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솜망방이 처벌? 화재가 남긴 씻을 수 없는 상처[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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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전 삼킨 산불이 남긴 상처⑦]


▶ 글 싣는 순서
①"60년 넘게 산 집 통째로 타버렸어요" 갈 곳 잃은 이재민 어디로?
②올해 자두값 비상…경북 산불 그 후, "농사 접었다고 봐야"
③"미안하고 억울하고"…산불 발화지 주민들, "중요한 건 불 낸 사람 처벌"
④끝나지 않은 산불 공포…'산사태 위험' 경북 사람들은 장마가 두렵다
⑤경북 산불 이재민, 임시주택 거주 기간 '최대 2년'이다?
⑥산불 끄러 사방 누빈 댕댕이 '콩이'…상처 남긴 현장
⑦산불 솜망방이 처벌? 화재가 남긴 씻을 수 없는 상처
(끝)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한 산불이 안동시, 청송군, 영양군, 영덕군 등으로 크게 번져 전례 없는 피해를 남겼다. 1986년 이후 집계된 산불 통계치로는 역대 최대인 9만 9289ha를 태웠고, 2246세대 3587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초대형 산불이었다.

지역 주민과 산림당국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극심한 가뭄과 강풍으로 애꿎은 하늘만 원망할 뿐이었다. 다행히 149시간 만에 최종 진화에 성공했지만, 산불이 남긴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산불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등 앞으로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지난 7일 오후 안동시 남선면 도로리 마을회관 인근에는 산불로 전소된 주택 철거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이를 바라보며 허탈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한 주민은 "60년 넘게 살았다. 내 집이 탄다는 건 생각도 안 했다. 아직도 이야기하면 눈물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이재민들은 호텔, 모텔 등 인근 숙박시설과 교회, 마을회관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있다. 임시주택이 공급된 지역도 있지만, 원래 살던 집에 비하면 턱없이 좁고 불편하다. 농촌 특성상 넓은 생활 공간에서 지내다가 한 채당 8평(27㎡) 규모의 공간에서 생활하니 그럴 만도 하다.

임시주택 거주기간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최대 거주기간은 2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재민들은 퇴거 전까지 정부 및 지자체에서 지급하는 재난 지원금 등으로 주거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주택 재건축을 바라는 이재민들의 불만이 가장 크다. 최근 경북도는 추가 지원금 및 기부금까지 모여 산불로 전소된 주택에 최소 1억 원 이상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소된 주택을 복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불에 타고 있는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의 한 야산. 괴산1리 김정호 이장 제공불에 타고 있는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의 한 야산. 괴산1리 김정호 이장 제공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것이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지방이라 땅값이 비싸지 않아서 협동조합을 통해 재개발하면 저렴한 금액에 임대주택이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시의 경우 최근 이재민 74세대가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완료한 상태다. 하지만 산불 피해를 입은 세대수를 모두 충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량이다. 이철우 경북지사의 말처럼 특별법을 만들어 주택이 탄 곳은 주택으로 보상해 주는 제도가 시급해 보인다.

농작물 피해도 심각하다.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삶의 의욕을 잃었다", "남은 생에 더는 농사는 없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경북도는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농기계 무상 임대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산불로 소실된 농작물을 되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고추 농사의 경우 2월에 뿌린 모종을 4~5월 텃밭으로 옮겨 8월부터 수확하지만, 이번 산불로 인해 모종이 전부 타버렸다. 수확하려면 7년 넘게 걸린다는 자두 농사는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산사태 걱정까지 해야 한다. 특히 불타버린 산과 인접한 마을은 토양 유실 위험이 높아 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산불로 전소된 주택을 재건축하려 해도 산사태로 인한 2차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림청은 긴급 벌채 및 응급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며, 대피 체계 점검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지역은 일반 지역보다 산사태 발생 위험이 최대 200배 높으며,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상 산사태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산림 복구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를 고려한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까맣게 탄 산에 둘러싸인 도로리 마을. 김조휘 기자까맣게 탄 산에 둘러싸인 도로리 마을. 김조휘 기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이재민 신세가 됐다. 삶의 터전을 앗아간 산불을 낸 실화자를 향한 분노와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이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솜방망이 처벌' 논란 탓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최근 5년간 산림보호법 관련 1심 형사 판결 107건 중 실형은 단 8건(약 7.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부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선고유예로 마무리됐다. "실수였다"는 이유만으로 형량이 대폭 낮아진 것이다.

지난 3월 22일 성묘객 A씨는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의 야산에서 조부모 묘에 자라난 어린나무를 태우다가 산불로 확산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과수원 임차인 B씨는 같은 날 안계면 용기리 한 과수원에서 영농 부산물을 태웠다가 산불을 번지게 한 혐의다. 경북경찰청은 이들 피의자 2명을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 12일 불구속 송치했다.

전문가들은 산림보호법 산불 조항의 규율 단속 및 처벌이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산불은 실수든 고의든 피해가 매우 심각한데, 법은 여전히 '의도'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비치고 있어서다. 설사 실화였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영향이나 경제적 피해가 극심하다면 기존 형법 수준 그 이상으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이재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정부에서 산불 피해 복구에 힘을 쏟고 있지만, 실화자를 향한 분노를 잠재우는 것까지 완벽히 해야 이재민들의 일상 회복에 진정 의미있는 보탬이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한 확실한 대책을 내놓고 재발 방지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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