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연합뉴스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9일 외무성 주요국장들과의 협의회를 진행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각종 화해 메시지와 긴장완화 조치와 관련해 "한국의 위정자들이 유화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조한관계가 되돌려지지 않는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자는 고약한 속심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도한 북한의 대외매체 조선중앙통신의 기사 제목이 바로 김 부부장이 "서울 당국의 기만적인 '유화공세' 시도의 본질을 신랄히 비판"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각종 조치들을 책임 전가를 위한 '기만적인 유화공세'로 파악하는 셈이다.
김 부부장은 이미 지난 달 28일 담화에서부터 정부의 확성기방송 중단에 대해 "평가받을만한 일이 못 된다"고 했고, 지난 14일 담화에서도 확성기 철거 등 정부의 긴장와환 조치에 "헛수고"라고 폄하했다.
11일 경기도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 옆에 대남 확성기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그러더니 이날 외무성 주요 국장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는 이 대통령의 각종 발언들을 자세히 인용하며 "조한관계의 '개선'을 위해 무엇인가 달라진다는 것을 생색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대결본심을 평화의 꽃 보자기로 감싼다고 해도 자루속의 송곳은 감출 수 없다"고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김 부부장은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대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에 대해 "'보수'의 간판을 달든, '민주'의 감투를 쓰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 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하여 왔다"고 거듭 싸잡아 비난하면서 "리재명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라고 실명 비난하기도 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담화에서 '리재명의 집권 50여일'과 '한국 대통령' 등으로 비교적 객관적인 표현을 썼으나 이날 보도에서는 좀 더 비난과 압박의 강도를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이런 비난과 압박은 역대 정부와 달리 한미동맹과 한미연합훈련 등에서 '대결정책'을 중단하라는 이 대통령에 대한 북한식 요구로 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김 부부장이 지난달 담화에서부터 정부 조치들을 "우리의 관심을 끌고 국제적 각광을 받아보기 위한" 의도 등으로 일관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역으로 정부의 평화 메시지에 호응하지 않고 거부하는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비춰지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가장 종합적인 비판을 한 것이 외무성 주요 국장들과 대외정책을 협의하는 자리라는 점도 눈에 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입장에서 본질은 한미의 대북 적대행위인데, 마치 한국이 평화공세를 펼치는 것에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것으로 틀 지워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부부장은 협의회에서 "한국은 우리 국가의 외교상대가 될 수 없다"면서 "한국에는 우리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역외교 무대에서 잡역조차 차례지지 않을 것"이고 "(한국의)선동에 귀를 기울이는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한 적중한 대응방안을 잘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국제외교 무대에서의 남북 외교전을 시사하며 과거 중재자로 나섰던 한국의 외교적 역할 가능성을 전면 차단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김 부부장은 특히 "국가의 주권안전에 지속적인 위험을 조성하고 있는 적수국들에 외교적으로 선제 대응하고 급변하는 지역 및 국제지정학적 상황을 우리의 국익에 유리하게 조종해나갈 데 대한 김정은 동지의 대외정책 구상을 전달"했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전에 5천t급 구축함 최현호를 찾아 한미훈련에 대해 "최근에는 핵 요소가 포함되는 군사적 결탁을 기도하고 있다"고 직접 비난했는데, 김 부부장도 "이번 합동군사연습에서 우리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조기에 '제거'하고 공화국 영내로 공격을 확대하는 새 연합작전계획('작계 5022')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23일과 24일 한일정상회담, 25일 한미정상회담에 나선다는 점에서 북한이 핵능력의 급진적 확대 방침을 밝히며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압박하고 정부의 외교 주도권을 견제하려는 성격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