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한 시내버스 구내식당 조리대 위에 파리를 잡기 위한 '끈끈이 트랩'이 설치돼 있다. 한아름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남자화장실 속에 '한 칸' 떼어주고 여자화장실이라니 ②'악취' 화장실 앞에서 무너지는 버스기사…"요의 참고 운전대 잡는 게 일상" ③"지사제 없으면 큰일" 위생 사각지대 광주 시내버스 기사식당 (계속) |
광주 시내버스 기사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구내식당의 위생 상태가 심각하다. 일부 식당은 구청으로부터 거듭 행정처분을 받았음에도 위생 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결국 버스기사들은 식사를 건너뛴 채 커피 몇 잔으로 허기를 달래거나, 불가피하게 구내식당에서 식사할 경우에는 꼭 설사를 멈추게 하는 '지사제'를 챙긴다고 했다.
"지사제 없이는 구내식당 밥 못 먹는다"
광주 시내버스 운전대를 6년 동안 잡았다는 한 기사는 "구내식당 밥을 먹으면 꼭 배탈이 나 지사제를 항상 들고 다닌다"면서 "요즘은 여름이라 식중독 걱정에 구내식당 밥을 먹지 않고 출근할 때 집에서 캔커피 몇 개를 챙겨 나와 배고플 때 마신다"고 했다.
버스 기사들은 쉬는 시간이 짧고 대부분의 회차지가 주로 광주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인근 식당에 찾아가기 어렵다. 기사들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음식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광주광역시에는 총 90곳의 버스 회차지가 있다. 이곳에서 버스가 잠시 멈추고 운전원이 휴식을 취한다. 이 중 10곳에서 집단급식소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기본적인 위생 조건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월남동, 도산동 등 일부 구내식당의 경우 식당과 화장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 실내 악취 문제가 심각하다. 한 버스기사는 "화장실 냄새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니 파리까지 많아 밥을 먹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찾아간 송산유원지 구내식당에서는 뷔페식으로 준비된 음식 위에 파리가 앉아 있었다. 앞서 송산유원지 구내식당의 경우 지난 17일 '위생적 취급 기준 위반'으로 광산구청으로부터 5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반복된 행정처분에도 개선 없는 현장…왜?
광주 한 시내버스 차고지 구내식당 내부. 녹슬고 때가 낀 철제 선반들 사이에 식재료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한아름 기자광주 서구 매월동 차고지의 시내버스 구내식당. 이곳은 올해 3월 '조리실 내부 불결'을 이유로 서구청으로부터 과태료 4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5월에도 '종사자 위생모 미착용'으로 과태료 16만 원 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다.
하지만 25일 오전 찾아간 매월동 차고지 구내식당 조리사들은 위생모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또 조리대 곳곳엔 파리를 쫓기 위해 설치한 '끈끈이 트랩'이 보였다. 그 위로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파리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매월동 시내버스 구내식당은 조리 공간을 넓히기 위해 조리실 뒤편을 무단으로 증축했다. 그러나 넓힌 공간의 바닥면을 조리실과 같은 타일 처리를 하지 않았다. 조리사들은 울퉁불퉁한 시멘트 바닥 위에 음식과 조리도구를 널어 넣고 조리하고 있었다. 그 틈으로 길고양이가 들어와 조리실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서구청은 해당 식당이 건축법 제14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지난 5월 16일에 위반건축물 시정명령, 지난달 25일 시정촉구를 했지만, 여전히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시내버스 기사들을 위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관계자들은 "본래 식당 건물이 세워진 지 30년 가까이 돼 너무 낡아서 청소해도 변함없다"면서 "새벽 3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하는데 청소할 시간이 어디 있겠냐"고 따져 물었다.
이처럼 구청의 단속은 이어지고 있지만, 위반사항 적발과 과태료 부과 이후 실질적인 개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상황이다.
지난 5년 사이 과태료 처분을 받은 광주 시내버스 구내식당의 위치를 지도 위에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파란색은 행정처분을 받지 않은 구내식당의 위치다. 한아름 기자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고통받는 건 기사들
사측은 급식소 운영과 관리를 위탁업체에 맡기고 있다. 사측에 소속된 영양사는 매주 식단표를 작성해 각 식당에 전달하고, 위탁업체가 이를 받아 직접 조리해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건물 단위의 큰 공사 같으면 우리가 해줄 수 있지만, 작은 수리나 청소 등은 운영업체 책임"이라며 위생 책임을 위탁업체에 떠넘겼다.
사측과 급식소 위탁업체 사이 계약서류를 보면 사측은 식당과 조리실 등을 제공한다. 그 대신 위탁업체는 청소, 방역, 방충 등의 위생을 책임지고 교체나 수리 또한 떠맡아야 한다.
위탁업체들은 열악한 현실을 먼저 봐달라고 호소했다. 한 위탁업체 사장은 "기사님들이 시간을 맞춰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수시로 와서 먹기 때문에 새벽 3시에 출근해 저녁 9시에 퇴근하고 그 사이에 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을 고용하고 싶어도 식대 보조금이 한 끼에 3900원에서 4100원 수준인데, 사람을 고용하는 건 둘째 치고 식재료값도 못 내고 있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한 구내식당 사장은 세 달 동안 전기요금을 내지 못했다. 급기야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기사용계약 해지예고서>를 받았다. 이날까지 전기요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전기사용 계약이 해지될 예정이다.
최근 구성된 '대중교통혁신회의' 역할 중요
기사들은 오늘도 위생이 불량한 구내식당에서 배탈이 나지나 않을까 불안해하며 아슬아슬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이런 식사 환경이 언제까지 방치되어야 하냐"는 목소리는 있지만, 정작 개선을 이끌어낼 주체와 자원은 모두 한 발씩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버스노조 관계자는 "누구나 문제라는 건 알고 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며 "변화를 위해서는 광주시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이 지난 21일 오전 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시내버스 준공영제 개선을 위한 대중교통 혁신회의 킥오프회의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후 추진방향 논의 및 의견수렴을 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지난 시내버스 파업 이후 '대중교통 혁신회의'가 만들어져 시내버스 준공영제의 전반적인 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21일 킥오프 회의를 시작으로 대중교통 요금을 현실화하고 노동자 임금과 처우를 개선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대중교통혁신회의에 위원으로 참여하는 채은지 광주시의회 부의장은 "운전원 처우 개선을 요청하는 민원을 많이 접수해 현장 상황이 어떠한지 인지하고 있다"면서 "타 시도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식대와 비위생적인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광주시 비용을 투입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