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경북 지역을 중심 삼아 바람을 타고 동해안까지 확산한 산불의 영향구역 면적이 서울시 면적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사태가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기상청은 "비는 약해지고 바람은 다시 거세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진화(鎭火)가 어려운 야속한 날씨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27일 비가 내려 습도가 올라간 틈을 타 단기적으론 진화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면서도, 또 한편에선 바람이 다시 거세지기 전에 지속 가능한 산불 확산 억제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화마와의 장기전이 현실이 되고 있는 만큼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제적 대피와 방어선 구축, 진화 인력의 교대 체계 마련과 장비 보급 등 장기 대응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축구장 5만 개' 규모 산림 태운 최악 산불…야속한 날씨 계속
연합뉴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21일부터 영남권에서 발생한 동시다발적 산불로 인해 27일 오후 8시 기준 사망자 28명, 부상 32명 등 총 6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특히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인근 지역으로 빠르게 번지며 인명 피해가 계속 늘고 있다. 대피 인원도 경북 3만 553명을 포함해 총 3만 7826명에 달한다. 주택과 공장, 문화재 등 시설물 피해 규모는 2639개소로 집계됐다.
산불영향구역 면적은 같은 날 오후 6시 기준 3만 8665ha(헥타아르)로, 서울시 면적의 절반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 규모다. 지역별 피해 면적은 의성, 영덕, 안동, 청송, 영양, 산청, 온양 등 순으로 컸다.
정부는 지난 22일 경남 산청군, 24일 울산 울주군, 경북 의성군, 경남 하동군에 이어 27일 경북 안동·청송·영양·영덕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27일 영남 일부 지역에 비가 내리긴 했지만, 소량이어서 화마의 기세를 단번에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상청은 당분간 산불 진화에 불리한 기상 조건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28일부터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강한 북서풍이 불고, 낮 동안 상대습도는 2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상대습도는 공기 속에 들어 있는 수증기의 양으로, 20%는 매우 건조한 상태다.
동쪽 지역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건조 특보가 지속되고 있다. 다음 주 초에는 다시 '남고북저형 기압계'가 형성되며, 서풍이 강하게 불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이 산불과의 장기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대응 체계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이유다.
국립산림과학원 이병두 산림재난연구부장은 "(습도가 오른) 하루이틀은 화염이 약해진 시기이므로 진화 자원을 집중 투입하고, 그 이후부터는 진화 인력의 체력 관리와 우선순위 진화를 중심으로 한 장기 대응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바람이 다시 세지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장기전이라는 건 단기전처럼 자원을 한 번에 쏟아붓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에 따라 진화하고 체력과 장비를 유지하며, 지속적인 보급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뜻"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선제적인 주민 대피 등 인명 피해를 줄이는 기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재난관리학회 문현철 부회장 역시 "건조한 북서풍이 불면 산불이 재확산될 위험이 있다"며 "현 단계에서 모든 화선을 잡기 어렵기 때문에, 체계적인 방어선 구축과 인명 피해 최소화가 더 중요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외부 자원 총동원해야"…중앙 정부 조정 역할 촉구
고기동 중대본부장이 산불피해지역 부단체장 긴급 영상회의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곳곳에 산재한 진화 자원들을 모으고,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 환경 등을 고려해 이를 전략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선 중앙 정부 컨트롤타워의 적극적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라는 조언도 나왔다.
2022년 울진·삼척 대형 산불 당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장을 지냈던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은 "군 헬기나 공항공사 화학방제차량, 방수포 같은 특수 자원들이 각 기관에 흩어져 있다"며 "국가재난 상황인 지금, 상급기관이 나서서 이러한 자원들을 파악하고 신속히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림청과 소방청 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 등 상급 기관이 조정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회장은 "기상 변수는 통제할 수 없지만, 자원 운용은 전략적으로 할 수 있다"며 "외부 자원들을 끌어와야 장기화할 수 있는 산불 상황에 대응하면서 기존 자원들의 고갈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도 "행안부가 적극 개입해 소방과 경찰력을 필요시에 더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시군 지방자치단체가 대형 재난 대응 경험이 부족하다면, 행안부 직원들이 직접 내려와 해당 시군에 배치돼 함께 상황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