENA, EBS 제공왼쪽부터 EBS 송준섭, ENA 안제민 PD. ENA, EBS 제공
Q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나

A 송> 제일 중요하게 본 건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직업'이었습니다. 단순히 힘든 노동을 보여주자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맞닿아 있는 생업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현지인들에게 직접 묻고 발로 뛰며 찾아다녔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촬영 때는 현지에서 직접 전화를 돌려서 어렵게 직업인을 섭외했는데, 이런 과정 자체가 다른 예능과 달랐습니다. '극한직업' 같은 다큐를 참고하긴 했지만, 저희는 단순 체험을 넘어서 정말 그 일로 밥값을 벌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차별화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고된 촬영지는 어디였는지 궁금하다

A 송> 이집트의 '쓰레기 마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을 전체가 쓰레기를 분리·재활용하는 공간인데, 말 그대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와 벌레가 들끓습니다. 촬영 전날에는 출연자들에게 미리 작업을 알려주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시켰어요. 은지씨가 특히 힘들어했는데, 그럼에도 묵묵히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뭉클했습니다. 오디오에 벌레가 달라붙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장면은 편집할 때도 제작진 모두가 "진짜 고생했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죠.

Q 예상 못한 출연자들의 모습이 예능적으로 잘 발현되기도 했을까


A 송> (이)은지씨가 강습 장면을 앞두고 밤새 안무를 혼자 연습하겠다고 연락했을 때 정말 놀랐습니다. 작가가 핸드폰으로 찍어줄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그런 자발적인 열정이 화면에 그대로 담겼어요.

안> 또 하나 기억나는 건 곽튜브 곽준빈씨였어요. 저는 그를 유튜버로만 접했었는데, 촬영 중 어떤 상황에서 놀라는 표정을 정확히 카메라 앵글에 맞춰 짓는 걸 보고 "이제는 완전히 프로 방송인이구나" 싶더라고요. 순간 순간 편집점을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그건 유튜버와는 또 다른 레벨이었어요.

Q 워낙 극한 직업이라 출연자들이 현장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도 있었을텐데

A 안> 카메라 앞에서는 절대 자기 힘들다고 직접 말하지 않죠. (웃음) 하지만 분명히 고된 순간이 많아요. 사실 제일 고생하는 건 출연자가 아니라 카메라 감독과 오디오 감독입니다. 장비를 들고 계단을 거꾸로 오르내리면서도 웃음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출연자들이 그런 스태프들을 보면서 불만을 삼키는 경우도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 그래도 추성훈씨 같은 경우는 "이거 재밌잖아. 웃기잖아"라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곤 했어요. 그 한마디에 팀원들이 다시 힘을 내는 경우가 많았죠.

Q 예능적 재미보다는 자연스럽게 노동하는 가운데 닥친 상황, 세 사람 케미 등이 더 자연스러운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낸 거 같다

A 송> 사실 출연자들 입장에서는 고생을 하더라도 '웃음을 뽑아야 한다'는 본능이 있어요. 은지씨가 특히 그랬어요.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내가 말을 못 하고 그냥 일만 하면, 방송 분량이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늘 하더라고요. 개그맨 출신 특유의 고민이죠.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히 웃기려고 가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진짜 직업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어요. 그래서 제작진 차원에서 "억지로 넘어지거나 상황을 과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라고 계속 말해줬습니다. 실제로 추성훈씨나 곽준빈씨는 진짜 노동에 집중하는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은지씨가 혼자 "내 톤을 어디에 맞춰야 하지?" 고민하는 게 티가 났습니다. 결국은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출연자보다도 '직업 자체'라는 생각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왼쪽부터 곽튜브, 추성훈, 이은지. ENA, EBS 제공왼쪽부터 곽튜브, 추성훈, 이은지. ENA, EBS 제공
안> 채널 특성상 2030 여성 시청자가 많아요. 그분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봐도 거부감 없는 톤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상황극이나 과한 개그로 웃음을 뽑는 대신,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벌어지는 작은 유머를 살리는 쪽으로 편집 방향을 잡았어요. 사실 편집실에서도 "이건 웃기긴 한데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다" 싶으면 과감히 덜어내기도 했고요. 그게 저희 프로그램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였습니다.

Q 이번 프로그램은 ENA·EBS가 공동 제작해 주목 받기도 했다. 협업 과정은 어땠는지

A 안> 두 채널의 색깔이 워낙 다르잖아요. 예능 채널은 사이즈를 크게 벌리려 하고, EBS는 효율적으로 알짜만 뽑아내는 스타일이죠.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게 되더라고요. 우리가 정보성을 더 챙기게 되고, EBS 쪽은 오히려 재미를 더 강조하게 되고. 그 접점에서 예상치 못한 시너지가 났습니다.

송> 특히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서 서로 논쟁이 많았는데, 그 과정이 결국 프로그램을 단단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Q 간만에 제대로 된 리얼한 예능이 나왔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내 화제성이 상당한데 시즌2 가능성도 있을까

A 송> 출연자들은 힘들어도 시청자가 사랑해 준다면 더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을 거예요. 추성훈씨는 "노동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건 시청자의 무관심"이라고 한 적도 있어요. 은지씨는 부모님이 재밌게 본다며 뿌듯해했고, 곽준빈씨 역시 프로니까 "시즌2도 해야 진짜 밥값을 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시청자 반응이 좋다면 시즌2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안> 오히려 시즌2에서는 출연자들이 더 극한을 스스로 찾아다니지 않을까요? 그게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길이니까요.

Q TV 프로그램들의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만들고 싶은 콘텐츠의 방향성이 있다면

A 안> 저는 요즘 콘텐츠 시장을 세 층으로 봐요. 유튜브 같은 초단기 스낵형, 넷플릭스 같은 몰입형,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위치한 방송. 이 방송 포맷의 자리를 어떻게 지켜낼지가 계속되는 고민이죠. 길어진 시청 시간을 어떻게 설득해 낼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송> 저는 유튜브에서 흥한 포맷을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TV 문법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TV 시청자들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듬는 게 오히려 블루오션이라고 봐요. 그래서 앞으로도 '유튜브와 방송 사이'의 접점을 찾는 실험을 이어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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